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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와 흙'은 25일간 멕시코의 도예마을을 따라 여행한 기록을 담았다. 3년 전 칠레의 한 도예마을에서 보았던 글귀를 기억한다. "도예는 땅의 꿈에 형상을 입혀주는 인류의 유일한 예술이다" 멕시코에서 만난 흙은 어떤 꿈을 꾸고 있었는지 그들이 만들어낸 흙 예술을 통해 만나보았다. - 기자 말
 
멕시코의 검은도자기
 멕시코의 검은도자기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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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검은도자기
 멕시코 검은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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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아르헨티나 도자기 여행에서 만난 멕시코 친구는 언젠가 멕시코에 도자기를 보러간다면 '검은 도자기(barro negro)'를 꼭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에 찾아 보았던 도자기는 전통과 현대 사이의 매력적인 형태와 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4년 후, 나는 와하까 중심가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마을 산 바르똘로 코요테펙(아래 코요테펙)에서 그 검은 도기와 직접 마주했다.
  
검은도자기로 유명한 코요테펙
 검은도자기로 유명한 코요테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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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에서 부터 보이는 '도냐 로사' 공방 안내문
 마을 입구에서 부터 보이는 "도냐 로사" 공방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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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도 '검은 도기'가 지금처럼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검은 도기 자체는 오래 전부터 그 땅에 존재했던 전통 도자기였지만, 1953년, 이 마을의 여성 도예가 도냐 로사(Doña Rosa, 1900-1980, Doña는 스페인어 여성 존칭으로 쓰이는 말)의 우연과 행운으로 발전한 하나의 기술이 덧붙여지지 않았다면 지금만큼의 명성을 얻었을지는 의문이었다는 것이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마을 입구부터 큰 입간판으로 보이는 도냐 로사 공방(Taller de Doña Rosa)을 찾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공방의 주인공 도냐 로사는 1980년 돌아가셨고, 지금은 그녀의 자손들이 그 공간과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때론 어느 날 찾아온 작은 기회와 작은 발견이 삶 전체를 바꾸기도 하죠."
  
검은도자기의 전설을 만들어낸 도냐로사
 검은도자기의 전설을 만들어낸 도냐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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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이라 다소 한가한 공방에서 그녀의 손자인 페르난도는 나의 궁금증에 이렇게 말문을 열며 대답했다. 검은 도기는 과거 사포텍 문명이 존재했던 와하까 지역에 이미 존재하던 도자기였다. 하지만 유광이 아닌 무광 검은 도기만이 존재했다.

1930년대 몬떼 알반(고대 사포텍 족 수도의 유적)이 발견되면서 그곳에서 검은 도기가 발견되었고 이를 본 발견자들은 그 도자기를 만드는 마을을 찾다가 코요테펙에 방문하게 되었다.

누군가 그 도자기에 대해 설명해줄 사람을 찾다가 로사의 공방에 들르게 되었고, 그녀는 이날 검은 도기를 어떻게 만드는지를 모두 설명해주었다. 이후 미국 관광객들이 멕시코에 검은 도기를 보기 위해 왔고 그녀의 작업실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한 방문자가 할머니의 도자기를 사겠다고 주문을 하며 꼭 도자기에 사인을 해 달라고 했어요. 당시 할머니는 사인 같은 게 뭔지도 몰랐죠.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어요. 그래서 바짝 마른 기물의 표면에 물을 묻히고 옆에 있던 수정돌로 슥슥 긁는 방식으로 사인을 했죠. 그때 돌로 문지른 자리에 광이 나는 걸 발견했어요."
  
우연히 발견된 검은 도기의 광택
 우연히 발견된 검은 도기의 광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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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만들어진 광택은 평소보다 낮은 온도에서 가마 문을 여는 실수에서 또 한 번의 우연의 발견을 만들어 주었다. 평상시보다 낮은 온도에서는 광택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두 번의 우연과 발견을 바탕으로 도냐 로사는 실험을 거듭했고 지금의 유광 검은 도기를 만드는 기술을 완성시켰다.

