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14 09:50최종 업데이트 19.03.14 09:50

낙타샹즈박물관 (중국 산동성 청도시) ⓒ 김기동

  
중국 산둥성 청도시는 한국 사람이 많이 살 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이 많이 여행하는 도시다. 청도시에 있는 관광지 중 한국 사람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은 청도맥주로 유명한 맥주박물관이다. 얼마 전 중국 청도시에서 무역업을 하는 민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가, 그의 소개로 청도시에 있는 '낙타샹즈박물관'에 가게 됐다.

<낙타샹즈>는 '라오서'라는 작가가 쓴 장편소설이다. 작가가 청도시에 살면서 소설 <낙타샹즈>를 썼기에, 작가가 살았던 집을 낙타샹즈박물관으로 만들어 일반인에게 개방한다. 사실 나는 민 선생님이 이 박물관을 소개해 주기 전까지 <낙타샹즈>에 대해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낙타샹즈박물관을 가 본 후 <낙타샹즈>라는 소설이 중국에서 얼마나 유명한지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우직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소'라는 동물로 표현한다. 중국에서는 이런 사람을 동물 '낙타'에 비유한다. 한국 소나 중국 낙타가 근면한 사람을 부르는 말이기는 하지만, 소나 낙타는 자신이 열심히 일한 대가를 챙기지 못하고, 사람에게 이용만 당한다. 또 죽어서는 자신의 몸을 인간에게 고기로 제공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소설 <낙타샹즈>에서 '낙타샹즈'는 주인공 이름이다. 그러니까 소설 제목에서 주인공이 성실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굴곡진 인생을 살다가 마지막에는 좋지 않게 되리라는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라오서는 1936년 이 소설을 썼는데 그 때 그의 나이가 37세였다.

중국인의 낙타 같은 삶... 미국에서도 '판매 1위'
 

소설 <낙타샹즈> 책 ⓒ 바이두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작가가 서른 일곱 나이에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 소설은 발표되고 나서 중국에서도 베스트 셀러 1위였지만, 1945년 미국에 번역 출판된 후 미국에서도 베스트 셀러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을 무대로 중국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지만 세계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내용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중국 언론사가 선정한 '20세기 중국문학 베스트 100'에서 장편소설 1위에 올랐다. 또 중국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나온다.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루쉰'의 <아Q정전>이나 '위화'의 <인생>은 중국 초중등학교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 사람에게는 루쉰의 <아Q정전>보다 라오서의 <낙타샹즈>가 더 많이 알려져 있다.

1936년 라오서가 쓴 소설 <낙타샹즈>는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였지만, 많은 부침을 겪는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중국 정부는 작가에게 소설의 내용을 수정, 삭제하라고 요구하여, 작가는 하는 수 없이 요구 사항을 따랐다. 결국 1966년에는 금지 도서로 지정되었고 17년이 지난 1982년이 되어서야 복권되어 중국 사람들은 원본 그대로의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1919년 한국에서는 3·1운동이 일어났고, 중국에서는 5·4운동이 일어났다. 중국에서는 5·4운동의 의의를 두 가지로 평가한다. 첫째는 중국에서 이천 년 동안 지속하였던 봉건체제(황제를 정점으로 한 관료들이 백성의 주인이었던 체제)를 무너뜨리고 국민이 주인이 되고자 한 반봉건주의 운동이고 둘째는 서양 나라의 침략을 받아 서양인의 노예로 살지 않겠다는 반제국주의 운동이었다고 한다.

작가 라오서는 20살에 5·4운동을 겪게 되는데, 이 운동의 영향으로 결국 일하던 직장(초등학교 교장으로 근무)을 관두고 소설가의 길로 나선다. 그 후 1936년 그의 대표작인 소설 <낙타샹즈>를 쓴다. <낙타샹즈>는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초까지 베이징에 사는 보통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그러니까 <낙타샹즈>은 1919년 5·4운동을 겪은 중국 사람들이 그 후에 어떻게 살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소설이다.

세 번 일어섰으나 세 번 모두 넘어졌다
 

소설 <낙타샹즈> 한국 번역 책 ⓒ 출판사 황소자리

 
소설 <낙타샹즈>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소개한다.

주인공 낙타샹즈는 농촌 출신으로 젊은 나이에 베이징에 와서 인력거를 끌게 된다. 그의 꿈은 인력거 회사의 인력거가 아니라, 직접 자신의 인력거를 끄는 것이다. 그러자면 돈을 모아 인력거를 한 대 사야 한다. 그래서 낙타상자는 인력거를 사기 위해 먹는 것 입는 것을 아끼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간다.  

