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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중국군 묘지 안내판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산56번지에 조성된 '북한군 중국군 묘지' 안내판.
▲ 북한군 중국군 묘지 안내판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산56번지에 조성된 "북한군 중국군 묘지" 안내판.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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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새째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6일 오전에 전방으로 가는 길은 내내 안개처럼 뿌연 먼지로 덮여 있었다. 그 와중에 곳곳에서 마스크도 쓰지 않고 훈련 중인 군인들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문산과 연천을 잇는 37번 국도를 따라가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의 끝자락에 들어설 무렵, 도로 오른편에 야트막한 언덕이 보였다.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산56번지'를 입력해 놓은 내비게이션은 이곳이 목적지라 안내했다. 이정표도 없어 자칫 지나칠 뻔했지만, 종착지를 알리는 안내에 따라 차를 세우고 내리니 '북한군, 중국군 묘지' 표지판이 눈에 들어 왔다.

"이곳은 6.25전쟁(1950. 6. 25~1953. 7. 27)에서 전사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 6.25전쟁 이후 수습된 북한군 유해를 안장한 묘지입니다. 대한민국은 제네바 협약과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1996년 6월 묘역을 구성하였으며, 묘역은 6099㎡로 1묘역과 2묘역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한반도 전체가 전쟁터로 변했던 한국전쟁 당시 남북 모두 상대방 지역에 상당수의 전사자 유해를 남겨둔 채 휴전을 맞았다. 휴전선 이남에도 북한군과 중국군의 시신을 묻어둔 묘지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전국 각지의 공동묘지나 공설묘지 한 구석에 옹색하게 마련된 '적군묘지'에는 '북괴군'이나 '중공군'임을 표시하는 비목이 서있었고,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때로는 민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 1996년 6월 전국에 산재한 적군묘를 모아 남방한계선에서 5km 남짓 떨어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에 적군묘지를 조성했다. 이는 제네바협약 정신에 따른 것으로, 제네바 협정 추가 의정서 34조는 '교전 중 사망한 적군 유해를 존중하고 묘지도 관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최초 조성된 제1묘역은 수습된 유골이 늘어나면서 만장돼 2006년 6월 추가로 제2묘역이 조성됐다. 묘역을 만들 당시에는 봉분 형태로 묘를 만들고 그 앞에 흰색 각목을 세웠지만, 지금은 평장을 하고 일련번호와 매장 일자, 계급, 성명, 유골을 수습한 장소를 표시한 석제 평비석을 설치했다. 묘지를 북향(北向)으로 조성한 것은 비록 유골은 돌아가지 못하지만 고향이라도 바라 볼 수 있도록 한 배려였다.

북쪽 바라보는 묘
 
북한군 묘지 전경 축구장 2개 정도 크기의 묘역에는 3월 6일 현재 북한군 유해 843구가 안장돼 있다.
▲ 북한군 묘지 전경 축구장 2개 정도 크기의 묘역에는 3월 6일 현재 북한군 유해 843구가 안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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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320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에서 수습된 무명인의 묘비 앞에 누군가 가져다 놓은 국화가 말라붙어 있다.
▲ 북한군 320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에서 수습된 무명인의 묘비 앞에 누군가 가져다 놓은 국화가 말라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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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4, 1996.6.12 소위 송봉수, 6.25 불상전투"... 1묘역 일련번호 4번에는 어느 전투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전 당시 전사한 북한군 송봉수 소위가 매장돼 있다. 1996년 6월 12일은 이곳에 매장된 날짜를 뜻한다. 그나마 이름 석 자라도 찾은 유해는 얼마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유해는 이름 대신 "무명인"으로 표시돼 있다. 

1묘역에는 한국전 전사자 외에 휴전 이후 남파됐다가 군·경에 의해 사살된 북한 무장공작원들 유해도 매장돼 있다.

일련번호 101~106까지는 1998년 12월 18일 새벽 거제도 남방 해역에서 해군 초계함에 격침된 반장수정에서 발견된 공작원 6명으로 모두 "무명인"으로 묻혀 있다. 무명인들의 묘비는 계속 이어진다. "동해안 침투 무장공비" "3사단 침투 무장공비" "불상 무장공비" "북한강 하류 인양 사체"...

남으로 침투하던 길 주변에 묻히다
 
북한군 15 북한군 묘지에는 1968년 1.21사태 당시 군경에 의해 사살된 나정길 중위 등 북한 특수부대원 28명의 유해가 매장돼 있다.
▲ 북한군 15 북한군 묘지에는 1968년 1.21사태 당시 군경에 의해 사살된 나정길 중위 등 북한 특수부대원 28명의 유해가 매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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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사태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의 무장게릴라 31명이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했던 1.21사태를 보도한 1968년 1월 22일자 <경향신문> 1면
▲ 1.21사태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의 무장게릴라 31명이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했던 1.21사태를 보도한 1968년 1월 22일자 <경향신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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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이 확인된 공작원들의 묘비도 있다.

