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 F1, 본능의 질주 > 포스터.

넷플릭스 < F1, 본능의 질주 > 포스터. ⓒ Netflix


1990년대 국내에 방영된 수많은 일본 만화 중 <영광의 레이서>라는 작품이 있었다. 일본 원제는 <신세기 GPX 사이버 포뮬러>였으며 국내에선 1995년당시 '아일톤 세나'와 '알랭 프로스트'의 역대 최고 라이벌전이 한창이었던 포뮬러 1 그랑프리의 인기가 반영된 콘텐츠라고 할 수 있겠다. 이후 2000년대를 화려하게 평정할 '미하엘 슈마허'가 등장한 때도 이 즈음이다. 

F1, 세계 최고 수준의 모터스포츠를 향한 동경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또 그때부터 집 안방 TV에서 F1 그랑프리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얼핏 장난감 같아 보이기도 하는 그 모습이 시속 500km에 육박한다느니 다른 차원의 세계에 진입한다느니 하는 만화의 황당무계한 내용과 결합하여, 오히려 상상의 나래를 부추겼다. 

(하계) 올림픽, 월드컵과 더불어 세계 3대 스포츠 축제라 불리는 F1 그랑프리, 1950년에 시작해 올해로 70년째를 맞이했다. 영화 <러쉬>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 '니키 라우다'와 '제임스 헌트'의 라이벌전, 다큐멘터리 영화 <세나: F1의 신화>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 '아일톤 세나'와 '알랭 프로스트'의 라이벌전, 그리고 2000년대 '미하엘 슈마허'의 독주, 2010년대 초반 '제바스티안 페텔'과 후반 '루이스 해밀턴'의 독주까지.

두 희대의 라이벌전과 독주가 시작되기 전 춘추전국시대였던 1970~90년대가 F1의 가장 대단한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부터 시작된 독주 체제는 F1의 인기가 시들해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엔진으로 대표되는, '머신'의 절대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거대 자본을 투자해 좋은 엔진과 머신을 만들고 실력 좋은 드라이버를 데리고 오면 승리에 가까워 진다. 그 절대적인 차이를 이기는 건 이제 거의 불가능해졌다. 

2018 F1 그랑프리를 들여다보다
 
 넷플릭스 < F1, 본능의 질주 >의 한 장면.

넷플릭스 < F1, 본능의 질주 >의 한 장면. ⓒ Netflix

 
넷플릭스는 자체 제작으로 영화뿐만 아니라 양질의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쏟아내고 있는데, 지난해 2018 F1 그랑프리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흥미롭기 그지없는 다큐멘터리 < F1, 본능의 질주 >를 내놓았다. 모든 컨스트럭터(팀)와 드라이버의 시즌 전체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 이 시리즈로도 F1의 현재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다만, 현존 최고의 컨스트럭터인 메스세데스와 페라리의 이야기를 볼 수 없어 살짝 아쉬울 뿐이다. 

시리즈는 대체적으로 대회의 순서를 따랐다. 3월 호주 멜버른에서 시작되어 5대륙 21개국을 돌며 11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까지 계속된 여정을 숨가쁘게 따라간다. 감독과 CEO 등의 책임자를 중심으로 컨스트럭터의 내밀한 이야기를, 드라이버를 중심으로 경기 안팎의 내밀한 이야기를 내보인다. 

F1에는 순위가 두 가지 존재하는데, 하나는 드라이버 순위이고 다른 하나는 컨스트럭터 순위이다. 각 팀에 존재하는 두 명의 드라이버 합계 순위가 컨스트럭터 순위다. 그러니, 드라이버는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도 경쟁을 해서 이겨야 한다. 외부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자신의 경쟁력을 어필할 수 있고 또 팀이 이기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부에서의 팀메이트 경쟁에서 이겨야 다음 연도에도 자리를 지킬 수 있다. F1에 대한 지금까지의 생각이 가장 크게 바뀌는 지점이었다.

'팀'의 경기, F1

오래 전부터 봐왔던 F1은 빛나는 머신, 유명한 드라이버와 팀, 엄청난 속도와 화려한 테크닉이 어울린 축제였다. 미하엘 슈마허, 페르난도 알론소, 루이스 해밀턴, 제바스티안 페텔 등의 네임벨류 드라이버들과 함께 달리는 페라리, 맥라렌, 메르세데스 팀 등의 머신이 전부였다. 엄청난 속도와 화려한 테크닉은 솔직히 수치와 해설 덕분에 인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축제를 외부 아닌 내부에서 함께 하는 이들에겐, 이 대회가 일생을 건 도박 또는 노력의 결과물일 것이고 회사의 명운 또는 명성이 걸린 시험터일 것이다. 또 누군가에겐 이곳이 그저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끼며 지겹고 힘들지만 하루하루 버텨야 할 일터일 뿐일지 모른다. 관객이나 시청자들은 머신이 처참하게 부서지는 순간 희열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죽음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간발의 차이로 살아남은 군인들의 모습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이 시리즈에서 우린 F1에 대해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 필자의 경우, 이 세상에서 단 20명밖에 서지 못하는 F1 서킷과 F1의 모든 드라이버의 위대함과 대단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더불어 머신과 드라이버가 전부 아닌 일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F1은 팀의 경기다. 

승리와 영광 없는 레이스
 
 넷플릭스 <F1, 본능의 질주>의 한 장면.

넷플릭스 의 한 장면. ⓒ Netflix

 
이 시리즈의 또 다른 특징은, F1 하면 떠오르는 '승리' '영광'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자의라기 보다는 타의에 가까워 보였다. 현 절대 강자인 메르세데스와 페라리를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 두 팀이 컨스트럭터 순위 1, 2위를 차지하고 네 드라이버가 1, 2, 3, 4위를 하니 나머지 팀들과 드라이버들은 그 다음을 노릴 뿐이다. 그래서 흥미진진한 한편 나름의 의미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보나마나 1, 2위를 할 게 뻔해 보이는 경쟁을 보고 있을 이유가 뭘까. 누가 이길지 모르는 긴장감과 흥미진진함을 느끼고자 보는 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이 시리즈에 메르세데스와 페라리가 빠진 건 비록 제작자의 자의가 아닐 테지만 탁월했다. 한편, 스포츠에서 최상위권 팀과 선수들만이 의미 있는 싸움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의미부여가 확실히 되었다. 

그런 면에서 2019년에는 투자 여력과 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팀들과 어리고 재기발랄한 어린 드라이버들이 두각을 나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제로 2019 F1은 역대 가장 어린 선수들이 함께 한다고 하고 또 머신은 보다 빨라진다고 한다. 또한 열 팀 중 두 팀만 빼고는 모든 팀의 드라이버가 최소 한 명 이상 바뀐다고 하는데, 페라리나 레드불 같은 강팀에 신예가 들어가고, 르노나 알파 로메오 같은 중팀에 베테랑이 들어간다. 맥라렌이나 윌리엄스 같은 전통의 명문이지만 지금은 완전한 내리막길에 있는 팀은 전사적 재정비에 들어간다. 

아마도 이 시리즈는 2019  F1에도 함께 할 듯하다. 이번엔 또 어떤 재미있고 화려하고 흥미진진한 볼거리와 이야기와 드라마로 찾아올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우리나라에선 2010년부터 영암의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열렸던 코리아 GP 덕분에 많은 관심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어설픈 운영과 엄청난 적자 등이 맞물려 2013년을 마지막으로 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완전히 관심 밖으로 멀어졌다. 와중에 < F1, 본능의 질주 > 시리즈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존재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F1, 본능의 질주 컨스트럭터 드라이버 승리와 영광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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