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이 '축구의 나라'라는 건 이른바 '축알못'('축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의 줄임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한국인들로만 구성된 '외인 구단'이 승승장구를 하고 있다면?

이처럼 믿을 수 없는 일을 실제 이루어 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스페인 7부 리그 소속 팀 '꿈 fc'가 그 주인공이다. 이 신기한 스페인의 외인구단을 < MBC 스페셜 >을 통해 이영표 선수가 소개했다. 
 
 < MBC 스페셜 > '다시 꿈은 이루어진다 - 스페인 외인구단 꿈fc'편 중 한 장면

< MBC 스페셜 > '다시 꿈은 이루어진다 - 스페인 외인구단 꿈fc'편 중 한 장면 ⓒ MBC

 
세상에, 자그마치 7부 리그라니? 한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운영되는 축구 리그가 3부 리그까지다. 그런데 한국 축구가 인프라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스페인에서는 축구 리그가 7부까지 운영되고 있다니.

7부 리그로 운영되는 스페인 축구계에는 선수만 한국의 40배인 80만 명이 활동 중이고, 지역 주민의 호응을 받으며 리그가 지역마다 활성화되어 있다. 지난 18일 방영된 < MBC 스페셜>은 스페인에서도 '축구' 하면 유명한 곳 중 하나인 카스티야 라만차를 찾았다. 제작진은 라만차 지역의 작은 도시 이에스까스를 연고로 둔 7부 리그 팀 꿈 FC를 조명한다. 한국인 선수들로만 이뤄진 꿈 FC는 현재 7부 리그 1위를 질주 중이다. 
 
 < MBC 스페셜 > '다시 꿈은 이루어진다 - 스페인 외인구단 꿈fc'편 중 한 장면

< MBC 스페셜 > '다시 꿈은 이루어진다 - 스페인 외인구단 꿈fc'편 중 한 장면 ⓒ MBC

  
꿈을 찾아 스페인으로 온 한국인들 

이에스까스의 7부 리그 축구팀 'Qum(꿈) fc'의 선수는 19명 전원이 한국인이다. 감독과 코치진만 스페인 사람이다. 선수들이 경기 연습을 하는 운동장을 앞에 두고 페드로 벨라스코 감독은 말한다. 선수들의 강점이 한국어라고. 상대 선수들이 알아 들을 수 없으니 시합 도중 얼마든지 선수들끼리 서로 소통하라고 말이다. 이렇듯 전원 한국인인 이들은 '축구를 하고 싶다'는 꿈 하나를 따라 머나먼 타국 스페인까지 왔다. 
  
 < MBC 스페셜 > '다시 꿈은 이루어진다 - 스페인 외인구단 꿈fc'편 중 한 장면

< MBC 스페셜 > '다시 꿈은 이루어진다 - 스페인 외인구단 꿈fc'편 중 한 장면 ⓒ MBC

 
지난 2017년 여름, '꿈을 이루고 싶은 분, 다시 도전하고 싶은 분'이란 문구 하나로 인터넷에 공지를 올리자 수많은 선수들이 모여들었다. 그 중 구혁균 선수는 치킨 집 주방에서 닭을 튀기다가 왔다고 한다. 고현철 선수는 브라질 유소년 축구 리그 출신이다. 21살의 원승현 선수는 신부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과 꿈 FC의 진출, 두 갈래 길을 두고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26살의 구성은 선수는 축구를 좋아했지만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없이 없다. 25살의 허준호 선수는 프로로 활동했지만 경기에 나서본 적이 없다.

한국이라면 애초에 서류 심사에서 떨어졌을 법한 사람들.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바늘구멍을 뚫기조차 힘든 이들이 자신의 꿈을 인정해준 이역만리 스페인 이에스까스로 날아와 '꿈 FC'라는 팀에서 뛰고 있다. 
 
 < MBC 스페셜 > '다시 꿈은 이루어진다 - 스페인 외인구단 꿈fc'편 중 한 장면

< MBC 스페셜 > '다시 꿈은 이루어진다 - 스페인 외인구단 꿈fc'편 중 한 장면 ⓒ MBC

 
그렇다면 과연 이런 팀을 꾸릴 정도로 무모한 도전을 벌인 사람은 누굴까? 선수들이 운동하는 곳 한 켠의 작은 방, 태극기가 덩그러니 달린 곳에 작은 책상을 마주하고 앉은 이는 46살의 김대호씨였다. 그는 폭발물 전문가로 한때 토목 현장을 누볐던 사람이다. 축구라고는 남들 다 그렇듯이 국가대표 경기나 보던, 알고 있는 축구 상식이라 봐야 '오프 사이드' 정도였던 그가 이 구단을 이끄는 주인공이다. 

그의 아들은 스페인 유소년 1부 리그에서 활약 중이라고 한다. 스페인에서는 18세 이하 미성년의 경우 스페인의 체류시 부모 중 한 사람이 돌봐야 하는 조건이 있다. 회계사인 아내 대신 아들을 돌보기 위해 스페인으로 왔다는 김대호씨는 아들과 같은 한국의 젊은이들의 사례를 접하게 된다. 젊은 청년들이 부푼 희망을 안고 스페인에 왔다가 낯선 이국 땅에서의 적응 문제로 자신의 꿈조차 접게 되는 사례들이 빈번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같은 한국인들끼리 어울려 지내면 적응이 좀 더 쉽지 않을까' 하고 해법을 떠올리게 된 김대호씨. 그는 다큐에 나오는 딸의 평가처럼 대책없이 긍정적이고 무모한 사람처럼 보였다. 결국 그는 결심 끝에 아내의 도움을 받아 낯선 스페인 땅에 한국인 외인 구단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의 노후 자금은 이제 선수들의 용돈과 숙식비, 훈련비가 되는 중이다. 
 
