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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밴쿠버에 2년 정도 머물다 귀국한 지 두 달 가까이 되어간다. 캐나다에 가기 전 3학년 꼬맹이였던 아들은 어느덧 사춘기를 코앞에 둔 5학년이 되었다. 시차 적응을 마치기가 무섭게, 캐나다에서 부친 이삿짐이 도착했고 정신없이 새 보금자리를 정비했다.

나와 가족이 평생토록 살 이곳 대한민국에 다시 정착하기 위해 일상을 정비해나가는 일은 피곤하긴 했지만, 따뜻했다. 마치 일주일 정도의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느껴지는 편안함과 친근함, 오래 보지 못했던 친구들과 가족들의 환영에 캐나다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새로운 일상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큰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3학년 1학기까지 다녔던 학교에 재취학 절차를 밟았다. 이후 아이들이 친구라는 이유로 엄마들 역시 친구가 된 이웃들과의 만남이 이어졌다. 이들과의 대화는 서로의 안부를 물은 후 곧바로 아이들 교육문제로 화제가 전환됐다.

"이제 학원 알아봐야겠네. 한동안 바쁘겠어."
"캐나다서 수학은 좀 했어? 요즘 5학년 애들은 중1 선행 들어가는데. 얼른 학원부터 알아봐."
"요즘 애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건 사회래. 자기 캐나다에 있었으니 우리나라 사회는 하나도 모를 거 아니야. 개학하기 전에 한국사는 한 번 쭉 봐야 해."
"중1 과학 선행반 한 자리 비었는데 자기 들어올래?"
"자기네 몇 년 있었지? 국어는 따라잡는데 체류기간의 두 배의 시간이 든대."


아이의 학교 적응을 애써 걱정해주는 이런 대화가 잦아질수록 내 살 곳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아이의 학업에 대한 불안감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들만의 일일 거라 생각했다

물론 이런 분위기가 낯선 것도, 예상치 못했던 것도 아니었다. 캐나다에 가기 직전까지 너무나 익숙해 있던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번엔 그 강도가 달랐다. 5학년. 내 눈엔 여전히 천진난만한 아이였지만, 한국의 교육환경에서 5학년은 본격적인 입시 전쟁에 뛰어드는 중학교 진학을 코앞에 둔 학생일 뿐이었다.

사실 캐나다에서 귀국 날짜가 다가올 때부터 캐나다의 한국 이웃들은 종종 내게 이렇게 조언해 왔다.

"한국 가면 아이가 힘들 텐데 아이 아빠만 들어가라 하고 남지 그래? 아이를 생각하면 여기서 훨씬 인간답게 살 수 있어."

하지만 난 가족이 단지 아이의 교육 때문에 흩어져 사는 선택은 하지 않겠다며 단호하게 'No' 라고 말했다. 그리고 교육시스템을 고치지는 못하겠지만, 우리 부부가 하기 나름이라고, 엄마인 내가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졌다. 나의 노동을 평가할 수 있는 권한, 나를 통제하고 부릴 수 있는 힘. 돈 버는 남편은 권위뿐만 아니라 권력도 갖게 됐다. (사진은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 스틸컷)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 스틸컷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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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당시 캐나다의 한인 사회에서도 JTBC의 드라마 <스카이 캐슬> 열풍이 불고 있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상담자의 관점으로 이 드라마의 부모들을 분석했다. 이루지 못한 권력에 대한 욕구를 아이들에게 투사하는 캐릭터인 기준과 서준 아빠, 자신의 출신 환경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신분세탁까지 하고 이를 딸로 이어가려는 예서 엄마, 엄마로서 가진 상처를 똑같이 타인을 상처내면서 다스리려 하는 김주영 선생. 이들은 모두 아이들을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기보다는 자신의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보상하는 수단으로 대하고 있었다.

나는 이들의 이런 심리적 요소들이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이해했다. 게다가 나는 상담자가 아닌가. 실제로 부모의 못 이룬 꿈과 열등감을 아이에게 투사해 힘든 과정을 겪는 가족들을 종종 만났고, 그들이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도 함께 했다. 그래서 난 절대 이런 부모가 되지 않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나도 흔들린다

그런데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국에 와서 정지된 휴대폰을 풀자마자 내가 받은 문자는 동네 입시학원의 선행학습 안내 문자였다. 처음엔 '역시 한국이구나' 하면서 슬쩍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하지만, 내가 사는 이곳. 서울 강남 못지않은 교육열을 자랑하는 대구 수성구의 구석구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집 앞 중고등 전문수학학원에서는 예비 초 4학년 학부모를 대상으로 입학 설명회를 한다고 플래카드를 내걸고 있었다. 5학년에 올라가는 내 아이는 이미 한참 뒤처졌구나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와 함께 서점에 들렀다. 서점 입구에서 대기 중인 한 학습기 판매원이 아이에게 "이거 한 번 해볼래?"라며 다가왔다. 이 판매원은 아이가 학습기 속 게임에 빠져 있는 사이 쉴새없이 내게 정보를 쏟아냈다. 5학년이 되면 한국사는 한 번쯤 봐야 하는데 학습기 안에 만화가 있어 쉽게 익힐 수 있다, 수학도 중학교 과정까지 다 오픈해주니 선행이 가능하다, 영어는 미국교과서가 탑재되어 있어 외국서 살다온 아이들도 하기에 좋다고 했다.

