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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론'이 범람하는 세상이다. 서점가에 진열된 책들은 대부분 퇴사한 사람의 입장과 시각을 담고 있다. 나는 퇴사한 주인공보다, 그 주인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아야만 하는 주변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누구나 주인공을 꿈꾸지만, 사실 우리 대부분 주인공을 축하해주고 부러워하는 주변 인물의 역할을 맡을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퇴사 영웅담을 접할 때마다 퇴사를 선언한 주인공에게 멋진 결단을 내렸다고 격려의 말을 건네야 할지, 혹은 진심을 담은 축하 인사를 전해야 할지, 실은 나조차 모호했다. 회사에 멀쩡히 잘 다니는 내가 왠지 미련한 것 같고, 마치 부당함에 저항하지 못하는 패배자처럼 이따금 느껴질 때도 있다.

그나마 알량한 마음의 위안을 얻은 것은, 내 주변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 정도겠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사표를 던져 나를 혼돈에 빠뜨린 일이 벌어진 적은 없다. 아니, 이제는 과거형이다. 없었다. 최근 그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나의 동료가 퇴사했다
   
 내가 쓰고 있는 책상보다 그의 책상이 마치 서너 배 더 크게 느껴진다. 그의 퇴사 이후 엄습할 빈자리의 크기가 그 정도가 아닐까 싶다.
 내가 쓰고 있는 책상보다 그의 책상이 마치 서너 배 더 크게 느껴진다. 그의 퇴사 이후 엄습할 빈자리의 크기가 그 정도가 아닐까 싶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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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8개월 전, 나는 지금의 회사로 이직했다. 그때부터 같은 부서 바로 옆자리였던 그와 업무적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자주 있었고,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엄청나게 돈독한 우애를 쌓은 건 아니었다. 경영진이 정해놓은 '판매 수치'를 채우기 위해 고민을 공유하곤 했을 뿐.

그렇지만 우리는 사내에선 어느 정도 친한 사이였다. 직무가 조금 다르긴 해도 '판매'와 '성과'라는 회사의 대의와 비슷한 수준의 책임감과 채무의식을 공유해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동료였으니까. 그런 그가 어느 날 내게 말했다. 회사를 그만둔다고.

"그렇게 됐어요. 퇴사하게 됐습니다."

만남이 있다면 헤어짐도 있는 법. 이 간단한 사실을 아주 잘 아는 나이가 됐음에도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헤어짐에 익숙하지가 않다. 헤어짐의 아쉬움 정도는 상대에게 갖고 있던 애정에 비례하는 게 아닐까. 상대 역시 내게 애정이 있고 없고는 크게 상관이 없다. 기실 크게 중요한 일도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느끼는 아쉬움이니 말이다.

일하는 한편으로 그가 느꼈을 외로움의 크기와 그 끝에 마주했을 암담함을 나는 미처 몰랐다. 단지 내가 아는 건, 아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다는 정도다. 과거의 나 역시 그와 같이 퇴사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던 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느꼈을 고민과 좌절의 깊이까지 알 순 없는 노릇이다. 누구도 감히 안다고 할 수 없다. 결코 그래서도 안 된다. 그래서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아쉽고 안타까울 뿐, 달리 꺼낼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지금의 직장으로 이직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그는 모르는 것 많던 내게 늘 친절하게 업무를 설명해줬다. 동료들에게 항상 친절하려 했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 했던 그의 진심은 누구라도 쉬이 느낄 수 있었으리라. 매일같이 야근해야 하는 상황에도 늘 웃음을 잃지 않는 그를 보며 참 괜찮은 사람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의성님하고 얘기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있어요."

그는 나와의 대화가 재미있다고 말했지만, 나야말로 그와 이따금 이야기할 때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순서가 조금 다른 것뿐
  
고작 8개월 남짓 함께 일한 것이 전부다. 누군가를 알아가기에는 짧은 시간일 수도 있고, 긴 시간일 수 있다. 다만, 하루에 8시간을 한 공간에 있다보면 원하든 원치 않든 서로에 대해 적지 않은 것들을 알게 된다. 그 8개월만큼은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했으니까. 감히 누군가를 함부로 안다고 할 순 없겠지만, 이런 사람 아니었겠느냐며 조심스레 나의 지레짐작을 이야기해 볼 순 있겠다. 적어도 그는 나를 비롯한 회사 동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었다.

유능하지만 성격이 모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품은 나무랄 데 없건만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 안타까운 사람이 있다. 그는 유능하면서도 성품이 좋은, 근래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가진 재능을 십분 활용해서 회사를 위해 일했음은 물론, 그가 있는 곳엔 늘 사람들이 모이곤 했다.

그런 그가 퇴사를 선언했으니 모두가 느꼈을 박탈감은 대동소이하지 않았을까. 회사는 성실한 인재 한 명을 잃은 셈이다. 물론, 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오더라도 업무적으로 비슷한 역할을 못하리란 법은 없다. 다만, 그와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장담하건대 그런 사람은 찾기 힘들다. 
 
 모두 언젠가는 결국 퇴사자가 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달려가고 있는 행선지는 저 '문 밖' 어딘가로 귀결될 수밖에 없으니까.
 모두 언젠가는 결국 퇴사자가 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달려가고 있는 행선지는 저 "문 밖" 어딘가로 귀결될 수밖에 없으니까.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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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선지를 정해 놓고 나가는 건 아닙니다. 그저 좀 쉬고 싶었어요."

그는 앞날을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론 기대하는 듯 보였다. 우리 모두 내려놓지 못하는 짐을 그는 마침내 벗어던졌으니 얼마나 시원할까. 지금은 오로지 그 해방감을 즐기길 바란다. 떠나는 동료에게 으레 건네는 덕담이 결코 아니다. 

좋은 시간을 만들어준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해야 했을까, 아니면 조금 더 버텨주지 그랬냐며 타박해야 했을까. 이도 저도 아니면 그가 의지할 작은 언덕조차 돼주지 못했음을 사과해야 했을까.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와 함께 켜켜이 쌓아올린 시간만큼 우리는 그를 추억할 것이다. 채워질 수 없는 빈자리가 모두의 마음에 생기리라. 물론 시간이 지나 언젠가는 그 빈자리가 메워지겠지만, 그때 그 시절을 이따금 회상하지 않을까. 좋은 사람과 더불어 일했던 좋은 시절이 있었노라고.

퇴사를 이야기한 그에게서 내 모습이 일순 보였다. 한편으론 나에게서 그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모두 언젠가는 결국 퇴사자가 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달려가고 있는 행선지는 저 '문밖' 어딘가로 귀결될 수밖에 없으니까.

단지 순서의 차이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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