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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추념식에 놓여진 문 대통령 조화 3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71주년 제주4·3 추념식 ‘4370+1 봄이왐수다’ 식장에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놓여 있다.
▲ 제주4·3 추념식에 놓여진 문 대통령 조화 3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71주년 제주4·3 추념식 ‘4370+1 봄이왐수다’ 식장에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놓여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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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4월의 봄이었다.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전국적으로 들끓었고, 그로부터 일주일만에 이승만 대통령은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 다음날이었다. 1960년 4월 27일, 제주에서도 부정 선거 관련자 처벌과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요구가 터져 나왔다.

"참다운 민주국가를 건설하자"고 했으며, "민주 학원에 자유를 달라"고 했다. 또한 "권력으로 모은 돈 국민에게 돌리라"는 구호가 관덕정 광장을 울렸다. 그리고,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을 표출하며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했다고 한다. 

"1960년 4월 27일 관덕정 광장에서, '잊어라, 가만히 있어라' 강요하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제주의 청년 학생들이 일어섰습니다. 제주의 중·고등학생 1천500명이 3.15 부정선거 규탄과 함께 4.3의 진실을 외쳤습니다." (2018년 4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의 4.3 희생자 추념일 추념사 중에)

4.3 항쟁의 상징적 광장 점령한 독재자들
 
 <총파업의 관덕정 광장> 강요배 화백
 <총파업의 관덕정 광장> 강요배 화백
ⓒ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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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문 대통령이 관덕정 광장을 특별히 언급한 이유는 분명 있었다.

4.19 혁명 13년 전, 그러니까 1947년 3월 1일, 그 곳에서는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렸다. "3.1 혁명 정신을 계승하자"며 시위를 하던 군중들을 향한 경찰의 발포, 그로 인해 민간인 6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사람들은 격분했고, 미군정 반대 시위와 총파업이 이어졌다. 4.3 항쟁의 비극이 시작된 장소가 바로 관덕정 광장이었다.

허나 이와 같은 기록을 당시 보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광장을 울렸던 학생들의 외침, 정의를 세우자는 목소리 대신, 박정희 장군의 쿠데타가 일어난 그 다음해(1961년)에 이르러서는 이런 기사에 관덕정 광장이 소환된다. "간첩을 분쇄하자"는 구호가 등장했다고 한다.

"재건국민운동 제주지부 촉진대회가 3일 상오 시내 관덕정 광장에서 학생을 비롯한 시민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거행되었다. 이날 대회는 10시 35분에 끝내고 간첩 침략을 분쇄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시가 행진에 들어갔다." (1961년 7월 4일자 경향신문)

"광복 제 16주년을 기념하고 공무원의 총 단합 촉진대회를 겸한 경축식전이 15일 상오 9시부터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서울특별시가 마련한 이 식전에는 윤보선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박정희 장군과 최고위원들... (제주) 8.15 제16주년 기념식 및 국민단합궐기대회가 15일 상오 9시 반 시내 관덕정 광장에서 관민 다수 참석 한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됐다." (1961년 8월 15일자 동아일보)

이런 일은 1947년 4.3 항쟁 이후에도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그로 인한 피비린내가 채 사라지지 않았을 1949년 4월 9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제주도를 방문했다. 그에 대한 환영대회가 열린 장소 또한 관덕정 광장이었다. 정의로운 외침이 울렸던 그 곳이 '독재자의 광장'이 되어버렸다.

