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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친일 청산 의지

"친일을 청산하고 독립운동을 제대로 예우하는 것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정의로운 나라로 나아가는 출발이기도 합니다." - 26일 국무회의 중

"친일잔재 청산은 너무나 오래 미뤄둔 숙제입니다.....'친일잔재 청산'은, 친일은 반성해야 할 일이고, 독립운동은 예우 받아야 할 일이라는 가장 단순한 가치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이 단순한 진실이 정의이고, 정의가 바로 서는 것이 공정한 나라의 시작입니다." - 3.1절 경축사 중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 3.1절 100주년 기념사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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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친일 청산과 관련하여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청와대나 공공청사가 아닌 최초의 공간으로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친일 청산을 언급했으며, 3.1절 100주년 경축사에서는 3.1운동의 피해자 수치 등을 거론하며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했다.

어디 그뿐인가. 정부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다방면에서 분위기를 띄우고 있는 중이다. 유관순 열사에게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으며,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꼭 발굴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정권과 달리 정부가 직접 나서서 대한민국의 뿌리가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비록 일본 아베정부와 일부 보수 야당은 반발하고 있지만, 이런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대부분의 국민들은 찬성 중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밝힌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10명 중 8명인 80.1%가 친일 잔재가 청산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니 당연히 현 정부의 정책이 지지받을 수밖에.

그러나 이런 국민 여론에도 불구하고 친일 청산은 결코 쉽지 않다. 아직 친일파의 후손들이 사회의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1950년대 반민특위의 실패 경험은 친일 청산 자체를 하나의 사회적 금기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친일 청산을 외치면 왠지 빨갱이가 될 것 같은 느낌 같은 느낌.

더 큰 문제는 군사독재 정부를 거치면서 일제의 잔재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친일파 출신의 군인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우리의 극복 대상이었던 일제의 잔재가 산업화와 근대화, 서구화의 이름으로 우리의 삶에 침투해버린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현재 무엇을 청산해야 할지, 무엇이 식민주의의 유산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번안 사회>는 이 문제에 주목한다. 저자는 우리가 아직도 '식민지병'을 앓고 있다고 진단한다. 우리는 정치적으로는 독립했지만 여전히 제국주의 지배로 인한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그는 식민지의 상흔을 지우기 위해 식민지의 흔적을 확인하고 그것에 이름을 지어주고 정체를 분명히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것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 안의 식민주의는 무엇일까?
 
현재에 대한 이해는 과거에 대한 기억과 해석에 닿아 있다. 그것은 미래와 오늘을 이어주는 힘이자 방향이다. 그래서 식민지 시대에 무엇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해방 이후 어떻게 살아남아 현실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것은 지금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에 대해 묻는 일이 필요하다. – 7p

서구를 매개했던 일본 번안문로의 위력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고 그 범위도 넓었다. 그 때문에 특히 일상생활 영역에서 일본식 번안물을 밝히기란 친일반민족주의자를 드러내고 정리하는 일보다 훨씬 어려웠다. 그것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무의식중에 침투한 삶의 습속이자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 13p
 
제국의 번안과 식민주의
 
<번안 사회>의 표지
 <번안 사회>의 표지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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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한국 사회에 두 개의 서양이 공존한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식민지 시대 일본이 번안한 서양이요, 또 하나는 해방 이후 한국이 번안한 서양이다.

이중 저자는 전자에 주목한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들어온 근대 서양은 일제 강점기 35년 동안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기존의 전통도, 서구의 근대도 모두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는 양옥, 양장, 양복, 양파 등 새롭게 들어온 문물에 '양'자를 붙여, 그것을 우리의 것과 구분하려 했지만, 그것은 무의미했다. 서양의 문물은 그보다 더욱 폭넓고 강력해서 우리의 의식주를 포함하여 사회시스템까지 바꿔놓았다.

문제는 그러한 서양의 문물이 식민지 본국 일본을 거치면서 이미 왜곡되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근대화하면서 자신들의 처지에 맞게 서양을 번안했고, 자신들의 필요에 맞추어 식민지를 근대화, 서구화시켰다. 그것은 서양이 아니라 일본이 번안한 서양이었고, 따라서 식민지 조선은 비틀어진 모습으로 근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언어는 일그러진 근대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우리 선조들은 조선어를 말살하려는 일제의 정책에 맞서 한글의 형식은 지켜냈지만, 내용이 오염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서구의 새로운 개념을 주체적으로 번역하지 못하고 일본이 자신들의 필요에 맞게 번역한 언어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말은 일상과 괴리되었고, 우리에게 맞지 않는 개념과 이론에 맞춰 우리 스스로를 재단하는 양상이 벌어졌다. 흔히 일본의 글을 보면서 한자만 읽으면 대충 뜻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만큼 우리의 개념어가 일본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서구 학술 개념어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 중역은 약인 동시에 독이었다. '번역의 고통'을 건너뛴 대가로 구어와 문어의 틈이 더 벌어지고 한자어는 더욱 늘어났다. 서양을 직접 대면하지 못하고 일본을 매개로 만난 대가였다. '언문일치'는 형식에 불과했고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과 개념어는 더욱 멀어졌다. 한자와 영어를 포함한 서구어, 일어, 한글의 상호작용 속에서 진행된 근대어 번역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거치면서 공고하게 뿌리내렸다. 일제의 정치적 지배는 말의 지배를 통해 완성되었다. - 33p

