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우가 지난 10일 오후(현지시간) 영국 카디프의 밀레니엄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한국 대 일본 3,4위전에서 승리한 뒤 관중석에서 전달받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그라운드를 달리고 있다. IOC는 이를 문제 삼아 박종우에게 메달 수여식 참가 금지와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박종우가 지난 2012년 8월 10일 오후(현지시간) 영국 카디프의 밀레니엄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한국 대 일본 3,4위전에서 승리한 뒤 관중석에서 전달받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그라운드를 달리고 있다. 당시 IOC는 이를 문제 삼아 박종우에게 메달 수여식 참가 금지와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 연합뉴스

 
2012년 8월 10일 한국은 런던 올림픽 남자축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숙적' 일본을 2-0으로 제압하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축구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 쾌거였다.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고 이는 한국의 중앙 미드필더 박종우(부산 아이파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관중석에서 던져준 종이를 들고 그라운드를 돈 박종우는 이내 논란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관중석에서 날아온 종이에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쓰여 있었다. 우리에게는 '지구는 둥글다'처럼 너무 당연한 말이었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생각은 달랐다. 박종우의 메시지가 '경기장에선 그 어떤 정치적인 언급을 해선 안 된다'는 올림픽 룰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것. 결국 박종우는 메달 세리머니에 참석하지 못했고 이듬해 2월 강한 경고와 함께 '미디어 노출 없이 조용히 메달을 수여한다'는 조건 하에 간신히 동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박종우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여러 스포츠 종목, 특히 축구에서는 경기장에서 정치나 그 밖에 다른 의미가 담긴 행동과 표시 등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일본 축구대표팀 응원단이 국제 경기에서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를 들고 나왔다가 매번 논란이 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런데 국회의원 113명이 소속된 한국 제1 야당에서는 '선거'라는 자신들의 특별한 행사를 위해 스포츠 경기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정치인들의 경기장 난입, 짜릿한 역전승에도 주인이 되지 못한 선수들

지난 3월 30일 토요일에는 창원시 성산구 국회의원을 뽑는 4·3 보궐선거를 앞두고 마지막 주말 유세가 한창이었다. 자유한국당에서는 강기윤 전 19대 국회의원을 후보로 공천했고 더불어 민주당과 정의당에서는 정의당의 여영국 경남 전 도의회 의원을 단일후보로 내세웠다. 고 노회찬 의원의 지역구였던 만큼 정의당으로서는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자리였고 자유한국당에서도 부·울·경의 중요한 한 석을 가져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2019년 3월 30일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K리그1 경남 FC와 대구 FC의 경기. 경남 선수들이 승리 후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2019년 3월 30일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K리그1 경남 FC와 대구 FC의 경기. 경남 선수들이 승리 후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더불어 이날 성산구 사파정동에 위치한 창원축구센터에서는 경남FC와 대구FC의 K리그1 4라운드 경기가 열렸다. 지난해 리그 2위로 돌풍을 일으킨 경남은 올 시즌 개막전 승리 후 연패를 당해 대구와의 경기는 반드시 잡아야 하는 중요한 일전이었다. 6000명이 넘는 관중 속에 치러진 이날 경기에서 경남은 배기종의 멀티골에 힘입어 대구에 2-1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날의 주인공은 승리한 경남 선수들이 아니었다.

선거 전 마지막 주말, 많은 유권자들이 집결하는 지역구의 가장 큰 행사에 보궐선거 후보들이 빠질 수는 없는 노릇. 실제로 각 당 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은 경기장 주변에서 부지런히 선거운동을 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자유한국당에서도 강기윤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보수진영의 유력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가 직접 내려왔다. 그리고 황 대표와 강 후보 일행들은 창원축구센터에서도 남다른 존재감을 과시(?)했다.
 
 30일 오후 K리그 경남FC와 대구FC 경기가 열린 창원축구센터에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창원성산 보궐선거에 출마한 강기윤 후보가 관중석을 돌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지난 3월 30일 오후 K리그 경남FC와 대구FC 경기가 열린 창원축구센터에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창원성산 보궐선거에 출마한 강기윤 후보가 관중석을 돌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황교안 대표와 강기윤 후보를 비롯한 10여 명의 선거운동원들은 후보 이름, 혹은 자유한국당의 기호가 적인 붉은색 점퍼를 입고 경기장에 들어가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적극적으로 선거유세를 했다. 시민들과 악수를 나누고 어린이들과 사진을 찍는 등 여느 유세 현장과 다름없는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스포츠 경기장 내에서는 그 어떤 정치 활동도 엄격히 금지돼 있는데도 말이다.

