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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인권기념관 봄꽃
 민주인권기념관 봄꽃
ⓒ 도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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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도 봄꽃이 피었다.

나는 일 년에 한두 번 중·고생들을 데리고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던, 지금은 민주인권기념관에서 해설을 하고 있다. 매년 다른 학생들을 데리고 가지만 항상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곳이다.

영화 <1987>에서 이곳에 잡혀 온 사람들의 가족이 매달려 애원하던 그 정문을 지나, 건물을 등지고 봄꽃이 피어 있는 나무 가까이 선다. 올해도 예쁜 꽃이 피었다. 벚꽃은 어두운 나뭇가지 사이로 꽃구름을 만들고 있다. 검은 벽돌로 정제된 듯 서있는 건물을 본다. 유난히 좁은 창문을 달고 있는 5층이 눈에도 마음에도 거슬린다. 숨이 '턱' 막힌다. 그리고 여기서 기념사진을 찍고 이동한다. 이제부터 여기에 잡혀온 그들의 동선을 따라가 본다.

아주 무거운 동체가 힘들게 열리는 공포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철제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다. 숨어 있던 곳에서 잡혀와 눈을 가린 채 차량에서 내려선다. 물론 건물의 넓은 정문으로 출입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건물을 돌아가면 뒤쪽에 작은 출입구가 나온다. 문을 두드리면 익숙한 듯 누군가가 밖의 동정을 살피며 문을 연다. 밖에서 내부를 볼 수 없는 90도 옆으로 달린 문이다.

이 문을 지나면 바로 옆에 나선형 철제 계단이 이어진다. 아주 협소하고 가파른 계단이다. 눈을 가리고 철컹거리는 나선 계단을 하염없이 올라간다. 계단참도 없이 몇 층인지 가늠도 되지 않게 계속 올라가야 한다. 이 계단은 낮에 여럿이 올라가도 발소리의 울림과 본인은 알 수 없지만 5층까지 이어진 높이, 그리고 어둠에 공포감이 드는 곳이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 계단을 오르며 누구의 얼굴이 떠오르고 어떤 후회가 밀려왔을지, 얼마나 많은 두려움 속에 발을 디뎠을지 가슴이 먹먹하다.
밖에서는 내부를 볼 수 없다.아름다움과 기능을 가지고 있다.
▲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뒷문 밖에서는 내부를 볼 수 없다.아름다움과 기능을 가지고 있다.
ⓒ 도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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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다다른 곳은 5층 취조실이다. 어두운 긴 복도에 여러 개의 방문이 보인다. 문들은 서로 엇갈려 열리므로 건넌방에서 누가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취조실 안으로 들어가면 좁은 기다란 창문이 있고, 간이침대가 있고, 바닥에 고정된 작은 책상과 의자, 그리고 변기와 작은 욕조가 있다. 아무런 저항도 할 수가 없었다.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이 곳에선 인권이 유린되는 사건이 아주 많이 있었다. 작은방에 있는 욕조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었다. 복도 끝에는 작은방 2배 크기의 방이 두 개가 있다. 이곳은 급이 다른 사람이 끌려오는 곳인가? 누가 있었을까? 용도가 무엇이었을까?

맞다. 급이 다른 사람이 오기도 했다. 고 김근태 의원이 이 방에서 고문을 받았다. 이 방에는 뭔가 다른 물건이 있었던 것이다. 칠성판에 누워 전기고문을 받는 곳이었다. 고문을 하다가 원하는 정보를 불지 않으면 발가락에 포일을 감으며 '칠성판에 올린다'라고 협박하면 누구라도 술술 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칠성판은 죽은 사람을 관에 넣을 때 바닥에 까는 판으로 북두칠성의 별자리 구멍이 뚫려있다. 이것은 사람은 죽어 북두칠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도교사상과 결합된 장례풍습이다. 죽음을 암시하는 전기고문 도구였다니...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가혹한 고통이었을 것이다.

복도 끝 창문으로 들리는 전철 진입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여기는 '누군가의 직장이고 일상의 공간'이라며 뒤통수를 친다. 취조를 하고 고문을 하면서도 자신의 가족 걱정과 자식의 생일선물을 고민하였으리라.

이 건물 어디에도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이 건물을 찬찬히 돌아보면 용도에 맞게 안성맞춤으로 지어진 훌륭한 건물이다. 그 시절 내부를 감시할 수 있는 장치와 외부에서 문을 잠그고, 빛의 밝기를 조절하는 장치, 밖에서 내부를 들여다보는 구멍에는 둘레에 꽃 모양까지 둘러놨다. 무엇에 쓰일지를 잘 알고 지은 건물임에 틀림없다.
 
밖에서 안을 볼 수 있다
▲ 눈구멍 밖에서 안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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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밖에 있는 빛 조절장치
▲ 빛조절장치 문 밖에 있는 빛 조절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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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공간이 소통할 수 있고 건축의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해방 후 1세대 건축가 중 천재적 재능을 보여준 김수근 건축가의 작품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 이력 어디에도 남영동 대공분실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1976년은 남영동 대공분실이 완공되어 운영되었고 그가 한국건축가 협회장이 된 해이기도 하다. 이 공간을 방문할 때마다 '재능 있는 지식인의 선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도 알았을까? 알았을 것이다. 이곳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공간은 인간만을 위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공간은 누군가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프고 슬프고 두려운 공간이었다. 이 공간은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매 순간 모든 삶이 정의롭고 당당한 모습으로 채워질 수는 없다. 하지만 나의 재능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다른 사람의 삶을 고통으로 혹은 죽음으로 이끄는 공간이 되어버린다면 건축가는 양심 차원의 반성 그 이상을 하여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아픔의 공간들이 있다. 공간의 기억과 삶의 태도도 함께 기억한다면 부조리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태그:#남영동 대공분실, #민주인권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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