중국 중학교 교과서에는 소설 <낙타샹즈>의 글 일부가 실려 있는 것이 아니라 소설 줄거리를 요약한 형식으로 나온다. 그래서 중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누구나 <낙타샹즈> 내용을 알고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대학교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소설 <낙타샹즈>의 줄거리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학생 모두 <낙타샹즈> 내용을 삼기삼락(三起三落)으로 설명했다. 아마도 중국 국어 교과서 교사 수업지침서에 그렇게 교육하라고 나와 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삼기삼락(三起三落)이란 '세 번 일어섰으나 세 번 모두 넘어졌다'는 중국 사자성어다. 소설에 적용하면 주인공이 자신의 꿈을 세 번 이루었으나 결국 세 번 모두 실패하게 된다는 의미다.

주인공은 회사 인력거를 끈 지 3년 만에, 돈을 모아 자신의 인력거를 사게 된다. 한국의 예를 들어 쉽게 표현하면 회사택시를 몰다가 개인택시를 몰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주인공이 꿈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인력거를 끈 지 6개월 만에 전쟁이 일어나, 인력거는 군인 운송용으로 강제로 빼앗기고 자신도 전쟁터에 끌려가 짐꾼이 된다. 한 번 일어섰으나 6개월 만에 넘어지게 된 것이다. 

전쟁터에서 도망친 주인공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대학교 교수의 개인 인력거 전용 운전사로 취직하여 돈을 모은다. 인력거 한 대를 살 돈이 거의 모였을 때, 뜻밖의 사건이 일어난다. 대학교 교수가 사상범으로 몰려 도망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교수를 쫓던 형사가 교수를 잡지 못하자, 대신 교수 인력거 운전사였던 주인공을 찾아온다. 그러면서 교수 대신 주인공을 잡아 감옥에 가두겠다며 감옥에 가기 싫으면 돈을 내라고 협박한다. 결국 주인공은 인력거를 사려고 모았던 돈을 모두 형사에게 주고 목숨을 구한다. 두 번째로 일어섰으나 또 넘어졌다. 

그 후 주인공은 어떤 여성과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게 되는데, 그 여성이 주인공에게 돈을 주면서 인력거를 사서 돈을 벌어 오라고 한다. 아내의 돈으로 인력거를 사게 됐지만 어쨌든 주인공은 자신의 인력거를 사서 끌게 된다. 하지만 아내가 아이를 낳다가 죽자, 아내의 장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인력거를 팔아야만 했다. 세 번째로 일어섰으나 다시 넘어지고 말았다.

여기까지가 <낙타샹즈> 소설 책을 직접 읽지 않고, 교과서의 요약본으로만 <낙타샹즈>를 공부한 학생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소설에서는 이후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만 역시 실패하고 인생을 폐인으로 사는 내용이 담겼다.

그는 왜 계속 넘어졌을까? 중국 대학생들의 생각
 

작가 ‘라오서’ 동상과 <낙타샹즈> 주인공이 인력거를 끄는 조형물 (중국 산둥성 청도시) ⓒ 김기동


대학교 학생들에게 소설 <낙타샹즈>의 주제, 즉 교훈이 무엇인지 물어 보았다. 대학교 1, 2학년 학생들은 중학교 시절 교과서에 나오는 <낙타샹즈>를 공부하면서 선생님에게 배웠는지, "주인공이 어리석어서 주변 사람에게 속았고 결국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됐다며, 사람은 열심히 공부해서 현명해져야 한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조금 나이가 많은 대학교 3, 4학년은 다르게 말했다. 자신들이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렸고, 부귀를 누리는 건 하늘의 뜻에 달렸다(生死有命,富貴在天)'는 문자를 인용하며 "안 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안 된다"고 답했다. 또 부모님이 이야기해주었다며 "세상 모든 일은 정해져 있어서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大家都是命,半點不由人)"는 말도 했다.

위의 두 글귀는 모두 중국 어린이 필독서 <증광현문>이라는 책에 나온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명 깊었던 주인공 낙타샹즈의 말 두 마디를 남긴다.
 
"원래 동물이었던 인간은 자신을 사람이라 부르며 짐승과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과 같은 사람을 짐승으로 내몰고 있다."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또한 자신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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