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왕종명 앵커가 배우 윤지오씨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장자연 사건' 관련자 실명 공개를 요구했던 것에 관해 사과했다.

MBC 왕종명 앵커가 배우 윤지오씨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장자연 사건' 관련자 실명 공개를 요구했던 것에 관해 사과했다. ⓒ MBC


"어제 '뉴스데스크'는 고 장자연씨의 동료 배우 윤지오씨를 스튜디오에 초대해 생방송으로 인터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왕종명 앵커가 정치인의 실명을 밝혀달라고 거듭 요구한 부분이 출연자를 배려하지 않은 무례하고 부적절한 질문이었다는 시청자들의 비판이 많았습니다.
 
왕종명 앵커와 뉴스데스크 제작진은 이러한 시청자 여러분의 비판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당사자인 윤지오씨에게 직접 사과했으며, 오늘 뉴스데스크를 통해 시청자 여러분께도 사과드릴 예정입니다. MBC 뉴스데스크는 시청자 여러분의 비판에 늘 귀 기울이며 더욱 신뢰받는 뉴스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19일 오후 MBC 최승호 사장이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다. 하루 전 "더 넓고, 더 깊게 보는 뉴스데스크 오늘부터 30분 일찍, 7시 30분에 시작합니다"라며 <뉴스데스크>의 새로운 출발을 알린 것과는 180도 다른 사과의 글이었다. 19일 하루 거센 비판에 직면했던 왕 앵커의 무리한 인터뷰 진행을 두고 최 사장이 직접 진화에 나선 셈이다.
 
종종 자사 방송과 관련 소식과 사진을 전해왔던 최 사장이 직접 사과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해 5월 MBC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의 세월호 참사 희화화 논란 당시에도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님께 직접 사과하고 철저한 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라며 "조사 결과가 나오면 제가 직접 찾아뵙고 다시 한 번 사과드릴 예정이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과 시청자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라고 직접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신속하고 직접적인 사과는 <뉴스데스크> 오프닝으로도 이뤄졌다. 19일 당사자인 MBC 왕종명 앵커는 "저는 어제 뉴스데스크를 통해 고 장자연씨의 동료 배우인 윤지오씨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라며 뉴스의 시작을 아래와 같은 사과로 열었다.
 
신속했던 MBC 최승호 사장,  왕종명 앵커의 사과
  
 18일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한 고 장자연씨의 동료 배우 윤지오씨.

18일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한 고 장자연씨의 동료 배우 윤지오씨. ⓒ MBC

 
"질문 가운데 '장씨 문건에 등장하는 유력 인사의 실명 공개'에 대한 내용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출연자에 대한 배려 없이 무례하고 부적절하게 질문했다는 시청자 비판이 많았습니다. 이 비판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이 시간을 빌어 윤지오씨와 시청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방송사 사장이 직접 유감을 표명한 데 이어 메인 뉴스의 시작을 앵커가 통째로, 전면적인 사과로 여는 상황 자체가 그러했다. 그 사과가 논란 이튿날 신속하게 이뤄졌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었다. 사과를 받는 당사자인 윤지오씨 역시 이날 자신의 SNS에 왕 앵커에게 직접 사과를 받은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왕종명 앵커님뿐만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 그런 질문은 온라인 오프라인을 통해서 하루에도 몇십 차례 듣기 때문에 여러분이 우려해주시는 정신적인 고통은 일반인에 비해 낮습니다. 저 많이 강해졌거든요.
 
앵커님께서 문자를 보내주셨고 제가 아침에 잠들어서 점심에 일어나자마자 통화를 하였고 문자와 통화로 직접 사과해주셨습니다. 오랜 시간 언론인으로서 살아오셨던 앵커님의 커리어에 본의 아니게 해를 끼쳐드린 것 같아 저로서도 죄송한 마음이고 여러분들께 우려심을 갖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그러면서 윤씨는 "앞으로 모든 인터뷰가 목격자와 증언자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고 이뤄질 수 있었으면 바랍니다"라며 논란의 핵심을 짚기도 했다. 윤씨의 이러한 호소는 좀 더 넓혀보면 언론이 사건만, 그리고 특종이나 단독만을 향하며 바로 앞에 마주한 사람을 놓칠 때 벌어지는 오만한 사단을 경계하라는 읍소로 들리기도 했다.
  
