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받는 이매리  배우 이매리가 지난 2011년 10월 1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48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배우 이매리(자료사진) ⓒ 연합뉴스

 
"부끄러운 줄 알라. 6년 동안 당신들과 싸웠다. 은폐시키려고 했던 모든 자들 또한 공범자."

방송인이자 배우 이매리씨가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재했다가 최근 삭제했다는 글의 일부다. 이 글에는 방송계와 정·재계 인사들의 성추행 혐의 폭로 등이 담겼고, 특정인의 실명이 거론됐다. 이매리는 이 글에서 2013년 3월부터 6월까지 서울의 한 대학 최고위과정을 다니며 정·재계 및 학계 유명인사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고인이 된 아버지에 대한 모욕까지 당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씨는 이 글에서 "내 불이익에 대해 침묵을 강요했고 술 시중을 들라 했다. 부모님 임종까지 모독했으며, 상 치르고 온 사람에게 한마디 위로 없이 '네가 돈 없고 TV에도 안 나오면 여기에라도 잘해야지'라며 웃었다. 그래 놓고 지금은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한다"라고 적었다. 이씨가 글에서 방송계 고위 인사 A씨, 국회의원 B씨, 대기업 임원 C씨 등이다. 방송사 PD 출신 전 국회의원 D씨 역시 가해자 중 한 명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폭로성 글이 일파만파 파장을 키운 것은 26일 시민단체 정의연대 측이 현재 카타르에 거주 중인 이매리씨가 4월 초 기자회견을 연다고 밝히면서다. 이날 보도된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정의연대 관계자는 "이매리씨가 성추행 등을 당하고도 7년간 외롭게 싸워오다 최근 장자연 사건이 다시 불거지고 수사 기간이 연장되면서 용기를 냈다"라며 "아직 회견 시간과 장소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곧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씨 또한 입을 열었다. 같은 날 <한국일보>,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씨는 "2011년 SBS 주말드라마 <신기생뎐> 촬영 중 부상을 입고 불이익을 당한 것에 대해 공론화를 하고 싶었으나, 최고위과정에 함께 다니던 사람들은 이를 듣지 않았고 오히려 말하지 말라고 압박했다"라면서 "아버지 임종 직전에도 이들에게 모욕을 당했고, 술 시중과 성추행까지 당했다"라고 주장했다.

"윤지오씨와 서지현 검사를 응원하면서 아버지 묘소에 가기 전까지 이들의 사과를 받기 원한다."

이씨는 폭로에 나선 계기 중 하나로 '장자연 사건'의 증언자이자 고 장자연의 동료 배우였던 윤지오씨, 그리고 '미투 운동'의 상징인 서 검사의 이름을 거론했다. 이매리씨는 앞서 지난 2018년 6월 이씨는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 등을 통해 <신기생뎐> 출연 당시 당했던 '방송사 갑질' 등을 폭로한 바 있다.

이러한 이씨의 성폭력 폭로와 기자회견 예고는 과거 '방송사 갑질' 폭로에서 더 나아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더 민감하진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듯 보인다. 반면 이씨가 지목한 가해자 중 한 명은 한 언론을 통해 이러한 폭로를 "사실 무근"이라 일축하며 이씨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대응할 뜻을 밝혔다. 이씨의 '주장'이 '팩트'로 굳어질지는 우선 이씨의 기자회견 이후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카타르에 거주 중인 이씨가 "응원한다"고 밝힌 윤지오씨는 '장자연 사건'의 재수사를 촉구하며 인터뷰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또 다른 연예인들의 증언을 호소하면서.

이매리의 폭로, 윤지오의 또 다른 호소
 
 KBS 2TV 월화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써니 역으로 출연했던 탤런트 故 장자연씨의 발인이 9일 오전 성남시 분당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가운데 고인의 영정이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다. 2009.3.9

지난 2009년 3월 9일, 고(故) 장자연씨의 발인 당시 모습 ⓒ 연합뉴스

 
"이 (장자연 언니의) 사건에 대해서는 10년 동안 (수사기관이) 솔직히 뭐 했냐라는 질문을 드리고 싶단 말이죠. 왜냐하면 어쨌든 공소시효 계속 운운하시는데 그러면 공소시효 다가올 때까지 도대체 뭘 하셨냐라는 말이죠."

요즘말로 '뼈 때리는' 돌직구가 아닐 수 없다. 고 장자연씨의 동료 배우 윤지오씨는 "범죄 크기의 크고 작고를 분류할 수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2009년에 아직 정체돼 있는 느낌이에요, 사건 자체가. 더 이상 나아질 진전이 보이지 않는 상태"라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25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직접 출연해서 한 말이다.

최근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김학의 전 차관의 별장 성폭행 사건에 대해 재수사를 권고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버닝썬 사건'에 대해 "경찰의 명운을 걸고 수사하겠다"고 두 번이나 천명했다. 윤씨의 안타까움은 바로 여기서 비롯됐을 것이다.

