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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피의자 신분으로 성접대 의혹과 관련, 가수 승리가 14일 오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출석하고 있다.
▲ 승리, 피의자 신분으로 성접대 의혹과 관련, 가수 승리가 14일 오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출석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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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세대. 한때 사회는 1980년대 후반~1990년대에 태어난 이들을 이렇게 불렀다. 2006년 데뷔 후 빅뱅은 한국 사회의 문화아이콘이 됐다. 그 시절 유년기를 보낸 '빅뱅세대'는 노래방에 가면 언제나 빅뱅 노래를 선곡했고, 공부하면서도 빅뱅 노래를 불렀다. 팬이 아니어도 누구나 빅뱅 노래 하나쯤은 알고 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이들은 성인이 됐다. 몰아치는 학업과 아르바이트, 취업 준비 속에서도 시간이 날 때면 빅뱅을 찾았다. 멤버들이 차례로 군 입대를 하고, 각종 구설수에 휘말리면서 때로 흔들리기도 했지만 10대를 뜨겁게 달궜던 추억은 아직 또렷이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들이 다시 호명됐다. 이른바 '버닝썬 게이트'로 불리는 연예계 성폭력 사건에서다. 그룹 빅뱅의 전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성접대를 한 혐의 등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의혹은 빠르게 확산되는 중이다. 가수 정준영, 씨엔블루 이종현, FT아일랜드 최종훈 등 유명 연예인 다수가 수사선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혐의도 성매수, 탈세, 몰카 불법 촬영 및 유포, 강간 등 다양하다.

지금 빅뱅세대는 분노하고 있다. 특히 여성들은 자신 역시 피해자가 되었을 수 있었다며 분노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주변에서 '빅뱅 팬'을 수소문했다. 그리 어렵지 않게 세 명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엔 그냥 넘겼는데, 성 접대, 마약 얘기까지..."
 
"성범죄 일상화된 한국 사회 두렵다" 3월 14일, 박혜정 씨가 대학 강의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박 씨는 "성범죄가 일상처럼 일어나는 한국 사회가 두렵다"면서 이제라도 반복적인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진짜 문제를 꼬집어야 한다고 말했다.
▲ "성범죄 일상화된 한국 사회 두렵다" 3월 14일, 박혜정 씨가 대학 강의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박 씨는 "성범죄가 일상처럼 일어나는 한국 사회가 두렵다"면서 이제라도 반복적인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진짜 문제를 꼬집어야 한다고 말했다.
ⓒ 유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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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생 박혜정씨는 열세 살이던 2008년부터 지금까지 10여 년간 빅뱅 팬으로 활동했다. 중학교 1학년이던 2008년부터 이른바 '공방(공개방송)'을 뛰었다. 회원 수 500여 명 규모의 팬카페도 운영했다. 학창 시절 얼마 안 되는 용돈을 모아 빅뱅 앨범을 사고, 팬메이드 스티커를 만들기 위해 포토샵을 배웠다. 동방신기를 좋아하던 같은 반 친구들과는 아무리 노력해도 친해지지 못했다며 웃었다.

94년생 조수지(가명)씨 역시 2008년부터 공식 팬클럽 'VIP'의 회원이었다. 고등학교 때 팬클럽 활동은 그만뒀지만, 대학에 와서도 계속 빅뱅을 응원했다. 암스테르담으로 교환학생을 가 있던 당시 관람한 지드래곤의 콘서트는 아직도 뇌리에 깊게 남아있다. 조씨는 탑이 훈련소에 있을 때 위문편지도 썼다고 털어놨다.

"요즘 방탄소년단이 인기지만, 빅뱅은 다른 의미에서 '국민 아이돌'이었잖아요. 빅뱅을 좋아하지 않는 또래들도 누구나 빅뱅 노래는 즐겨 들었으니까요."

