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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유명 클럽 '버닝썬' 출입구 앞 경찰 수사관들이 디지털 포렌식 장비 등을 들고 들어가려 하고 있다. 2019.2.14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유명 클럽 "버닝썬" 출입구 앞 경찰 수사관들이 디지털 포렌식 장비 등을 들고 들어가려 하고 있다. 2019.2.14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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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교씨 폭행사건이 일어난 2018년 11월 24일, 강남경찰서 역삼지구대 경찰관들은 버닝썬 편에 서 있었다.

19일 오후 발표된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조사에는 경찰과 버닝썬의 유착이 낱낱이 드러나 있었다. 이날 인권위는 김씨 어머니가 2018년 12월 23일 낸 진정 가운데 ▲ 경찰이 폭행 피해자인 김씨를 오히려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 이 과정에서 그에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고 ▲ 김씨 어머니의 신고로 119 구급대원이 출동했는데도 경찰이 돌려보내 적절한 의료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등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다만 ▲ 순찰차량과 역삼지구대에서 경찰이 김씨를 폭행했다는 부분은 수사가 진행 중이라며 의견을 내지 않았다. 인권위법에 따라 인권위가 수사기관에서 수사 중인 사안에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피해자 김씨의 진정 내용이 대부분 받아들여진 셈이다(관련 기사: 인권위 "'버닝썬 폭행 피해' 김상교씨 체포는 공권력 남용" http://omn.kr/1hwpp).

인권위 조사 내용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경찰이 공문서인 '현행범인 체포서' 내용을 피해자에게 불리하고 버닝썬과 경찰에 유리하게끔 허위 작성한 대목이다. 사건 당시 역삼지구대 경찰관이 작성한 체포서에는 "피해자가 쓰레기통을 발로 차고 클럽 직원들에게 욕설을 하고 고함을 치는 등 약 20여 분간 클럽 보안을 방해했다"고 돼 있었다. 이 부분은 경찰이 폭행 피해자인 김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한 명분이었다.

하지만 인권위 조사 결과는 달랐다. 이 사건 조사를 담당한 배윤호 조사관은 "당시 체포서에는 20여 분간 클럽 앞에서 행패를 부렸다고 돼 있는데, 영상 자료를 확인했더니 피해자가 클럽 앞에서 쓰레기봉투를 발로 차고 클럽 직원과 실랑이 벌인 건 2분이었고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됐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경찰관 멱살잡이? 경찰이 먼저 넘어뜨린 것"
 
박광우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총괄과장이 19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저동 인권위 인권교육센터에서 버닝썬 폭행 피해자가 제기한 진정 조사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인권위는 경찰이 폭행 피해자를 현행범 체포한 것이 권한 남용이고 인권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박광우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총괄과장이 19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저동 인권위 인권교육센터에서 버닝썬 폭행 피해자가 제기한 진정 조사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인권위는 경찰이 폭행 피해자를 현행범 체포한 것이 권한 남용이고 인권침해했다고 판단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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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체포서 내용 가운데 실제 현장 영상과 다른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박광우 인권위 조사총괄과장은 "체포서와 실제 영상에서 사실과 다른 부분이 4가지 확인됐다"면서 "(실랑이 시간 부풀리기 외에) 두 번째는 경찰관이 피해자를 넘어뜨렸는데 체포서에는 피해자가 오히려 경찰 멱살을 잡는 등 유형력(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직간접적인 행위를 뜻함 - 기자 주)을 행사했다고 돼 있었고, 세 번째는 체포서에는 피해자가 신분을 밝히지 않아 체포했다고 했는데 실제 신분 확인을 요구하지 않았다, 네 번째는 피해자가 버닝썬 직원의 다리를 잡아 바닥에 넘어뜨린 폭행을 했다고 기재돼 있는데 사실은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지적했다.

피해자가 경찰관 목을 잡고 넘어지는 두 번째 장면은 지난 2월 초 언론에 공개돼 논란이 됐던 장면이다. 당시 경찰 쪽은 이를 근거로 피해자가 경찰관 멱살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배 조사관은 "당시 경찰관들은 피해자가 격렬히 반항하면서 경찰관 목덜미를 낚아채는 유형력을 행사했다고 했지만 피해자가 한 차례 욕설로 항의한 건 맞지만 당시 목덜미를 잡았다기보다는 그런 상황을 제지하려고 경찰관이 피해자를 걸어서 넘어뜨리자 피해자가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중심을 잡는 과정에서) 앞에 있는 경찰관 목을 잡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 부분에 대해 배 조사관은 "어제 경찰이 인권위에 출석해서 사실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네 번째 장면 역시 경찰이 피해자를 버닝썬 장아무개 이사를 폭행한 가해자로 둔갑시킨 결정적 근거로 활용됐다. 배 조사관은 "(경찰 출동 전 CCTV) 영상을 보면 피해자가 클럽 직원에게 여러 차례 폭행을 당했는데, 체포서에는 오히려 사건 피해자가 클럽 직원을 걸어서 넘어뜨렸다, 폭행한 걸로 기재돼 있었다"면서 "이런 점들로 체포서가 공정하게 작성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버닝썬 이사에 관대한 경찰 "현장에 없다고 자진 출석 권유"
 
마약류 투약·유통 혐의를 받는 클럽 버닝썬의 이문호 대표가 19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마약류 투약·유통 혐의를 받는 클럽 버닝썬의 이문호 대표가 19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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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경찰은 김상교씨가 폭행 가해자로 지목한 버닝썬 장 이사에겐 관대했다. 당시 출동 경찰관들은 피해자가 "날 폭행한 클럽 직원이 도망갔다. 빨리 잡아와라!"라고 요구했지만, 장 이사가 현장에 없다는 이유로, 클럽 보안팀장에게 자진 출석을 '권유'하고 그냥 돌아갔다.

인권위는 "현행범인 체포서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기술되어 있지 아니하고 상당 부분 사실과 다르게 작성되어 있는 등 체포 업무를 공정하게 수행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면서 강남경찰서에 해당 경찰관들에게 주의조치를 하라고 요구했다.

인권위 침해구제 제1위원회는 "(현장 출동 경찰관들이) 112 신고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신원 확인을 요구하거나 사전에 체포 가능성에 대해서 고지하는 등 체포의 필요성을 고려하지 아니한 채 피해자를 현장 도착 후 3분 만에 현행범으로 체포한 행위는 당시 상황에 비추어 현저히 합리성을 잃은 공권력 행사의 남용으로 피해자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경찰이 체포서를 허위로 쓴 배경에 경찰과 버닝썬의 유착 등이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박광우 과장은 "우리는 현행범 체포가 적법한지 조사했고 그것에 대해 판단한 것"이라면서 "의도나 배경까지 고려는 하겠지만 판단이나 결정에는 담진 않았다"고 말을 아꼈다. 범죄 여부가 아닌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인권위 성격을 감안하면, 체포서 허위 작성과 경찰 폭력 행사 처벌 문제는 결국 수사기관 몫이 될 수밖에 없다.

태그:#버닝썬사태, #인권위, #경찰, #김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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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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