경남 구단 관계자들의 제지가 이어지자 황 대표는 그제서야 겉옷을 갈아입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규정을 몰랐다"고 했을 뿐 이에 대한 황 대표의 공식적인 사과는 없었다. 문제를 지적하는 보도가 이어지자 지난 3월 31일 강기윤 후보 측은 "경남FC와 팬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정말 미안하고 죄송하다"라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차원의 사과는 아직 없다. 

이들이 선거 유세 후 경기를 관람하지 않고 자리를 떠난 부분도 아쉽다. 어쩌면 촉박한 선거운동 일정에서 한가하게 축구 경기나 볼 시간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거 운동 직후 경기장을 떠난 것은 더욱 관중을 향한 존중이 없었던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 만약 황 대표와 강 후보가 정식으로 표를 구입해 경남 유니폼을 입고 2시간 동안 관중들과 함께 응원을 했다면 자유한국당과 강 후보는 창원 시민들에게 훨씬 좋은 이미지를 심어줬을 것이다. 

경남FC에 유난히 자주 찾아오는 '정치 잔혹사'
 
 2019년 3월 30일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K리그1 경남 FC와 대구 FC의 경기. 전광판에 유료관중 수가 표시됐다.

2019년 3월 30일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K리그1 경남 FC와 대구 FC의 경기. 전광판에 유료관중 수가 표시됐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정치인에게 선거는 가장 중요한 행사이기 때문에 선거를 치르다 보면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겪게 된다. 어쩌면 자유한국당에서는 이번 경기장 난입을 선거운동 과정에서 겪었던 하나의 가벼운 에피소드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가 스포츠의 영역을 아무렇지도 않게 침범해 버린 이번 일로 축구팬들이 받은 분노와 상처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물론 전국 어디, 아니 세계 어디에서도 스포츠가 정치의 개입을 받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이번 사건의 당사자가 경남FC라는 사실이 축구팬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 경남FC는 과거에도 정치적인 일에 휘말려 구단이 여러 차례 위기를 겪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는 경남뿐 아니라 K리그 전체의 흑역사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는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도민구단은 그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장이 구단주 역할을 맡는데, 2014년 경남의 구단주는 경남도지사였던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였다. 당시 경남은 K리그 클래식에서 강등 위기에 처했는데 홍 전 지사는 선수들을 격려하긴커녕 "2부리그로 떨어지면 구단 운영이 힘들다"며 구단 해체 가능성을 언급했다. 결국 사기가 떨어진 경남은 2014년 2부리그로 강등됐다. 그리고 130억 원에 달하던 경남FC의 예산은 이듬해 50억 원으로 폭락했다.

경남은 지난해 시즌 리그에서 2위를 차지하며 승격팀으로는 역대 최초로 첫 시즌에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내는 쾌거를 달성했다. 하지만 현재 경남은 김경수 지사가 드루킹 댓글 조작 혐의로 구속되면서 구단주가 부재인 상황이다. 현재는 박성호 경남지사 권한대행이 김경수 지사 대신 경남FC의 구단주 대행도 함께 맡고 있다. 하지만 대행체제에서 앞으로 적극적인 투자나 안정된 구단 운영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경남 FC 구단의 상벌위 상정 여부는? 1일 오후 서울 축구회관에서 열린 한국프로축구연맹 4차 경기위원회에서 김현태 경기위원장(왼쪽)이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 경남 FC 구단의 상벌위 상정 여부는? 1일 오후 서울 축구회관에서 열린 한국프로축구연맹 4차 경기위원회에서 김현태 경기위원장(왼쪽)이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1위 긴급회의를 열고 경남FC에 대한 징계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2일 상벌위원회를 열어 경남FC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하기로 했다. 사안의 크기에 따라 최대 승점 10점 이상의 감점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축구 경기에서 승점 10점은 자그마치 3승 1무의 성적을 거둬야 쌓을 수 있는 승점이다. 만약 승점 10점 삭감 징계를 받는다면, 상위권 경쟁을 노리는 경남에는 치명적인 피해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축구팬들이 받은 상처에 대한 위로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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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4·3보궐선거 자유한국당 황교안대표 경남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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