두 사건과 달리 쏟아진 국민 여론에도 불구하고 장자연 사건의 진척은 비교적 지지부진한 듯 느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윤씨가 공소시효에 관한 주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윤씨는 이달 초 방송에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며 대검찰창청 진상조사단의 조사에 응하는 중이다. 또한 수많은 언론 인터뷰를 이어가고 있는 윤씨는 변함없이 고 장자연씨의 타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방송에서 윤씨는 "(장자연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명백한 증거 자체가 없다"라며 "그렇다면 타살의 여부, 타살의 가능성도 열어두고 공소시효를 늘려서, (수사할 수도 있다) 그러면 (공소시효가) 25년에서 더 늘게 된다"고 주장했다. 적극적으로 타살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본격적인 재수사를 위한 우리 사회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호소였다. 또 윤씨는 자신이 진상조사단의 조사를 계속 받는 중이라고 밝혔다.

"자연 언니의 죽음과 관련해 당시 정황을 잘 아는 목격자가 배우 이미숙씨를 제외하고도 연예계에 5명이 더 있습니다."

지난 26일 KBS <사사건건>에 출연한 윤씨는 연예인들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윤씨가 그간 본인을 두고 '증언자'라는 표현을 써 왔다. 그 속뜻 역시 "나는 유일한 목격자가 아니라 (목격자 중) 유일한 증언자이고, 나머지 목격자 5명은 어쩌면 나보다 자연 언니와 더 친분이 있었던 분들"이라던 윤씨의 이날 인터뷰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 말은 지금까지 자신의 증언으로 묻힐 뻔했던 장자연 사건의 여기까지 끌어온 '유일한 증언자'가 또 다른 목격자들에게 보내는 호소와도 같아 보였다. 하지만 윤씨가 무턱대고 인정에 호소하는 것은 아니었다. 윤씨는 증언 이후 거주하던 캐나다에서도 여러 차례 실질적인 위협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그로 인해 받은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를 의식한 듯, 윤씨는 "이들도 이들대로의 삶이 있고 (증언을 위해)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이들의 실명을 거론하긴 조심스럽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비공개로 공공기관이 아닌 장소에서 증언할 수 있다면 나보다 명확히 (진실을) 알고 있는 분들"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이러한 동참 호소는 결국 연장된 진상조사단의 조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독려일 터다. 그리고 이에 화답하는 이들이 나오고 있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살아남아 증언하겠습니다"

"최근 서울 서초동 법원 앞에서 열린 고 장자연씨 사건 관련 집회인데, 집회 제목이 '방 사장 사건 진상규명 요구'였습니다. 방 사장이 누군지 명확히 드러난 건 아니지만 장자연 사건이 아니다, '방 사장 사건'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건데, 문건에 가해자로 적시된 방 사장 이름을 넣어야 그 사건의 성격이 명확해진다 이거죠."

지난 26일 KBS <뉴스9>은 "관심의 초점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를 전했다. 정준영 사건, 조재범 사건, 그리고 최근 김학의 사건 등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이름으로 사건을 규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피해자의 호소에 여론과 언론이 발맞추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성추행과 갑질 등을 폭로할 계획이라 밝힌 이매리씨는 윤지오씨의 호소에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윤씨의 호소가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는 증거다. 또한 이는 '장자연 사건' 자체에 대한 사회적 의구심은 물론 윤씨의 목소리에 화답한 여론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파장이 '장자연 사건' 역시 '김학의 사건'과 같은 재수사로 이어질지, 또 '미투 운동'과 결합, 이매리씨와 같은 또 다른 고발로 이어질지도 지켜보도록 하자. 여전히 증언을 이어가고 있는 윤씨의 행보와 함께.

그리고 27일 오후, 윤씨는 향후 자신이 사고사로 위장되는 것을 염려해, 최근 발급받은 의무기록 사본 증명서를 본인의 SNS에 공개했다. 혹시나 자신이 죽게 되더라도 사고사 혹은 자살로 '위장'되지 않도록 심리상태를 체크해 기록했다는 것이다. 글에서 윤씨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윤지오로 기억되고 싶습니다"라며 "이제 너무 염려 마시옵고 제가 한국인으로서 한국에 있는 동안 만큼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살아남아 증언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배우 윤지오 씨가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고(故) 장자연씨 강제추행 관련 재판에서 증언한 뒤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연장 소식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9.3.18

배우 윤지오씨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고(故) 장자연씨 강제추행 관련 재판에서 증언한 뒤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연장 소식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윤씨의 행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더 늘어난 셈이다. 아래는 윤씨가 SNS에 남긴 글 중 일부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저와 언니가 있었던 기획사 대표님이 담당했던 배우 중 자살로 밝혀진 분은 언니를 제외하고 3분이나 더 계시고 3분 역시 자택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유서없이 발견되었습니다. 죽음에 관하여 진상규명을 힘쓰셨던 2분도 자살로... 형사 1분은 가슴까지도 오지 않는 낚시터에서 익사하여 사고사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중략).

우연이라고 하기에 저는 혹여나 사고사로 위장되어지지 않기 위해 경호원분들과 24시간 동행하고 있으며 자살로 위장될 수 있다 판단하여 이렇게 정신의학과에서 제 심리상태를 체크하고 기록에 남기고 변호인단께 전달해드렸고 과거사조사위원회에도 전달 드리려 합니다."
윤지오 이매리 장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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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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