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수많은 밴드가 있다. 얼마 전 아슬아슬하게 천만 관객몰이를 놓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퀸이 있으며, 콜드플레이, 마룬 5, 라디오 헤드는 밴드의 숨이 한풀 꺾인 요즘 그 명맥을 이어주고 있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린킨 파크, 림프 비즈킷, 폴 아웃 보이, 악틱 몽키스, 프란츠 퍼디난드가 전국을 호령했다. 그 이전에는 너바나가 있었고, 그 이전에는 섹스 피스톨즈, 레드 제플린이 있었다. 비틀즈는 말할 것도 없다.
 
시대의 격차를 두서없이 널뛰어가며 소환하긴 했지만 대중음악사에는 밴드가 참 많다. 잠깐. 문뜩 의문이 든다. 여성 밴드가 없는 것이다. 카펜터스, 플리트우드 맥이 있을지언정 남녀 혼성이고 순수 여성으로만 이뤄진 그룹은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여기 그 정답이 있다. 오늘의 주인공 린다 페리가 수장으로 이끈 포 넌 블론즈(4 Non blonds)다.
 
#1. 안 될 거 없잖아 : 반항과 쿨함으로 나아간 밴드 포 넌 브론즈

포 넌 블론즈란 이름을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 그룹의 정체성이 보인다. 네 명의 금발이 아닌 사람들이라니. 금발로 대변되는 백인 우월주의, 기득권층에 저항해 부정어 Non을 붙여 자신들을 규정했다. 구성원의 면면은 더 거침없다. 바로 모두가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였기 때문이다. 몇몇 문제로 정규 음반 발매에 앞서 남성 기타리스트가 추가되긴 했지만 이들의 탄생은 시작부터 세간의 시선 따위는 걷어찬 호기로움을 품었다.
 
이 모든 활동의 우두머리는 린다 페리다. 데뷔 음반 < Bigger, Better, Faster, More! >는 전부 그의 손끝에서 시작됐다. 그중 빌보드 싱글 차트 14위를 비롯해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끈 'What's up'은 변혁을 향한 일갈이자 투박한 외침이다.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가 쉬운 코드로 바탕을 만들고 재니스 조플린이 떠오를 만큼 풍부한 성량의 거친 린다 페리의 보컬이 등장한다. 그리고 노래한다. '세상이 남자들의 인류애(형제애)로 만들어졌다는 걸 안다. 난 말한다.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고,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고!'
 
주류의 잣대를 거꾸로 찔러 출발한 포 넌 블론즈는 '안 될 거 없잖아'하는 명쾌한 의지와 쿨한 자신감을 성공이란 결과물로 증명해낸다.
 

#2. 안 될 거 없잖아 : 연대와 리더로서의 린다 페리

밴드는 데뷔작을 끝으로 해산한다. 매스컴의 관심이 린다 페리에게만 쏟아지기도 했고, 결국 음악적 견해차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후 그는 제작자, 작곡가로서 더 큰 명성을 날린다. 데뷔 초 핑크의 대중화에 힘 쓴 트랙 'Get the party started'의 화려한 클럽 사운드도, 틴팝 스타에 머물던 크리스티나 아길레나의 내면을 비춰준 'Beautiful'도 모두 그의 작품이다. 각각 싱글 차트 4위, 2위에 안착.
 
단 그의 방향성을 놓쳐선 안 된다. 동성애, 본질적 아름다움을 말하는 'Beautiful'은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와 함께 대표 LGBT 찬가로 자리한다. 이어 그는 코트니 러브를 비롯한 여성 멤버 주축의 밴드 홀, 노 메이컵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알리샤 키스, 흑인, 여성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아끼지 않는 솔란지 등에게 곡을 준다. 억압된 여성성을 위해 노래를 뽑아드는 뮤지션들이다. 원석을 다듬는 실력 또한 다부지다. 'You're beautiful'로 유명한 제임스 블런트를 발굴한 건 다름 아닌 린다 페리였다.
 
록, 포크, 알앤비, 댄스팝, 심지어 컨트리까지. 그가 종횡무진 행진한 음악 신엔 성공과 연대의 시너지가 퍼진다. 사회의 차별을 무너뜨리는 시선과 다분히 확실한 히트곡 메이커의 기질. 그를 다시금 주목해야 한다.
 
# 안될 거 없잖아 : 사랑

끝으로 그의 현재 삶을 조명한다. 2013년 동성의 연인과 결혼한 린다 페리는 몇 해 전 첫 번째 아이를 출산했다. 레즈비언이기 때문에 그를 주목해볼 여성 뮤지션이란 카테고리에 묶는 것이 아닐까 하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성향과는 별개로 그가 세상에 던진 묵직한 여성에 관한 메시지들, 편향된 시각을 깨부수며 택한 사랑 방식에 집중해보자. 그는 자기 삶을 살았고 세상에 목소리를 냈다. 변화를 향한 찬가와 함께 말이다.
 
지나치게 해석의 층위에서 그녀를 바라봐서 아쉽다. 텍스트로 펼쳐 놓고 따져 본 뮤지션 린다 페리는 시쳇말로 지금도 잘 나가는 아티스트다. 올해 초 61회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트레이드 마크인 길쭉한 모자를 쓰고 논 클래시컬 부문 후보자로 현장을 찾았다. 미국의 대표 음악 잡지 롤링스톤은 얼마 전 그의 음악 인생을 톺아 선정한 15곡을 소개했다. '이래야만' 하는 사회의 올가미에 '안될 거 없잖아'라고 응수한 거친 송곳니 린다 페리. 그의 '허 스토리'는 현재 진행형이다.
 
음악 여성 페미니즘 리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