"유광 도기는 낮은 온도에서 굽기 때문에 식기로는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이곳에서는 두 가지 검은 도기가 발전하게 되었죠. 기존의 식기로 사용하던 무광 도기와 장식용으로 디자인되는 유광으로 말이죠."

이 새로운 발견은 그녀의 삶뿐 아니라 마을의 삶도 바꾸었다. 그때까지 단지 지역 사람들의 생활기로 사용되던 검은 도기는 해외 시장에서 더 유명해졌고 많은 외국인들이 그녀의 도자기를 보고 사기 위해 마을을 찾게 되면서 마을의 다른 공방들도 더 많은 판매와 생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슬픈 일이지만 대부분의 전통공예들이 그렇잖아요. 처음부터 국내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죠. 항상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그걸 소중히 여기는 것이 쉽지 않죠. 검은 도기도 예전엔 그저 서민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던 그릇이었죠. 하지만 해외에서 유명해지면서 지금은 멕시코 내에서도 그 가치가 올라갔죠."

  
마켓 부스에서 각자의 작업에 열중인 도예가들
 마켓 부스에서 각자의 작업에 열중인 도예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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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한 광장에는 공방들의 작품들을 상시로 판매할 수 있는 마켓이 조성되어 있었다. 성수기가 아니어서 외부 방문객이 많지 않아서인지 부스 곳곳이 비어 있었지만 그 가운데도 여전히 일상처럼 그곳을 지키고 나와 있는 분들이 있었다. 부스 안을 공방삼아 작은 기물들을 빗기도 하고, 돌로 기물을 문지르는 연마 작업을 하기도 하며 손님이 없는 시간들을 보내다가 낯선 방문자가 반가워 자신의 도자기를 보여주며 기꺼이 초대했다.

"많은 사람들이 도냐 로사를 부러워하죠. 그저 행운이었다고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그렇진 않아요. 그녀와 가족의 오랜 노력이 있었죠. 그리고 그 노력과 명성 덕분에 이 마을로 사람들이 오죠. 그녀의 작업만이 검은 도기가 아니지만 그 덕분에 검은 도기가 이 작은 마을에 머물지 않고 더 멀리 알려지게 되었잖아요."

도냐 로사의 공방에 들러왔다는 말에 부스에서 만난 한 도예가가 말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그저 어느 날, 우연한 행운이 한 여성에게 다다랐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행운 또한 과거의 쌓인 시간과 그 시간 이후의 시간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것을 이곳 사람들은 모두 공감하고 그 행운을 다 같이 지키는 중인 듯했다.

50여 년 전처럼 지금도 도냐 로사의 공방에서는 매일 4시에서 5시에 투어로 도착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포텍 전통의 도자기 만드는 법을 시연하고 검은 도기를 소개해준다. 두 개의 접시를 엎어서 사용하는 전통 물레가 인상적이고 도냐 로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검은 도기의 탄생을 이해해가는 사람들의 눈이 반짝였다.
 
전통 접시 물레를 이용하여 기물을 만드는 시범을 보이는 페르난도.
 전통 접시 물레를 이용하여 기물을 만드는 시범을 보이는 페르난도.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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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냐 로사의 손자 페르난도
 도냐 로사의 손자 페르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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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연과 소개를 마친 페르난도는 말한다.

"검은 도기는 오랜 사포텍의 유산이죠. 하지만 동시에 지금도 세계에 소개되고 있는 살아 있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살아 있는 유산이란 단순한 보존만을 의미하진 않을 듯하다. 오래 전 사포텍의 원주민들이 삶을 위해 만들던 검은 도기접시는 한 여인을 통해 새로운 옷을 입었고, 또 그 세월을 더해 지금은 여러 도공들의 손으로 새로운 옷을 입고 있다. 사라지지 않지만 머물지도 않는 색. 검은 색이라는 다양성과는 거리가 먼 듯한 이 색이 이 곳 한 도자기 마을에서는 이렇게나 많은 가능성을 담고 있었다.

태그:#멕시코여행, #멕시코와흙, #멕시코와도자기, #도자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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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예술치료, 스페인 문화&언어, 글쓰기로 삶의 형태를 만들어갑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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