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정상회담이 어떠한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한 채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어느 때보다도 기대감이 높았던 만남이었건만, 왜 이렇게 됐을까? 28일 오후 4시(베트남 현지 시각. 한국시각으로 오후 6시)가 넘어 열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살펴보면, 그 과정을 짐작해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합의 불발은 미국측이 요구 수준을 갑자기 올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북한 역시 요구 수준을 같이 높였고, 결국 이미 작성해놓았던 합의문은 마지막 마침표(양 정상의 싸인)를 찍지 못한 채 다시 양쪽 서랍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회담이 결렬된 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미국측이 대북제재 해제의 조건으로 내건 것은 영변 핵시설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 핵탄두와 미사일 포기 조치 등이다. 이는 거의 전부라고 할 만큼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합의서는 이미 있었지만... 미국이 높였고, 북한도 높인 정황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 오늘도 딜(deal)을 할 수 있었지만, 만약에 했다면 제가 전적으로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고 폼페이오 장관도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그래서 오늘 딜을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저희는 제대로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자신은 원칙을 고수한다는 입장으로 이번 회담에 임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입장은 다음의 발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오늘은 제가 합의문에 서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언론의 비판을 받더라도 경우에 따라선 회담장을 나올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만약 제가 원했으면 100% 합의문 작성이 됐을 것이다. 실제로 합의문도 마련이 돼 있었고. 하지만 오늘은 합의문에 서명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고,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본다."
 
합의문이 이미 마련돼 있었다는 점은 이전의 고위급회담과 실무회담 등을 통해 양측의 잠정 합의가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스티븐 비건 대표의 스탠포드대 강연 등을 통해 윤곽이 드러난 '영변 핵시설 포함 핵물질 생산시설의 폐기와 제재완화의 교환'을 골자로 한 잠정합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합의에서 영변 핵시설 외에도 핵탄두와 미사일 관련 합의, 전체적인 핵신고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영변 핵시설이 대규모 시설임은 분명하지만 이것의 해체가 미국이 원하는 모든 비핵화는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옆에 있었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장관은 "일정표 그리고 순서도 있다, 이에 대해 아직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부연설명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영변 핵시설의 해체가 물론 중요한 것이지만, 그 외에도 미사일 시설, 핵탄두, 무기 시스템 등이 남아 있다"며 "그런 여러가지 요소에 대해 북한과 합의를 보지 못했다, 북한의 핵리스트 신고 등도 있고 이런 부분에 북한이 동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루 전 트럼프의 "서두르지 않겠다"는 이런 뜻이었나
 

 

 
이번 회담에서 합의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던 비핵화의 수준은 영변 포함 핵물질 생산시설 폐기였다. 여기에 핵탄두와 미사일 등 나머지 비핵화 조치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와 이후 핵신고 및 비핵화 로드맵을 마련하기 위한 대화를 약속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것이 북측이 꾸준히 주장해온 단계적·동시적 비핵화에 부합하는 것이고 미국도 지난해 11월부터 그같은 방향에 동의한다는 신호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합의에서 전체적인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북측은 기존의 제재완화가 아닌 제재의 전면 해제를 요구한 정황이 드러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훨씬 넓은 범위의 비핵화에 대한 합의가 있더라도 제재를 전면 해제하는 것은 안 된다고 맞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로 제재완화 문제 때문에 회담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북한은 제재 완화, 제재 해제를 원했습니다. 완전한 제재 해제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북한은 핵 프로그램의 상당수를 비핵화 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전면적인 제재 해제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점에 대해서 앞으로 작업을 해야겠지만 이번에는 북한의 그런 제안을 들어줄 수 없어서 여기서 회담을 끝냈습니다. 제재는 계속해서 유지될 것입니다."
 
기자회견을 통해 회담 상황을 종합하면, 잠정 합의안에서 요구 사항을 확대한 것은 미국측이고, 그에 맞서 북한측도 전면적인 제재해제로 요구수준을 높였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은 흐름이다.

하루 전 회담장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뒤 트럼프 대통령은 1차 정상회담에 대해 '실질적인 비핵화 진전이 없다'는 미국 언론과 야당의 비판을 언급했다. 이날 오전 김 위원장을 만나서는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미국의 요구 수준이 올라갈 것을 이미 예고한 것이다.
 
북한 대응 시험대에... 김정은의 진짜 "고민, 노력, 인내"는 지금부터
  
이번 회담이 이같이 진행된 게 맞다면 결렬된 북미협상이 빨리 재개되긴 어려워 보인다. 양측의 입장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간극을 "언젠가는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북한은 비핵화를 할 준비가 돼 있지만 미국이 원하는 정말로 중요한 비핵화를 할 준비는 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앞으로 향후 수일, 수주 동안 진전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계가 원하는 북한의 비핵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발언은 조만간 실무차원의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하지만 적어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3차 정상회담은 아직 기약이 없다.

이후에 북한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협상판 유지에 매우 중요해진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어제(27일) 밤에도 김정은 위원장이 약속을 했지만 로켓(미사일) 시험이나 핵실험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협상 결렬을 이유로 북측이 도발적인 행동을 하는지 보겠다는 것이다.
 
260일 만에 트럼프 대통령을 다시 만난 김 위원장은 "어느 때보다 많은 고민과 노력, 인내가 필요했던 기간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협상이 재개될 때까지 그보다 더 많은 고민과 노력, 인내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