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린 북>의 한 장면.

그린북 ⓒ CGV아트 하우스

 
25일(한국시각) 열린 제 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그린북> '작품상'을 수상했다. 최근의 인종차별에 대한 관심과 다양성 추구에 대한 의지를 반영했기 때문이라 한다.

<그린북>(감독 피터 패럴리)은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흑인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박사와 자유분방하고 다혈질이며 주먹과 입담이 무기인 이태리 이민자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가 고용인과 운전수로 만나 3개월간의 순회공연을 하는 로드무비다. 영화는 실존 인물인 돈 셜리와 그의 운전기사였던 토니 발레롱가와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영화는 인종차별을 백인과 흑인의 우정을 통해 유쾌하게 풀어내려 했지만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다. 영화 내내 '인종차별'을 넘어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가 그대로 나와 유색인종으로서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619년 미국에 흑인 노예가 처음 들어온 이후 17세기 말 노예 매매로 흑인노예가  대거 강제 유입된다. 현재 흑인은 약 3000만 명 이상으로 미국인구의 12%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노예해방을 선언한 지 1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실에선 흑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계속되고 있다. 법적으로 미국에서 흑인 참정권을 인정한 것은 1870년이지만 실질적으로 참정권이 확보된 것은 1966으로 불과 몇 십 년밖에 되지 않는다. 믿을 수 없지만 아직도 일부 지방에서는 백인과 흑인의 공중화장실이 다르고 식당이나 숙소에 제한을 두고 있다고 한다.
 
돈 셜리는 1927년 1월 29일 자메이카 킹스톤에서 태어나 두 살 때 피아노를 접하고, 9살에 흑인 최초로 워싱턴 D.C.의 레닌그라드 음악학교에서 정식으로 공부했다. 18살 때 연주회 데뷔를 했고, 19살에는 최초로 작곡한 작품을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다.
 
돈 셜리의 재정적 후원자며 기획자인 설 후록은 '미국의 어떤 청중도 클래식 무대에 선 흑인을 받아들인 적이 없다. 만일 음반을 팔고 싶다면 흑인들의 음악인 재즈를 해야만 한다'고 조언한다, 쇼팽의 음악에 강한 열망을 품고 있던 돈 셜리는 재즈에 클래식을 접목한 독특한 기법의 연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심리학 박사에 8개국어를 하는 천재 음악가인 돈 셜리는 백악관의 초청을 받아 연주할 정도의 실력자지만 흑인에 대한 백인의  차별과 혐오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영화 < 그린북 >의 한 장면.

영화 < 그린북 >의 한 장면. ⓒ CGV아트하우스

 
백인들은 천재 음악가인 돈 셜리를 초청해 음악을 듣는 것으로 자신들의 재력과 포장된 교양을 뽐내면서도 진정한 인권의식이나 사람에 대한 배려는 하지 않는다. 그들이 흑인 음악가의 연주를 듣고 감탄하는 것은 그저 원형경기장에서 죽어가는 격투사를 보며 소리를 지르는 천박한 로마 귀족, 또는 흑인들의 손으로 만들어낸 음식과 노동의 대가를 즐기며 흑인을 노예처럼 여기거나 물건취급을 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돈 셜리는 최 상류층 백인들을 상대로 콘서트를 열지만 백인이 사용하는 화장실도 백인과 함께 음식을 먹을 수도 없어 창고에서 옷을 갈아입고  따로 식사를 해야만 한다.

영화는 떠벌이 입담가인 운전수 토니와 어떠한 현실에서도 교양과 인격,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는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흑인인 돈 셜 리가 소수자로 차별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점차 우정을 쌓아가는 걸로 결론을 낸다.
 