우리는 근대를 비판하는 글 자체를 근대어로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근대어가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사용되고, 어떤 과정 속에 놓였는가'를 밝혀야 한다. 근대 한국어의 기원은 근대 일본이 생산한 서구 원천 번역어와 닿아 있다. '자주독립 제국'이란 말조차 일본이 번역한 근대어다. - 35p
 
저자는 현재 우리의 교육 시스템 역시 일제 번안의 산물임을 지적한다. 우리는 지금의 충효 사상이 유교에서 시작되어 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본디 '충(忠)'은 상사나 상위 조직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니라 자신이 마음을 닦는 것으로 조선시대 교육에서는 충을 통해 개인의 도덕과 자주성을 중요시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충의 의미를 바꾸었다. 일제가 나라와 상관과 조직에 충성하라는 규율화 된 덕목으로 충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함께 '효(孝)'도 강조했는데 일제식 층위 꼭짓점에는 천황이 앉아 있었다. 즉 충효가 일제 군국주의의 필요에 의해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일제는 이 교육시스템을 식민지 조선에 그대로 가져왔고, 그것은 우리의 근대교육의 시작이 되었다.
 
일제는 유교와 근대국가제의 기형적 결합, 천황제라는 유사종교와 근대국가의 종교 혼합, 국민도덕과 가족주의의 기묘한 혼합을 식민지에 이식했다. 게다가 군국주의적 규율과 폭력을 교육의 수단으로 동원했다. – 59p

일제는 서구의 근대교육을 이식해 천황제 국민국가 형성을 위한 교육체제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이원화된 교육체제는 군국주의식 훈련과 만나면서 학교의 병영화를 촉진시켰고 상명하달의 불평등한 교육 구조를 만들었다. 이렇게 충효와 가부장적 권위의 강제라는 봉건 윤리에 군국주의적 규율이 더해져 식민지 근대 교육의 뼈대가 마련되었다. – 61p
 
여전히 이어지는 식민주의

저자는 이렇게 일제에 의해 번안되어 이식되어진 근대가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일본이 번역한 근대의 개념어는 여전히 우리의 주요 단어이며, 건축이나 언론 등과 같은 일부 분야에서는 그것을 대체할 우리의 언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가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

특히 일그러진 근대가 아직까지 이어지는 것은 박정희 군사독재의 등장과 관계가 깊다. 일본식으로 사고했던 이들이 집권함에 따라 식민지 시대의 반봉건성이 다시 번안되어 근대화로 되살아난 것이다.
 
영화 <친구>의 한 장면
 영화 <친구>의 한 장면
ⓒ 씨네라인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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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대표적인 예다. 박정희 시대의 학교는 일제의 태평양 전쟁 시기 학교와 닮아 있다. 학교는 국가의 통제를 잘 따르는 '착하고 강한 인간상'을 요구했으며, '규율과 정해진 규칙에 따르는 인간', '처벌을 두려워하고 대열에서 이탈할 수 없는 인간',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하는 착한 국민과 착한 학생을 배출하고자 했다. 식민지 이후 극복되었어야 할 일그러진 근대의 모습이 그대로 연장된 것이다.

이는 학교 외에 군대나 학계, 과학계 등 모든 것이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식민주의는 조미료 등을 통해 우리의 입맛까지 왜곡시켰다. 우리의 근대화는 일제의 그것과 이란성 쌍둥이였다. 단지, 일본이 번안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대신 미국을 통해 서양의 문물을 직수입했다는 것만이 다를 뿐이었다.
 
근대 식품 산업의 핵심은 '표준화'다. 균질한 맛을 만들어 내는 식품공업은 소비자의 입맛을 꾸준하게 길들이거나 어떤 사건이나 계기를 통해 임계점을 넘는 수요를 만들어야 한다. – 163p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제대로 된 친일 청산을 하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번안 사회 - 제국과 식민지의 번안이 만든 근대의 제도, 일상, 문화

백욱인 지음, 휴머니스트(2018)


태그:#친일청산, #3.1운동, #임시정부수립, #번안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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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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