'흔들림 없이' 제자리... 4.3 특별법 개정안, 유족회장의 이 말
 
 '대학살 현장이 신혼부부 관광지로'란 제목의 1989년 3월 29일자 <한겨레> 기사.
 "대학살 현장이 신혼부부 관광지로"란 제목의 1989년 3월 29일자 <한겨레> 기사.
ⓒ 한겨레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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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랫동안 관덕정 광장에서 4.3의 목소리는 허용되지 않았다. 사건 발생 41년 만에 제주에서 처음으로 추모제가 열렸던 1989년 4월 1일, 당시 노태우 정권은 광장을 원천 봉쇄했다. 1991년에도, 또 그 다음해에도 적어도 관덕정 광장에서는 1960년 4월, 학생들이 외쳤던 4.3의 진실을 듣기 어려웠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 때 4.3 항쟁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이뤄졌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건 발생 55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 사과를 했으며 2007년 위령제에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의 추도식 참석 없이 10년이 다시 지났고, 문 대통령은 2018년 70주년 추념식에서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하면서 "배·보상과 국가 트라우마 센터 건립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4.3 특별법 개정안은 '흔들림 없이' 제 자리만 맴돌고 있다. 대통령의 의지와 달리 정부는 1년이 지나도록 신중론을 내세우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국회에 제출한 검토의견서를 통해 "타 과거사 사건과의 형평성, 국가 재정 여건 등에 대한 종합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기획재정부는 "배·보상은 사회 갈등 유발 가능성, 막대한 재정 소요" 등을 이유로 충분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각각 밝혔다.

정부 입장이 공식적으로 이러하니 국회 역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모양새다. 여야 지도부가 4.3 특별법 개정 처리를 하겠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정작 지난 1일 열린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에서 4.3 특별법 개정안 4건에 대한 심사는 보류됐다. 추념식에서는 유족들을 위로하며 특별법 통과를 공언하지만, 서울로 돌아와서는 당리당략에 따라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일이 올해도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지난 1일 국회에서 직접 지켜본 송승문 제주 4.3 유족회장은 "그래도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2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미진한 부분은 정부에서 답을 주면, 그걸 검토해서 4월에 결론 내리겠다고 회의가 진행됐다"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다"고 했다. 앞서 지난 3월 "이번에도 통과가 안 되면 내년 추념식 때는 여야 막론하고 입장을 거부시키겠다"고 했던 송 회장은 "4월에 안 되면 육지에 올라갈 준비도 하고, 특별법 개정안만 갖고 압박하려 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약속을 어기면 정상적인 국회의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도 서서히 준비해야죠."

1960년 4월의 대학생들... 59년 후 그 자리에 다시 선 대학생들
 
 제주지역 4개 대학교와 전국 국공립대학생연합회 학생 300여 명이 2일 제주시 관덕정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4·3특별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제주지역 4개 대학교와 전국 국공립대학생연합회 학생 300여 명이 2일 제주시 관덕정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4·3특별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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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회장과 전화 통화했던 그 날, 대학생들은 다시 제주 관덕정 앞에 섰다. 제주 지역 4개 대학교와 전국 국공립대학생연합회 학생들은 관덕정 광장에서 4.3 특별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무자비한 공권력 앞에 쓰러진 4.3의 상처는 너무도 깊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동안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아직 해결되지 못한 과제가 많다. 국회에 계류중인 4.3 특별법 전부 개정안에는 배·보상, 수형인 명예 회복, 추가 진상 조사 등의 문제를 해결할 핵심 조항들이 있다. 국회는 4.3 특별법을 즉각 개정할 것을 촉구한다. 4.3의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고 억울한 죽음에 이념의 덫을 씌워 희생자를 폄훼하는 세력들은 각성하고 왜곡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우리가 먼저 4.3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겠다"며 관덕정 광장부터 중앙로 사거리와 남문로 사거리를 거쳐 제주시청까지 도보 행진을 벌였다고 한다. 1960년 4월 관덕정 광장에 모였던 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1960년 5월 제주대학 법학과 학생 7명으로 '4·3사건 진상 규명 동지회'를 결성하여 7일 동안 도보로 제주도 일주를 하며 4·3사건 피해 실태를 조사하고, 국회 4·3사건 진상 조사단이 제주도 방문시 4·3 피해 내용을 증언하였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 아카이브, 이문교 현 제주 4.3 평화재단 이사장의 구술 내용)

그로부터 59년이 흘렀다. 그때처럼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여전히 시원한 답을 주지 않고 있다. 곧 4.19 혁명 기념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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