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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방면에 걸친 잡다한 지식들을 많이 알고 있다. '잡학다식하다'의 사전적 풀이입니다. 몰라도 별일없는 지식들이지만, 알면 보이지 않던 1cm가 보이죠. 정치에 숨은 1cm를 보여드립니다. - 기자 말
 
8일 오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행사에서 문희상 국회의장,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최금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 등 참석자들이 '여성참여 50%' 라고 적힌 스카프를 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여성참여 50%" 외치는 여성단체 회원들 8일 오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행사에서 문희상 국회의장,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최금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 등 참석자들이 "여성참여 50%" 라고 적힌 스카프를 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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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러운 게 남자입니다. 50 넘은 남자들에게 제일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물어 보세요. 첫째 내 마누라, 둘째 아내, 셋째 와이프, 넷째 집사람, 다섯째 애들 엄마."

지난 8일 세계 여성의 날 기념행사에 참석한 문희상 국회의장이 했다는 '축사'입니다. '성차별적이고 젠더감수성이 결여된 시대착오적' 발언이라며 해당 건을 보도한 <여성신문> 기사에는 문제적 발언들이 연이어 등장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의 50%는 여성이어야 한다는 다른 사람의 발언을 언급한 후) 50, 50, 50을 더하면 150(%)"
"요즘 딸 하나 아들 둘 낳으면 동메달. 아들 셋은 목메달이라고 한다. 딸 둘에 아들 하나면 금메달, 딸만 둘이면 은메달."


이쯤되면 그 자리를 축하하기 위해 읽은 축사가 오히려 참석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을 것 같습니다.

문희상 의장의 '마누라 농담' 사랑

더 놀라운 건 문희상 의장의 이 '농담'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남자가 50을 넘으면, 저는 물론 훨씬 넘었지만, 다섯 가지가 꼭 챙겨야 될 대상이 된다고 한다. 첫째가 마누라, 둘째 아내, 셋째 와이프, 넷째 집사람, 다섯 번째 애들 엄마. 결국은 마누라가 꼭 챙겨야 될 대상이라는 이야기다."

복붙(복사해서 붙여넣기)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날짜, 전혀 다른 장소에서 문 의장이 한 발언입니다. 때는 지난 2014년 11월 2일, 문희상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한약사회 창립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이번과 비슷한 표현이 담긴 인사말을 했습니다. 약사회 행사이니만큼 "저는 최근에 마누라보다 더 챙겨야 될 대상이 하나 생겼다, 바로 약이다"라는 멘트가 추가된 정도의 차이였죠.

여러 자리에서 쓴 걸 보면, 문 의장은 저 말을 본인의 '위트있는 농담' 정도로 여기는 듯합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던지는 '악의없는 농담' 정도로 말이죠.

'만절필동' 족자
 
미국을 방문 중인 문희상 국회의장이 2월 12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만나 '만절필동'(萬折必東·황하가 만 번을 꺾여 흘러도 결국 동쪽으로 흘러간다)이 적힌 친필 휘호를 선물하고 있다.
▲ 문 의장, 낸시 펠로시에게 "만절필동" 친필 휘호 선물 미국을 방문 중인 문희상 국회의장이 2월 12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만나 "만절필동"(萬折必東·황하가 만 번을 꺾여 흘러도 결국 동쪽으로 흘러간다)이 적힌 친필 휘호를 선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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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의장은 최근 '마누라 농담'뿐 아니라 본인이 자주 쓰는 또다른 말로 인해 논란에 휩싸인 바 있습니다. 바로 '萬折必東'(만절필동)입니다.

지난 2월 12일 5박 8일간의 미국 공식 방문 기간 때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에게 '만절필동'이라고 쓴 족자를 선물한 게 발단이었습니다. 한글로 쓰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 의미가 더 큰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말 자체는 '황하가 수없이 꺾여 흘러가도 결국은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것으로 '결국은 본뜻대로 됨을 이르는 말'이었지만, 역사적 맥락에서는 다른 뜻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절필동은 선조가 임진왜란 때 파병해서 나라의 위기를 구해 준 명나라의 고마움을 표현한 말로도 쓰면서부터 한국에서는 명에 대한 의리와 충성을 나타내는 사대의 의미가 섞이게 되었다.

얼마 전 문희상 국회의장이 미국 방문 때,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에게 전한 휘호가 만절필동이다. 북한 핵 문제가 반드시 해결된다는 의미였을 텐데, 선조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민족의 정서를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리라." - 이춘희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매일신문> 2019.2.25

평소 서예가 취미라고 알려진 문희상 국회의장은 만절필동이라는 말을 즐겨씁니다. 이 말을 직접 붓글씨로 써 '2018년 나눔장터' 기증품으로 내기도 했고, 여러 자리에서 이 표현을 꺼낼만큼 개인적으로는 의미있는 말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마누라 농담'도 그렇고 '만절필동 논란'도 그렇고 문 의장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고 억울함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장난'으로 몰아가기에는 결코 가벼운 의제 아니다"

"말의 힘이란 참 대단합니다. 대단하기 때문에 잘 못쓰게 되면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잘 쓰게 되면 재치 있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지요. 그 말의 힘으로 사는 곳이 정치권입니다.

정치력이란 말을 통해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전하고 설득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중략)... 연정 제안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를 떠나 '말장난'으로 몰아가기에는 결코 가벼운 의제가 아닙니다." - 2005년 8월 22일 당시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


문희상 의장은 이미 14년 전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2005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大聯政)' 제안에 대해 야당이 연정(戀情)에 빗대 비판하자 "연정을 자꾸 연정으로 엮어 비아냥거리는 모습들은 썩 좋게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한 것이죠.

문 의장의 이번 논란이 더욱 아쉬운 이유입니다.

21세기 한국에는 여전히 성차별과 성폭력이 존재하고, 오늘도 이로 인해 고통받는 여성들이 존재합니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고, 대변해야 하는 국회의원이라면, 더더군다나 국회를 대표하는 의장이라면 그런 상황을 한 번쯤은 더 고려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의 상황 역시 그저 농담을 주고 받을 만큼 한가하지 않습니다.
 
3.8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제 3회 3시 STOP 조기퇴근시위'가 열렸다. 참가자들이 성차별 사례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 "3시 STOP 조기퇴근" 3.8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제 3회 3시 STOP 조기퇴근시위"가 열렸다. 참가자들이 성차별 사례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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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문희상, #국회의장, #여성의날, #마누라, #만절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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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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