이미 나의 마음은 슬쩍 넘어가고 있었다. 처음엔 "아들, 그냥 가자!"라고 재촉했지만, 점차 '이게 있으면 학원 안 다니고도 그동안 놓친 교과 과정을 보충할 수 있을 지도 몰라'라는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결국 10일간 무료로 써본 후 반납해도 된다는 말에 난 서류 작성을 하고 집주소와 전화번호, 아이의 인적사항을 모두 알려주고야 말았다.

며칠 후 기계가 도착했고, 학습 상태를 파악하는 '교사'의 전화가 수시로 울렸다. 전화가 올 때마다 '해야 한다'는 말에 나는 점점 불안해졌고, 한편으로는 '나도 별 수 없는 입시에 약한 한국 엄마군'이라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충돌하는 이 마음을 성찰할 겨를도 없이 또 다른 정보들이 밀려왔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매일 같이 우편함과 집 현관에는 각종 학원 홍보물들이 붙어 있었다. 나는 점점 더 불안해졌고, 어느새 홍보물에 적힌 학원들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실제로 이 학원 중 몇몇 곳은 아이와 함께 방문해 '테스트'도 받았고, 한두 곳은 등록도 했다. 학원에 등록하고 나니 마치 그동안의 공백을 학원에서 알아서 다 채워줄 것처럼 마음이 조금 놓이는 듯 했다.

아이를 멀리서 보았을 때 생긴 일
  
 한 초등학교 1학년 교실 모습
 한 초등학교 1학년 교실 모습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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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월이 지나갔다. 마침내 3월이 됐고, 드디어 개학을 했다. 재취학이라 첫날은 부모와 함께 등교하라는 통지를 받았고, 나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학교에 갔다. 교무실에서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아이와 함께 교실에 올라가 담임선생님께 아이를 인계했다. 그리고 학교를 쭉 둘러보았다.

그러자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5학년. 아이들은 여전히 천진난만했다. 복도에 줄을 서 키를 재보는 아이들의 끊임없이 조잘거리는 입은 아직 귀엽기만 했다. 친구와 만났다는 기쁨, 새 선생님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하는 눈빛엔 순수함이 가득했다.

교실 안 창밖 너머로 보이는 나의 아이 역시 집에서 내 곁에 있을 때와는 좀 다르게 보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눈 맞춤 하는 아이를 보니 아직 공부 때문에 불안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그저 순수한 어린이일 뿐이었다.

문득, 깨달음이 왔다. 한국에 돌아와 나도 모르게 불안해진 뒤, 나는 아이보다는 공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카이 캐슬> 속 부모들이 아이에게 하는 것을 보고 혀를 끌끌 찼던 나 역시, 어느덧 "수학은 어느 학원 보내는 게 좋아?", "5학년에 뭐 시켜야 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던 거다.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그 사람의 태도와 의식을 반영한다. "아이가 학원에 간다"가 아니라 "내가 아이를 학원에 보낸다"고 말하고 있었던 건, 나 역시 아이를 독립된 주체로 존중해주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동안 내가 아이에게 내뱉었던 말들을 떠올리자, 소름이 끼쳤다. 좋은 대학보다 아이의 행복을 우선하자고 그토록 다짐해 왔건만, 상담 현장서 그 폐해를 그토록 경험해 왔건만, 나 역시 한국의 묘한 입시 위주의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일상에서 실천하는 작은 변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간판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간판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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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카페에서 아이의 하교를 기다리면서 조용히 나 자신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부모의 불안을 부채질하는 이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를 존중하며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결론은, 변화는 일상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거였다.

우선 언어가 의식과 태도를 반영한다면, 언어를 바꿈으로 해서 나의 의식과 태도를 바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적으로 "아이를 학원에 보낸다", "수학을 시킨다"가 아니라 "아이가 학원에 간다", "아이가 수학공부를 한다"라고 바꿔 말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교실 창 너머로 아이를 보았을 때 더 잘 보였던 것처럼, 나와 아이 사이에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일단 내가 'OO엄마'가 아니라 내 이름으로 불리는 게 중요할 것 같았다. 나의 정체감을 오롯이 'OO엄마'에 두지 않고 나 자신에 둘 수 있도록 말이다. 엄마들끼리도 서로 이름을 불러준다면, 엄마들과 아이들 모두 한 사람으로서 보다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날 저녁, 친한 엄마들로 구성된 카톡 단톡방이 열렸다. 개학 첫 날 새롭게 편성된 학급과 준비물, 학원 소식 등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아이가 뭐하고 있냐는 질문에 "○○엄마, 우리 애 지금 학원 보냈어"라고 톡을 치다 말고 "○○씨, 지금 우리애는 학원 갔어"라고 고쳐서 보냈다.

어색해 할 줄 알았는데 다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네"라며 아이 이야기가 아니라 엄마들인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어쩐지 마음이 푸근해졌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조금씩 퍼져 나간다면, 엄마와 아이 모두가 좀 더 행복해질 것 같은 희망이 느껴졌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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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로 세상을 관찰하며 살다, 지금은 사람의 마음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체가 존중받는 세상을 꿈꾸며, '생명감수성'과 '마음의 성장'을 일상과 문화콘텐츠를 통해 공유하고 소통합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