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 더 더스트> 포스터

영화 <인 더 더스트> 포스터 ⓒ 씨네룩스


사상 초유의 자연재해가 스웨덴과 덴마크 등 유럽 곳곳을 덮치는 가운데 파리에서도 지진이 일어난다. 이윽고 엄청난 규모의 먼지 폭풍이 발생하고 도심은 미세먼지로 뒤덮인다. 미세먼지에 노출된 사람은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순식간에 파리 인구의 60%가 목숨을 잃고 의료, 통신, 치안 등 공공서비스는 완전히 마비된다.

마티유(로망 뒤리스 분)와 아내 안나(올가 쿠릴렌코 분)는 미세먼지를 피해 위층 이웃집으로 간신히 대피한다. 그러나 아래층에 위치한 집엔 선천적인 질환으로 밀폐된 캡슐 안에서만 지내는 딸 사라(팡틴 아흐뒤엥 분)가 여전히 남아 있다. 빠른 속도로 미세먼지가 위로 차오르는 위급한 상황에서 마티유와 안나는 사라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과거 재난 영화는 <대지진>(지진), <딥 임팩트>와 <아마겟돈>(소행성 충돌), <트위스터>(토네이도), <단테스 피크>와 <볼케이노>(화산), <퍼펙트 스톰>(태풍), <하드레인>(집중호우) 등 자연재해에 맞서는 인간의 사투를 주로 다루었다. 최근의 재난 영화는 경향을 달리한다. <투모로우>, <2012>, <설국열차>, <지오스톰>처럼 이상기후로 인하여 지구가 종말을 맞이한다는 내용을 자주 볼 수 있다. <인 더 더스트>도 여기에 속한다.

프랑스에서 제작한 <인 더 더스트>는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미세먼지'를 소재로 삼았다. 영화는 유럽에서 발생한 자연재해의 원인이 무엇인지, 미세먼지의 어떤 독성 때문에 사망에 이르는지 자세한 설명을 내놓질 않는다. 그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미세먼지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종말의 풍경을 보여줄 뿐이다.
 
 영화 <인 더 더스트>의 한 장면

영화 <인 더 더스트>의 한 장면 ⓒ 씨네룩스

 
<인 더 더스트>는 몇 가지 흥미로운 면을 지닌다. 먼저, 특별한 소재를 꼽을 수 있다. 그동안 종말을 그리는 아포칼립스 영화에서 미세먼지는 주요 소재가 아니었다. 아마도 <인 더 더스트>는 미세먼지를 소재로 활용한 첫 번째 아포칼립스 영화이지 싶다.

<인 더 더스트>는 미세먼지에 사라가 '스팀베르거 증후군'이란 희귀한 질병을 앓는다는 설정을 추가한다. 사라의 설정이 덧붙여지며 영화는 미세먼지를 피하는 단순한 전개를 벗어나 밀폐된 캡슐에 놓인 딸을 보호하려는 부모의 사투로 변한다.

미세먼지로 가득한 파리의 풍경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도시의 모습은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기이한 느낌을 전한다. 한편으론 이상하다. 왜 바람이 미세먼지를 분산시키지 않는 것인가? 거리엔 숨진 사람들이 즐비한데 부패로 인한 묘사가 왜 전혀 없는가? 의문은 한두 개가 아니다.

SF적인 상상력을 발휘한 영화에 과학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만큼 우스운 일도 없을 테지만, <인 더 더스트>는 지나치리만치 말이 안 되는 구석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그린 강렬한 '미세먼지 풍경'은 의문부호쯤은 가볍게 날려버린다. 그 정도로 소재 자체가 지닌 힘이 강하다.
 
<인 더 더스트> 영화의 한 장면

▲ <인 더 더스트> 영화의 한 장면 ⓒ 씨네룩스


2018년 프랑스 영화는 인상적인 두 편의 아포칼립스 영화를 선보였다. 하나는 <워킹 데드 나잇>이다. 현대인의 고독을 좀비로 탐구한 <워킹 데드 나잇>은 천편일률적으로 흐르던 좀비 장르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다. <인 더 더스트>는 저예산 재난 영화의 모범적인 사례다. 미세먼지란 소재, 로망 뒤리스와 올가 쿠릴렌코의 연기, 미세먼지로 뒤덮인 배경은 삼박자로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깜짝 놀랄만한 결말을 덧붙여 색다름까지 얻었다.

<워킹 데드 나잇>과 <인 더 더스트>의 각본은 모두 귀욤 레만스가 맡았다. 그는 <포인트 블랭크>, <더 체이스>, <완벽한 거짓말>에서 이야기꾼의 재능을 뽐낸 바 있다. 이번에는 <워킹 데드 나잇>과 <인 더 더스트>로 좀비 영화와 재난 영화의 새로운 이야기를 제시한다. 실로 놀라운 능력이다.

해외 매체에선 <인 더 더스트>가 보여준 미세먼지와 반전에 주목한 탓인지 <안개>와 <미스트>를 많이 언급했다. 그러나 영향을 받았거나 비슷한 결말을 보여준 영화를 찾는다면 <멜라니: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소녀>가 어울리지 싶다. <인 더 더스트>와 <멜라니: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소녀>는 모두 재난의 '이후'와 좀비의 '다음'으로 종의 역전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의 영향 아래 있기도 하다.

<인 더 더스트>가 그린 아포칼립스 풍경은 더는 허구의 상상력으로 치부할 수 없다. 적어도 우리에겐 그렇다. 미세먼지주의보가 내려지고 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을 만나는 건 이제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인 더 더스트>의 죽음으로 가득한 프랑스는 근미래의 대한민국일 수도 있다. 미세먼지의 침공을 막지 않는다면 말이다. <인 더 더스트>는 그것을 경고하고 있다. 제22회 판타지아 영화제 최고 작품상 수상.
다니엘 로비 로망 뒤리스 올가 쿠릴렌코 팡틴 아흐뒤엥 귀욤 레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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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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