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의 클래스 6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차전 전북 현대와 베이징 궈안의 경기. 전북 이동국이 역전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 이동국의 클래스 6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차전 전북 현대와 베이징 궈안의 경기. 전북 이동국이 역전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6일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 현대 모터스와 베이징 궈안의 2019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조별리그 G조 1차전은 축구팬들의 많은 관심을 모은 경기였다. K리그 6회 우승을 이끈 '봉동이장' 최강희 감독(다롄 이팡)이 전북을 떠난 후 치른 첫 번째 챔피언스 리그 경기였고 이제는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센터백으로 성장한 김민재가 이적 후 처음으로 '전주성'을 찾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2017년 K리그 영플레이어상, 2017,2018년 K리그1 베스트11에 선정된 김민재는 전북이 키워낸 최고의 수비수다.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든든한 수비로 한국의 금메달에 크게 기여한 김민재는 지난 1월 아시안컵에서도 키르기스스탄전과 중국전에서 시원한 헤더골을 작렬했다. 향후 한국 축구 대표팀의 수비진 역시 김민재를 중심으로 구성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 김민재가 친정팀과의 첫 번째 맞대결에서 그야말로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무리한 드리블로 결승골의 빌미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추가골 상황에서는 김신욱과의 몸싸움에서 전혀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반면에 작년까지 김민재와 함께 전주성을 누볐던 '불혹의 라이언킹' 이동국은 상대팀 된 김민재에게 K리그 챔피언의 위용을 가르치며 전북의 3-1 완승을 이끌었다.
 
이동국과 충돌하는 김민재 6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차전 전북 현대와 베이징 궈안의 경기. 전북 이동국(오른쪽)이 베이징 김민재와 몸싸움을 하고 있다.

▲ 이동국과 충돌하는 김민재 6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차전 전북 현대와 베이징 궈안의 경기. 전북 이동국(오른쪽)이 베이징 김민재와 몸싸움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결정적인 순간 부상과 부진으로 영웅이 되지 못한 비운의 스트라이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을 제외하면 한국 축구의 월드컵 역사에서 가장 굴욕적인 경기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의 네덜란드전이었다. 당시 조별리그 2차전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중국 U-21 대표팀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와 맞붙은 한국은 세계 축구와의 격차를 실감하며 0-5로 참패를 당했다. 하지만 축구팬들은 이 경기를 통해 한국축구의 미래를 발견했다. 후반 교체 투입돼 통쾌한 중거리슛으로 네덜란드의 골문을 위협했던 만 18세 소년 이동국이었다.

프랑스 월드컵을 기점으로 한국축구의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떠오른 이동국은 K리그와 올림픽 대표팀, 국가대표팀을 오가며 승승장구했고 2000년 독일 분데스리가의 베르더 브레멘으로 임대됐다. 하지만 이동국은 유럽 진출 후 급격한 슬럼프에 빠졌고 결국 대선배 황선홍에 밀려 2002 한·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한국이 2002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썼기에 한창의 나이에 엔트리조차 들지 못한 이동국의 처지는 더욱 초라해졌다.

월드컵 엔트리 탈락 후 상무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친 이동국은 불의의 부상으로 2006년 독일월드컵 출전이 좌절된 후 2007년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미들즈브러에 입단하며 유럽무대에 재도전했다. 하지만 이동국은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한 두 시즌 동안 리그 무득점을 비롯해 27경기에서 두 골에 그쳤다. 마침 한국축구는 2000년대 중반 박주영(FC서울)이라는 '천재 스트라이커'가 등장하면서 이동국에 대한 축구팬들의 기대치도 점점 낮아졌다.

하지만 이동국은 2008년 성남일화를 거쳐 2009년 전북 현대에 입단하면서 선수생활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일본 J리그에 진출한 조재진의 대체 자원으로 전북 유니폼을 입은 이동국은 2009년 리그 20골을 포함해 36경기에서 26골을 터트리며 득점왕과 MVP를 석권했다. 차범근 감독이 발굴한 한국 축구의 원석이 서른을 훌쩍 넘은 나이에 최강희 감독을 만나 화려하게 꽃을 피운 것이다.

이동국은 2009 시즌의 활약에 힘입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에도 선발됐다. 하지만 이동국은 AS모나코에서 활약하던 박주영에 밀려 조별리그에서 거의 활약하지 못했다. 벤치에서 출전 기회를 엿보던 이동국은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교체 투입돼 후반 막판 골키퍼와 1대1로 맞서는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그 유명한 '물회오리슛'으로 기회를 무산시키며 한국 패배의 원흉이 됐고 이동국은 더 이상 대표팀에서 주요 선수로 활약하지 못했다.

K리그-ACL 역대 최다골에 빛나는 아시아 축구의 살아 있는 전설

사실 이동국은 200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비운의 스트라이커'로 꼽힌다. 한국축구 영광의 순간이었던 2002 월드컵에는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고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는 불의의 부상으로 출전이 좌절됐다. 교체 선수로 2경기에 나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는 결정적인 득점기회를 날리며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날렸다. 이동국은 두 번의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한 경기도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한 채 51분 출전에 그쳤다.

하지만 이동국은 대표팀,그리고 월드컵에서의 아쉬움을 소속팀 전북에서의 맹활약을 통해 날렸다. 이동국은 2011 시즌 리그에서 16골15도움,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9골을 퍼부으며 K리그 MVP와 챔피언스 리그 MVP를 휩쓸었다. 2012 시즌에는 개막전에서 멀티골을 터트리며 K리그 통산 최다골 신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이동국은 중동에서 거액의 입단 제의가 들어왔음에도 자신을 불러준 최강희 감독과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전북에 잔류했다.

이동국은 30대 중반을 훌쩍 넘은 나이에 잔부상이 있었음에도 매년 두 자리 수 골을 기록하며 '베테랑의 품격'을 뽐냈다. 2016년에는 2013년 K리그 MVP, 2015년 득점왕에 빛나는 장신 스트라이커 김신욱이 입단하면서 입지가 좁아지는 듯 했지만 조커로 나선 후에도 2017년 10득점, 2018년 17득점을 기록했다. 작년 11월 10일 제주 유나이티드FC와의 경기에서는 통산 502경기 출전으로 역대 필드플레이어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다.

이동국은 한국 나이로 41세가 된 올 시즌에도 여전히 전북의 간판 스트라이커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 6일 베이징 궈안과의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에서는 선발 출전해 76분 동안 1골1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 챔피언의 위용을 과시했다. 작년까지 전북에서 활약했던 젊은 수비수 김민재는 경계대상 1순위였던 '불혹의 공격수' 이동국을 제어하지 못하고 전주팬들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두 번에 걸친 이동국의 유럽 생활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패'였다. 월드컵에서의 활약도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대박이 아빠'로 더 유명하다. 하지만 이동국은 K리그 역대 최다골(215골)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최다골(37골), A매치 득점 공동 4위(33골)에 빛나는 K리그와 아시아 축구의 '전설'이다. 더욱 대단한 사실은 이동국이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날카로운 골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동국 '기분 최고' 6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차전 전북 현대와 베이징 궈안의 경기. 전북 이동국이 역전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 이동국 '기분 최고' 6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차전 전북 현대와 베이징 궈안의 경기. 전북 이동국이 역전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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