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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원하지 않았던 임신을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짐과 동시에 가족은 풍비박산 나버리고 말았다. '원하지 않았던 임신'이라는 말은 여덟 글자의 단어보다 더욱 많은 것을 함의하고 있었다. 그것은 원하지 않았던 임신을 한 사람이 출산을 결심하게 될 때 겪게될 고난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했고, 임신 중절을 선택했을 때 사회적 낙인과 그 낙인으로 인한 상처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임신 중절은 선택되기 어려웠다. 결혼하지 않은 사이에서의 임신일 경우 선택이라는 말이 의미 없는 것이 되기 쉬웠으니까.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는 자신이 죽어버려야 겠다며 창밖으로 뛰어내리려고 했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는 하루 종일 그를 말리며 울었다. 어떤 구성원은 갈팡질팡하며 임신 중절을 하라고 얘기했다가, 곧바로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하겠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모두가 갈팡질팡 하는 사이 시간은 자꾸만 갔다. 시간이 갈수록 임신 중절이 어려워진다는 사실이 모두를 무겁게 짓눌렀다.

가족 모두에게 지독한 트라우마가 된 이후 이 사건은 끝이 났다. 이 사건의 관련자 중 유일하게 그 가족이 아닌 한 남성은 많은 책임에서 벗어난 채 자신이 입은 상처에만 골몰했다. 가족 중 일부는 그가 자신을 피해자의 위치에 놓으려 하는 걸 견딜 수 없어 했다. 임신 중절을 권유하고 독촉했던 가족이 가해자의 위치에 서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은 저 가족만의 비극은 아니다. 낙태죄가 존속하는 대한민국에서 누군가는 비슷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 <나의 자궁 나의 것>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 <나의 자궁 나의 것>에서 불렸던 노래의 가사
▲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 <나의 자궁 나의 것>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 <나의 자궁 나의 것>에서 불렸던 노래의 가사
ⓒ 청년정치공동체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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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 임신했다면 돌이킬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나는 2016년 10월 15일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에 참여했다.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이 참가자의 발언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여성들은 "덮어놓고 낳다보면 나는 인생 개망해. 덮어놓고 낳다보니 나는 경력단절녀"라는 노래를 큰 소리로 불렀다. 임신 중절이 씻을 수 없는 죄가 아니라 여성의 몸과 인권, 자기결정권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일로 바뀌어야 한다는 발언들이 이어졌다. 나는 그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큰 소리고 구호를 제창했다. 광장에서 나는 해방감을 맛보았다.

그러나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감할 때도 있었다. 지난 3월 19일 낙태죄 폐지 1인 시위에 참여하는 날, 헌법 재판소 앞으로 갔을 때 나는 낙태죄 폐지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마주해야 했다. "엄마! 아빠! 살려주세요. 나는 나는 죽기 싫어요"라는 피켓도, "수정하는 순간 생명"이라는 피켓도 눈에 보였다. 그 공간에서 내가 들고 있는 피켓을 다시 뒤집어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펼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같이 1인시위를 하기로 했던 동료가 도착한 이후에야 나는 피켓을 들고 서 있을 수 있었다. 피켓을 들고 있는 시간을 견디기 위해 나는 마음속으로 '나는 강하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외쳤다. 
 
낙태죄 폐지를 위한 1인 시위 낙태죄 폐지를 위한 1인 시위를 진행중이다. 옆에는 낙태죄 폐지 반대를 외치는 1인시위 참가자가 서 있다.
▲ 낙태죄 폐지를 위한 1인 시위 낙태죄 폐지를 위한 1인 시위를 진행중이다. 옆에는 낙태죄 폐지 반대를 외치는 1인시위 참가자가 서 있다.
ⓒ 신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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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절이 식탁에 오르기 위해서

나는 나의 가족들과 임신 중절에 대해 대화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우리가 모두 과거와 잘 헤어지고 앞으로를 마주하기를 원한다. 낙태죄 폐지 시위에서 느꼈던 설렘과, 함께 1인시위를 했던 생전 처음 본 사람에게 느꼈던 자매애를 가족들과도 나누고 싶었다. 자유롭게 사랑하고, 자유롭게 이별하고, 선택이 낙인이 되지 않으며, 나의 몸이 국가 산아정책에 따라 마음대로 취급되지 않기를 원한다.

오랜 시간, 여성의 재생산권과 몸은 국가 통제를 받았다. 임신 중절이 금지되었던 오랜 역사 속에서 국가는 산아제한정책에 따라 임신 중절을 허용하기도 하고, 금지하기도 하였다. 태아도 생명이라는 표어가 무색하게, 태아가 생물학적으로 여성일 때 임신 중절은 당연한 것이 되었던 시기도 있었다.

'태아도 생명이다'라는 구호는 이미 낡은 구호가 되었다. 임신 중절의 문제는 태아가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여성의 몸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문제로 옮겨가야 한다. 여성의 인권과 재생산권, 그리고 몸에 대한 권리로서 임신 중절이 논의되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낙태죄 폐지는 그 시도의 첫 번째에 불과하다. 경제적, 문화적, 제도적인 벽들이 허물어진 다음에야 이 문제는 종결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는 4월에는 낙태죄 폐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온다. 그동안 23만 명의 시민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낙태죄 폐지와 미프진(임신중절약) 도입을 외쳤고, 75%의 시민들이 낙태죄 폐지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헌법재판소에는 매일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세상을 바꿔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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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정치공동체 <너머> 대표이자 기본소득당 서울 창준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