96년생 김윤희씨는 빅뱅 데뷔 직후 팬이 돼 12년째 활동 중이다. 제주도 출신인 그는 학창시절 내내 빅뱅 콘서트를 가보는 게 꿈이었다. 중학교 때 성적이 큰 폭으로 오르자 부모님이 콘서트 티켓을 끊어주었다. 비행기를 타고 처음 간 콘서트장에서 김씨는 펑펑 울었다. 그는 지금까지 출시된 모든 굿즈(기념품)와 앨범을 갖고 있다. 김씨는 빅뱅을 '10대의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

"인생의 절반 동안 제 삶의 모든 것은 빅뱅에 맞춰져 있었어요. 서울 소재 대학에 가기로 결심한 이유 중 하나도 서울에서 살면 빅뱅 콘서트에 자주 갈 수 있으니까. 빅뱅은 단순한 아이돌을 넘어서 제 인생의 가장 천진했던 시기를 함께한 '문화'였어요."

그런데 큰 사건이 터졌다. 한때 응원하던 스타가 연루됐는데, 흔한 경범죄가 아니었다. 그들은 큰 건수의 계약을 물어올 때엔 '잘 주는 애'를 찾았고, 상대방 동의 없이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돌려보며 낄낄댔다. 제보자 방정현 변호사에 따르면 이들의 단체채팅방에는 어떤 여성들에게 마약을 먹인 뒤 그들을 강간한 정황도 있단다.

의혹은 터지고 또 터지는 중이다. 게다가 피해자 대부분은 이들의 또래다. 김윤희씨는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때의 충격을 천천히 되짚었다.

"처음 승리 이름이 거론될 때만 해도 그냥 넘겼죠. 빅뱅 멤버들이 워낙 논란의 중심에 선 적이 많았잖아요. 그런데 성 접대, 마약 같은 얘기가 나오게 되면서… 이런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실 지금도 너무 혼란스러운 상태예요."

'버닝썬 게이트'는 힘 있는 자들만의 '일탈' 아니다

연예계 전반은 물론, 경찰 고위층으로까지 뻗어나가는 '버닝썬 게이트'는 어떻게 현실이 됐을까. 가해자들의 재력, 방송계에서의 영향력, 인기 덕분 아니었을까. 하지만 '빅뱅세대' 세 사람의 대답은 의외였다.

"물론 이렇게 대담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오랜 기간 숨겨 왔던 것은 연예인들과 부호들, 그리고 공권력 사이를 잇는 권력 카르텔 덕분일 수 있겠죠. 그러나 제 생각에 그들이 단지 돈이 많아서, 인기가 좋아서 이런 범죄를 저지른 것 같진 않아요."

"권력을 얻었다고 그릇된 가치관이 저절로 생겨나나요? 전 아니라 생각하거든요."


그들은 이번 사태의 근원을 '남성들의 문화'로 지적했다.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남성인 기자와 여성인 인터뷰이 사이에 어떤 거대한 장벽이 세워져 있는 것일까.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듣고 싶었다.

이들은 대표 사례로 '대학가 단톡방 사건'을 꼽았다. 얼마 전 다수의 대학에서 남학생들이 단체 카톡방을 만든 뒤 여학생들의 신체를 몰래 촬영해 이를 평가하거나, 특정 여학생과 잠자리를 했다는 사실을 자랑처럼 떠벌리는 등의 대화를 나눈 사실이 밝혀져 큰 물의를 빚었다. 당시 남학생들의 대화는 상당수의 남성들이 일상 속에서 여성을 자연스레 대상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박혜정씨는 "카톡방처럼 수평적으로 보이는 공간에서도 여성을 전리품 취급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위계권력만이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물론 이번 '버닝썬' 사건과 대학가 카톡방 논란을 동일 선상에 놓고 보기엔 규모나 수위 면에서 큰 차이가 있어요. 하지만 두 사건이 본질적으로는 하나의 원인을 공유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는 거죠."

