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버나움> 포스터

영화 <가버나움>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가버나움>이라는 제목만으로 나는 이 영화가 기독교 관련 영화라고 생각했다. 영화관에 가보니 실제로 교회 선교회의 느낌이 물씬 나는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뜻하지 않게 신앙 영화를 보게 되는구나 하는 기대 반 실망 반으로 기분이 묘했다.

예수가 많은 기적을 행했던 그곳에서 또 어떤 기적을 영화에 담으려나 하는 고정관념은 영화가 시작되고 곧바로 사라졌다. <가버나움>은 거룩한 이야기도 아니었고 당연히 예수가 등장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낯선 중동 지역의 빈민가가 펼쳐지면서 다소 거북한 영화를 보게 됐네 하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가버나움>의 한 장면

<가버나움>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사람은 누구나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태어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 생명의 탄생에 '신의 섭리'라는 인간이 다가갈 수 없는 영역을 부여했을지도 모른다. <가버나움>의 주인공인 열두 살 소년 자인과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동생 사하르도 자신들의 인생에 대한 신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고 생각할 여유도 없는 삶을 살아간다.

사하르가 생리를 시작하자 자인은 곧 사하르에게 닥칠 고난을 어떻게 해서든지 막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성장한다는 것은 곧 새로운 불행의 시작이라는 것을 그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생리대를 훔쳐다 주며 부모가 알지 못하도록 애쓰는 장면은 슬픔보다 더 큰 분노를 동반한 미지의 세상을 보여준다.

​여기에 나오는 누구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변명하거나 항의할 수 있을 것이다. 자인이 받은 방치와 학대, 사하르가 접한 조혼과 죽음, 불법이민자 라힐이 받는 부당한 대우, 라힐의 아들 요나스가 겪는 가족의 부재, 심지어는 자인의 부모가 견뎌야만 하는 삶의 무게까지도 각자의 상황에 따라 변명이 있고 탄식이 있을 수 있다.
 
 영화 <가버나움> 스틸컷

영화 <가버나움>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

 
영화에서는 자인이 부모를 고소하는 것이 큰 줄기를 이룬다. 하지만 이들 등장인물 중 누가 누구를 고소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그들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 불평등과 빈곤으로 허덕이고 있었다. 개인의 문제가 한 가지의 원인이 아니듯이 사회나 국가의 문제 또한 한 가지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확실한 것은 자인이나 사하르의 불행은 결코 본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불행을 해결해야 하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

정작 이 영화가 나에게 준 감동은 이러한 비인간적 상황에 대한 분노를 격한 선동없이 일으켰다는 것에서부터 왔다. 정치적 상황과 사회적 이데올로기와 개인적 욕망에 메일 수밖에 없는 어른의 시각이 아닌 아이들의 눈을 통해 이야기를 펼쳐나갔기 때문일까. 난민문제나 아동방치와 같은 사회적 문제뿐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문제에 대해서도 어른이 만든 문제의 가장 큰 피해자인 아이들을 보여줌으로 공감을 스며들게 했다.
 
 <가버나움> 스틸컷

<가버나움> 스틸컷 ⓒ 세미콜론 스튜디오 , 그린나래미디어(주)

 
동생 사하르, 라힐의 한 살짜리 아들 요나스, 꽃팔던 소녀 메이소운까지 자인을 둘러싼 아이들 모두가 행복이라고는 모르고 살았을 것 같은데도 어린아이이기에 내뿜을 수밖에 없는 밝은 빛을 순간순간 발한다. 그 빛이 제대로 발할 수 있도록 우리가 어른이라고 일컫는 세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의문과 책임감이 불친절하지만 격하지 않게 다가왔다.

​영화가 시작될 때 느꼈던 낯선 중동 빈민가의 거북함은 영화가 끝날 때 전문배우가 아닌 난민 아이들을 캐스팅한 내용의 자막을 보고 나서는 신선함과 경이로움으로 덮였다. 신분증 사진을 찍는 자인의 웃음이 마지막에 나온 덕에 자리에서 일어날 때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다. 자인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던 관객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일까. 눈물을 흘려도 모자랄 내용에 웃는 얼굴로 마무리를 해 준 감독의 마음이 느껴졌다. 눈물이 아닌 웃음을 본 것으로 나는 성찰과 의무의 값을 어떻게 지불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관객도 아마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가버나움 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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