"상위 김시웅" "소위 김수윤" "상위 김춘식" "중위 김길수" "중위 나정길", 일련번호 11번부터는 "1.21사태 무장공비" 28명의 묘비가 죽 이어진다. 다른 공작원과 달리 이들의 신원이 밝혀질 수 있었던 것은 함께 남파됐다 생포된 김신조씨 덕분이었다. 하지만 8명은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던지 "무명인"으로 남아 있다. 사체 훼손이 심해 신원확인조차도 불가능했던 까닭이었으리라 짐작된다.

모두 31명이 휴전선을 넘어왔다가 28명이 사살 당하거나 자폭하고 1명이 전향했으니, 나머지 2명의 생사 여부는 공식적으로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은 셈이다. 원래 경기도 양주군 복지리 적군묘지에 묻혀 있던 이들의 유해는 1996년 6월 이곳으로 이장됐다. 하필 지금의 묘지는 1968년 1월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너와 서울로 향했던 자신들의 침투로 주변이다.

군데군데 아무 글자도 쓰여 있지 않은 비석도 보인다. 일련번호는 물론 매장 일자도 없는 그야말로 백비(白碑)다. 이름과 사건 내용조차 극비로 붙여야 할 이유가 있었으리라. 어떤 사연인지 불현듯 궁금하다.

이들은 북한으로부터 존재 자체를 철저히 부정 당했다. 북한은 묘지 조성 이후 단 한 차례도 무장공작원들의 시신 인도를 요청한 적이 없다. 유엔사 측이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시신을 인수할 것을 제안해도 북측은 "남한의 자작극"이라며 반발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시신 인수가 곧 정전협정 위반을 자인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2000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출범해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을 본격화한 이래 2묘역에는 매년 매장자 숫자가 늘고 있다.

원래 이곳에는 국군 유해 발굴과정 중 수습한 중국군 유해도 함께 매장돼 있었지만,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다섯 차례에 거쳐 589구를 중국으로 송환했다. 이후 새로 발굴되는 중국군 유해는 이곳을 거치지 않고 바로 중국으로 보낸다. 

몇 년 전까지 중국관광객들이 버스를 타고 이곳을 찾아와 참배하기도 했지만, 중국군 유해 송환 이후에는 뜸해졌단다. 송환 전 중국군 유해 45구가 합장돼 있었던 빈 묘지에는 누군가 두고 간 빈 고량주 병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엄지를 치켜 세운 모양의 술병은 황량한 묘지의 모습과 합쳐져 묘한 서글픔을 느끼게 했다.
 
중국군 합장묘 흔적 옆 술병 송환 전 중국군 유해 45구가 합장돼 있었던 빈 묘지에는 누군가 두고 간 고량주 빈 병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 중국군 합장묘 흔적 옆 술병 송환 전 중국군 유해 45구가 합장돼 있었던 빈 묘지에는 누군가 두고 간 고량주 빈 병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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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섞인 채로 발굴된 유해는 분리가 어려운 상태여서 함께 묻혔다. 그래서 2묘역엔 "북한군 656-734, 북한군 79구" "북한군 735-784, 북한군 50구" "북한군 830-846, 북한군 17구" 등으로 표기된 묘비들이 있다.

이제 가족이나 고향을 찾는 건 영영 불가능한 일이 돼버렸겠지만, 최소한 고국의 품으로는 돌아가는 날이 언젠간 이들에게 허락될 수 있을까. 이 물음은 이내 '북녘에 잠들어 있는 남녘 청년들의 유해는 언제쯤 돌아올 수 있을까'라는 안타까움으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미수습 국군 전사자 유해는 모두 13만 구, 이 가운데 최대 4만여 구가 휴전선 북쪽과 비무장지대 내에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휴전 협정 이후 극한의 남북대치 상황 속에서 휴전선을 넘어갔다 돌아오지 못한 북파공작원의 숫자도 7700여 명에 달한다. 그들 역시 이곳 묘지에 묻혀 있는 북한군 전사자들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묘역 소유권은 경기도로... 평화 화해 공간으로 탈바꿈 계획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아직은 적막감만 가득한 북한군 묘지를 보면서 문득 1956년 구상 시인이 쓴 <적군묘지 앞에서>를 떠올렸다. 월남해 종군기자로도 활동했던 시인은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라고 위안했다. 하지만, 끝내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 놓아 버린다"라고 탄식하지 않았던가. 시인의 아픔이 그때로부터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1·2묘역을 합쳐 북한군 유해 843구(6일 현재)가 묻혀 있는 이 묘지의 소유권은 조만간 국방부에서 경기도로 넘어간다. 이는 묘역 소재 지자체가 묘역을 직접 관리·운영하자는 청와대와 국방부의 제안 이후 지난해 12월 경기도와 국방부가 북한군 묘지 관리 권한을 이관하는 데 합의한 후속 조치다.

경기도는 북한군 묘역을 새롭게 조성해 전쟁과 분단을 상징해온 묘지를 평화와 화해를 의미하는 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한다는 방침이다. 실질적으로 관리와 운영을 맡을 파주시와도 긴밀한 협의를 거쳐 평화 화해 공원 및 전시 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경기도는 이번 북한군 묘지 이관을 통해 남북평화 협력시대를 주도하는 데 매우 뜻깊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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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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