 배우 윤지오 씨가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고(故) 장자연씨 강제추행 관련 재판에서 증언한 뒤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연장 소식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9.3.18

배우 윤지오씨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고(故) 장자연씨 강제추행 관련 재판에서 증언한 뒤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연장 소식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결과적으로, MBC와 왕 앵커는 어쨌거나 즉각 사과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비판 일색인 여론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익숙한 풍경은 아니다. 왕 앵커의 무리수에 가까운, 무례한 인터뷰는 오히려 친숙한 편이다.
 
익숙한 건 그 반대다. 우리가 보아온 사과 혹은 사과문들이 그랬다. 사과 형식을 빌린 요식 행위나 변명으로 일관하는 어이없는 사과문이 횡행했다. 이날 <뉴스데스크>가 단독 보도한 유리홀딩스 유인석 대표의 사과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MBC는 버닝썬 사건과 관련해 경찰 유혹을 부인하고 있는 유 대표가 보내왔다는 장문의 사과문 내용을 소개하며 보도 말미 이런 촌평을 내놨다.
 
"결국 유인석 대표는 자신을 둘러싼 범죄 혐의와 의혹들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사과문의 형식으로 이를 해명하는 듯하면서도 실제론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과들, 그리고...
 
뒤늦은 사과라도 꼭 필요할 때가 있다. 같은 날 김부겸 행안부 장관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국민들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이날 두 사람은 긴급 브리핑을 열고 '버닝썬 사건'에서 촉발된 각종 의혹과 이른바 '김학의 사건'과 '장자연 사건' 등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하루 전 문재인 대통령이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에 대해 철저하게 수사를 지시한 것에 대한 후속조치였다. 문 대통령은 "사건은 과거의 일이지만, 그 진실을 밝히고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신뢰받는 사정기관으로 거듭나는 일은 검찰과 경찰의 현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점을 명심해 주기 바랍니다"라고 지시한 바 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 참석해 버닝썬 사태 관련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 참석해 버닝썬 사태 관련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김부겸 장관은 '사과'란 단어를 입에 올렸다. '버닝썬 사건'으로 드러난 경찰 유착 의혹에 "행안부 장관으로서 깊은 사과를 드린다"고 말했다. 박상기 장관은 장자연 사건과 김학의 사건과 관련해 "구체적 방식을 생각 중"이라며 재수사 가능성을 언급했다.

박 장관은 특히 "효과적인 재수사가 될 수 있도록, 다시 말해 사실관계를 규명하지 못하고 과거사가 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사과가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수사와 진상규명으로 이어질지 지켜 볼 일이다.
 
물론 사과는커녕 당당하게 침묵과 무시를 이어가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그간 윤지오씨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장자연'이란 이름을 지면에 거의 싣지 않았던 <조선일보>가 대표적이다. 윤씨가 검찰 진상조사단 조사와 여러 인터뷰를 통해 지칭하는 '언론인 3명'이 포함된 언론사로 추정되는 곳도 <조선일보>다.
 
지난해 4월 <검찰 과거사 위원회, 재조사 대상 5건 추가 선정> 기사 이후 '장자연 사건'은 물론 윤지오씨의 이름조차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조선일보>도 문 대통령의 공식 지시와 국민 여론을 무시할 순 없었던 걸까.

19일자 <조선일보>는 <文대통령 "장자연·김학의·버닝썬, 검경 명운 걸고 철저히 수사하라">는 기사를 1면에 배치했다. 사건 수사 상황과 정치권 반응을 다룬 종합 기사와 함께였다. 과연 이들은 진상조사단의 조사가 두 달 연장되고, 국민여론은 물론 정치권까지 철저한 재수사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어떤 논조의 기사를 이어갈까. 
 
"(가해자를 지칭할 때) '그분들'이라고 얘기 안 해도 된다. 아직도 그 사람들에 대해 극존칭을 써야 할 만큼 두려움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속상하다. 고개를 숙일 일도, 눈을 깔아야 할 일도 없다. 이제 그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눈을 깔아야 할 일만 남았다."
 
19일 KBS1 <오늘밤 김제동>에 인터뷰를 위해 출연한 윤지오씨가 문건 속에 등장하고 자신에게 유무형의 위협을 가했다는 이들에게 '그분들'이란 호칭을 쓰자, 김제동이 한 말이다.

최승호 MBC 사장과 왕종명 앵커의 사과는 신속했다. '사과의 기술' 측면에서 보자면, 언론사의 책무 면에서 보자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또 다른 '그분들'은 10년이 넘게 사과는커녕 오히려 더 당당해진 듯하다. 국민 여론이 커질수록 부담도 커져갈 것이다. 과연 '그분들'이 사과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김제동의 위로가 실제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을지, 진상조사단의 결과 발표 이전까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도록 하자.
장자연 윤지오 왕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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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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