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불 상황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불 상황 ⓒ 김남권

  
고성산불 고성에서 4일 오후 7시 17분 발생한 산불이 속초 시내 미시령로 3435번지 인근에서 영랑호골프장 2번홀이 지척이다. 불길이 치솟는 게 바로 보였다.

▲ 고성산불 고성에서 4일 오후 7시 17분 발생한 산불이 속초 시내 미시령로 3435번지 인근에서 영랑호골프장 2번홀이 지척이다. 불길이 치솟는 게 바로 보였다. ⓒ 정덕수

 
강원도 일원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해당 지역에 국가재난사태가 선포된 가운데, 지상파 방송사들의 함량 미달 재난 보도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4일 오후 7시 17분께 강원도 고성 토성면 주유소 인근에서 시작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대형화재로 번졌다. 순식간에 퍼진 불길에 전국의 소방차 긴급 동원령이 발령됐고,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실시간으로 피해 상황을 전달하는 게시글이 쏟아졌다.

같은 시각, 재난 상황을 전달하고 안전한 대피 방법을 안내해야 할 지상파 방송사들은 정규 편성된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었다. 재난방송 주관방송사인 KBS는 지상파 3사 중 가장 빨리 특보를 내보냈지만, 오후 10시 53분부터였다.

산림청이 산불 재난 국가위기경보 단계를 '경계'에서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한 게 오후 10시. '심각' 단계가 발령되면 범정부 차원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가동돼 모든 관계기관이 협력 체제를 구축하게 되는데, 국가재난 주관방송사인 KBS조차 '심각' 발령 이후 특보까지, 무려 53분이나 걸린 것이다. 그나마도 약 10분 간 특보를 내보낸 뒤, 오후 11시 5분 정규 방송인 <오늘밤 김제동>을 방송했고, 20분 만에 다시 특보 체제로 전환했다.

MBC는 수목드라마 <더 뱅커> 방송을 마친 11시 7분께, SBS는 <가로채널>을 내보내다 11시 52분께 특보를 시작했다. 재난방송 주관방송사인 KBS는 물론이고, 국가 재난 상황을 신속하게 보도해야 할 지상파 방송사 모두가 초기 대응에 미흡했던 것이다. 보도전문채널 YTN과 연합뉴스 TV가 곧바로 긴급 속보 체제로 전환한 것과 대비된다.

KBS, MBC, SBS 모두 '늦장 특보'... 내용도 부실
 
 KBS 재난특보의 수어 통역은 5일 오전부터 제공됐다.

KBS 재난특보의 수어 통역은 5일 오전부터 제공됐다. ⓒ KBS

 
뒤늦게 시작한 특보 방송도 함량 미달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경주·포항 지진을 계기로 방송통신위원회가 2018년 마련한 '재난방송 등 종합 매뉴얼 표준안'에는 "재난방송은 재난지역과 이재민 등 피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를 다양하게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지상파 3사의 특보 방송는 이미 다 알려진 화재 원인과 피해 상황을 반복 전달하며 정작 현지 주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는 충실하게 알리지 않았다. 

시민들은 SNS를 통해 대피소 정보나 대피 요령, 추가 피해 방지 방법 등을 확인해야 했다. '#속초산불' 키워드로 검색하면 대피소 현황 등 각종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긴박한 상황에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정확한 정보를 얻기란 쉽지 않다. 5일 새벽, SNS 상에서 호텔 시설을 대피소로 개방한 속초 하이디밸리 리조트가 근처에 불이 번져 폐쇄됐다는 정보가 돌았지만, 잘못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이 와중에 MBC는 속초 가스 충전소가 폭발했다는 오보를 속보로 전했다가 정정하기도 했고, 현장을 중계하다 소방관에게 "여기(근처에) 화약 창고가 있다"며 제지당하는 YTN 기자의 모습이 전달되기도 했다. 정확한 정보를 선별해 충실하게 전달해야 할 특보 방송이, 오히려 시민들의 혼란을 부추기거나 화재 진압을 방해했다는 인상을 남긴 것이다. 
  
또한 2017년 개정된 재난방송 관련 고시에 따라, 재난방송은 시각장애인이나 일반 국민들이 재난상황을 효율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정한 재난경보음을 송출하고, 외국인을 위해 재난발생시간, 재난명칭, 발생지역을 포함한 영어자막방송 등을 실시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채널에서도 이러한 재난방송을 확인할 수 없었다.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전국장애인차별연대(아래 전장연)는 페이스북을 통해 "화재 발생 지역에 있는 분들이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다, 그중에는 청각장애인도 있을 텐데 국자재난주관 방송국인 KBS는 물론 MBC 등 공중파 뉴스 속보에서 수어 통역이 제공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장연은 "지금 당장 화재 뉴스 속보에 수어 통역을 도입해달라, 속초-고성에 사는 장애인도 재난 속보를 듣고 안전해질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수어 통역은 긴급했던 새벽이 지난 뒤인 5일 오전에야 제공됐다.

쏟아지는 비난 "수신료 받는 공영방송 임무 져버려"
 
 5일 오전 강원도 속초에 사는 김명곤씨가 전날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옮겨와 주택이 전소되어 집 앞에 주저 앉아 있다.

5일 오전 강원도 속초에 사는 김명곤씨가 전날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옮겨와 주택이 전소되어 집 앞에 주저 앉아 있다. ⓒ 이희훈

 
 5일 오전 강원도 속초 장사동 일대 폐차장에 전날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옮겨와 모든 차량이 전소 되었다.

5일 오전 강원도 속초 장사동 일대 폐차장에 전날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옮겨와 모든 차량이 전소 되었다. ⓒ 이희훈

 
모두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시청자들은 재난주관방송사인 KBS에 가장 무거운 책임을 묻고 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KBS를 향한 누리꾼들의 질책이 쏟아졌고, KBS 시청자 청원 게시판에는 제대로 된 특보 방송을 요구하는 청원도 올라왔다. 

시청자들의 비판에, KBS 양대 노조인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와 KBS 노동조합 역시 성명을 내고 사측을 비판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삽시간에 번진 불길에 해당 지역 국민들은 불안에 떨며 신속한 정보에 목말랐지만, 그 긴박한 순간에 KBS에선 하루 전 끝난 보궐선거 분석을 하고 있었다"고 지적하며 "보도 편성 책임자들은 재난방송 주관방송사로서 법적 지위와 의무를 무겁게 인식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사내 다른 노조인 KBS노동조합 역시 성명을 내고 "국가재난방송주관 기관인 KBS는 이번 산불 보도와 관련 수신료를 받은 공영방송 본연의 임무를 져버렸다, 정규 방송을 강행하면서 자막으로 재난 상황을 전달하는 등 KBS의 안이한 태도로 일관했다, KBS는 수많은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긴급 상황을 뒷전으로 밀어냈다"고 지적했다.
 
 5일 오전 강원도 속초 장사동 일대 폐차장에 전날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옮겨와 모든 차량이 전소 되었다.

5일 오전 강원도 속초 장사동 일대 폐차장에 전날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옮겨와 모든 차량이 전소 되었다. ⓒ 이희훈

고성 산불 국가재난사태 재난방송 특보
댓글1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