 < MBC 스페셜 > '다시 꿈은 이루어진다 - 스페인 외인구단 꿈fc'편 중 한 장면

< MBC 스페셜 > '다시 꿈은 이루어진다 - 스페인 외인구단 꿈fc'편 중 한 장면 ⓒ MBC

  
전설의 시작 

'공정한 기회, 정직한 결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꿈 FC는 한국에서 축구에 대한 열정만으로 똘똘 뭉쳤지만 기회를 얻지 못했던 19명의 젊은이들을 스페인으로 불러 왔다. 이들은 함께 합숙하며 현재 가장 높은 봉우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서는 '얼차려' 등 군기 잡기에 익숙했던 선수들. 이들은 납 조끼를 입고 새벽부터 구보를 해야 했고, 중앙 수비수로 뛰는 경우 칭찬보다는 욕 먹는 게 일상이었다고 한다. 잔부상에 시달리다 결국 큰 부상으로 선수 생활에 위기를 맞기도 했던 선수들은 스페인 1급 지도자 자격증을 가진 감독과 코치진을 만나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축구는 선수들의 것'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감독과 코치들이 기구와 공을 챙겨주며 선수들이 훈련에만 집중하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꿈 FC 선수들은 스페인에서 그저 운동만 하는 게 아니다. 스페인 어학원도 빠질 수 없는 이들의 일과다, 스페인 유소년 아이들을 만나 그들이 축구를 매개로 꿈을 이루는 방식에 대해 접근하기도 한다.

"축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한 번의 실패가 인생의 끝이 아니다. 맘껏 드리블하라. 공을 빼앗기면 다시 뺏으면 된다. 한 골을 먹으면 한 골을 넣으면 된다."

스페인에서 이들은 축구라는 꿈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역설적으로 '축구만을 바라보는 꿈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인생에는 사랑도, 가족도 여러 가지 다른 꿈이 있을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이처럼 새로운 사고 방식들이 그간 이들을 짓눌렀던 '축구', 혹은 '꿈'에 대한 강압적인 문화와 권위 의식을 해제한다. 그러자 오히려 선수들은 기량을 발휘하며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 MBC 스페셜 > '다시 꿈은 이루어진다 - 스페인 외인구단 꿈fc'편 중 한 장면

< MBC 스페셜 > '다시 꿈은 이루어진다 - 스페인 외인구단 꿈fc'편 중 한 장면 ⓒ MBC

  
 < MBC 스페셜 > '다시 꿈은 이루어진다 - 스페인 외인구단 꿈fc'편 중 한 장면

< MBC 스페셜 > '다시 꿈은 이루어진다 - 스페인 외인구단 꿈fc'편 중 한 장면 ⓒ MBC

 
스페인 7부리그에서 꿈 FC는 나날이 승승장구했다. 안타깝게도 마지막 경기 단 한 경기에서 패배했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이들은 7부리그 동안 한번도 진 적이 없다. 말 그대로 스페인에서 '공포의 외인 구단'으로 활약하는 셈이다.

아직도 인조 잔디 구장용 축구화가 따로 없어 가혹하게 실격을 당하는 일도 있지만, 원정 경기의 일방적 홈팀 응원이 이제 더 이상 그들을 위축시키지 않는다. 그 결과 이제 꿈 FC는 7부 리그에서 1~2위를 다투고 6부 리그 승격을 결정지었다. 또한4부 리그의 팀들이 영입할 인재를 물색하는 팀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꿈 FC는 이제 이에스까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보고 격려 해주는 팀, '예의 바르다'며 선수도 동네 사람들도 칭찬해 주는 팀이 됐다. 자칭 '국뽕' 김대호 구단주의 말처럼 이곳 스페인의 한국 대표팀 격인 이들은 현재 승승장구한 끝에 4부 리그 팀까지 참여할 수 있는 스페인 국왕 컵 참가를 팀의 목표로 삼고 있다. 그들의 꿈이 이뤄지는 날은 어쩌면 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 MBC 스페셜 > '다시 꿈은 이루어진다 - 스페인 외인구단 꿈fc'편 중 한 장면

< MBC 스페셜 > '다시 꿈은 이루어진다 - 스페인 외인구단 꿈fc'편 중 한 장면 ⓒ MBC

  
한국에서 먼 나라, 스페인에서 꿈을 찾아 다시 한번 뛰는 19명 선수들이 기적을 일궈내고 있다.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왜 젊은이들의 꿈을 이루는 게 여의치 않는가를 점검해 주는 기회가 된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 돈과 학벌과 지연과 인맥이 없으면 무엇인가를 해보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 '공정한 기회, 정직한 결과'라는 단순한 문구가 왜 한국이 아니라 스페인 작은 도시에서 가능한 것인가를 한번쯤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 MBC 스페셜 > '다시 꿈은 이루어진다 - 스페인 외인구단 꿈fc'편 중 한 장면

< MBC 스페셜 > '다시 꿈은 이루어진다 - 스페인 외인구단 꿈fc'편 중 한 장면 ⓒ MBC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MBC스페셜 꿈FC 스페인축구리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