문득 잊고 지내던 일이 생각났다. 군 복무 시절, 기자의 선임 한 명은 음악방송에 여자 아이돌이 나오면 우스꽝스런 표정을 지으며 "강간하고 싶다"는 말을 던졌다. 그 말에 불편함을 느낀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끝내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그 말은 선임의 전역 후에도 그의 재밌는 행동과 함께 '옛 이야기'로 종종 회자됐다. 기자 역시 그런 말을 문제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웃어 넘겼다. 하지만 여성들은 우리가 그렇게 스쳐지나간 폭력의 순간들을 꼬집고 있었다.

여전히, 달라도 너무 다른 세상을 사는 남과 여
 
"권력 얻었다고 그릇된 가치관 생기진 않는다."  '빅뱅 12년차 팬' 김윤희 씨가 지난 3월 15일 기자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김 씨는 "권력이 없던 가치관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면서 버닝썬 사태의 핵심이 여성을 대상화하는 문화에 있다고 말했다.
▲ "권력 얻었다고 그릇된 가치관 생기진 않는다."  "빅뱅 12년차 팬" 김윤희 씨가 지난 3월 15일 기자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김 씨는 "권력이 없던 가치관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면서 버닝썬 사태의 핵심이 여성을 대상화하는 문화에 있다고 말했다.
ⓒ 유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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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희씨는 성범죄를 바라보는 남성들의 인식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라 평가했다. 예전에는 '성범죄 피해를 당한 여자도 문제'라는 식으로 비난하는 남성들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반응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과거엔 성범죄 피해자들이 남성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자신 주변의 남성들이 함께 분노하고 있다.

그러나 김씨는 여전히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느낀다. 서로 분노하는 '지점'이 다르다는 얘기다. "남성들은 성범죄자들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이 성범죄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하지만, 여성들로선 그렇게 볼 수 없다"며 김씨도, 박혜정씨도, 조수지씨도 조금씩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대다수 남성들은 몰라도, 그들에게는 일상적인 '악몽'이었다.

"공론화가 잘 안 될 뿐이지 성폭력은 일상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요. 술자리에서의 스킨십이나 성희롱같은 것들이요. 제가 다니는 학교에선 몰래카메라 사건도 터졌어요."

"수업에 들어갔는데 성폭력 가해자가 떡하니 앉아 있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도 아무도 얘기를 안 해요. 사실 피해자부터 그 일을 드러내기 꺼려하거든요. 그냥 조용히 졸업만 했으면 좋겠다는 애들도 많아요."

"불안해요. 솔직히 매일 불안하죠.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 여성들이 비슷해요. 집에 혼자 있다가도 빈 방에 혹시 다른 사람이 있진 않을까 문을 열어봐야만 안심이 되고, 밤에 골목길 걸을 땐 항상 통화를 해야 하고… 주변에서 성폭력을 반복적으로 보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조심하게 되는 거죠. 사실 조심하라는 말도 웃기기는 한데, 어쩌겠어요. 내가 조심해야지."


이들은 그래서 '버닝썬 게이트'를 단지 부와 명예를 얻은 몇몇 이들의 '일탈'로 보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대신 경악스러운 범죄를 가능케한 진짜 원인을 바꿔달라고 주문한다. 조씨는 "범죄자들도 잘못했지만, 주변에서 여태 그들의 죄를 묵인한 많은 사람들도 가해자예요. 성범죄를 문제 삼기는커녕 오히려 가십처럼 소비하고 즐거워하는 문화를 멈추지 않으면 언제든지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정리하며 김씨에게 '그럼 팬 활동도 접는 것이냐'고 물었다. 김씨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쉽지 않을 것 같긴 해요. 스무 살 넘어서도 아이돌 좋아한다고 하면 웃기잖아요. 근데 저한테는 의미가 컸거든요. 마음으로는 아직 아니라고 하고 싶은데,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10대의 모든 것이었잖아요. 이렇게 끝내니까 너무 화나죠."

그러고는 잠시 뒤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근데 내가 반평생을 좋아했던 스타마저 성범죄자였다는 사실이 좀 웃기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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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을 공부하는 대학생.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는 기자가 되길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