영화에서 돈 셜리는 백인 상류층만을 상대로 연주회를 하고 흑인 음악이나 흑인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왕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흑인사회에서도 백인사회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정체성을 알 수 없는 존재로 말이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토니의 아들이 제안해 영화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그린 북>의 내용이 실제와 다르다는 돈 셜리 측의 비판도 있다. 영화와는 달리 실제로 돈 셜리는 흑인들과 연합해 인종 차별에 저항하고 형제와의 우애도 좋았다고 한다.

어쨌거나 백인 사회 최고의 교양을 쌓고 천재적인 음악성을 지녔으며 8개 국어에 유창했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백인 사회 일원으로  살 수 없었던 돈 셜리는 정체성에 혼란과 아픔을 느꼈음직하다. 그런 그의 고뇌를 드러낸 대사가 마음 아프다.
 
"충분히 백인답지도 않고, 충분히 흑인답지도 않고, 충분히 남자답지도 않다면 그럼 난 뭐죠?" -영화 속 돈 셜리의 대사

영화를 보면서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흰 가면 peau noire masques blanc>이 생각나는 이유다. 프란츠 파농은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의 프랑스령 마리티니크 섬 출신 흑인으로 국적은 프랑스인 정신과 의사다. 프랑스에서 유럽식 교육을 받은 그는 백인 사회 프랑스인으로도 흑인 사회인이로도 살지 못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놓고 고민하다 북아프리카로 돌아가 알제리 독립투쟁에 앞장 섰다.
 
미국에서 흑인과 백인의 갈등이 대표적으로 폭발한 것은 60년대이다. 대표적인 인종차별에 대한 흑인 투쟁으로는 로자 파크스 버스 사건으로 시작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주축으로 한 인종차별 철페 운동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그저 몸이 피곤했기 때문에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고 말하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난 신체적으로 힘들지 않았으며, 힘들다 하더라도
그건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여느날보다 더 힘든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어떤 사람들이 종종 나에 대해서 떠올리는 것과 달리,
나이가 든 사람도 아니었다. 난 마흔두 살이었다.
내가 정말로 피곤함을 느꼈던 것은 바로 참고 굴복해야 하는 일 그 자체였다.
-로자 파크스 자서전 中
  
1955년 12월 1일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퇴근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경찰에 체포 되었다. 로자 파크스는 유색인종 칸 표시가 되어 있던 자리에 앉아있었다. 흑인 혐오자인 버스기사 '제이크 F 블레이크'는 백인 좌석이 다 차고 난뒤, 백인이 버스를 타자, 로자 파크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요구했고 로자 파크스는 자리 양보를 거절한 것이다.

체포 3일 뒤 로자 파크스는 질서를 어지럽힌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를 선고 받았고 그녀는 이에 항소하여 무죄와 인종 분리 법에 도전한다.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흑인 사회가 연대해 버스 내에 흑인 차별에 대한 법정공방이 380일간 이어졌고, 결국 그들은 차별 철폐라는 승리를 얻어낸다. 이후 꾸준한 인종차별 반대 투쟁이 벌어졌고 70년 대 마침내 '인종차별법 철폐'가 이뤄진다.
 
 
영화 <그린북> 스틸컷 영화 <그린북> 스틸컷

▲ 영화 <그린북> 스틸컷 영화 <그린북> 스틸컷 ⓒ CGV아트하우스

 
영화 '히든 피겨스'의 실제 주인공 중 한 명인 캐서린 존슨은 남성의 전유물이던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근무하면서 온갖 차별을 감내해야 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존슨은 1960년대 우주 개발 경쟁에서 소련에 뒤처져 있던 미국이 유인 우주 계획을 성공시키고 다시 반등할 수 있도록 도운 핵심 인물이다. 그녀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800m 떨어진 유색인종을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으며 흑인 여자라는 이유로 중요한 회의에 참석할 수도 공용 커피포트 사용도 할 수 없었다. '인간 컴퓨터'로 궤도 비행 성공에 기여하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공은 오랫동안 가려져 있었다.
 
2017년에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그녀의 공을 높이 사 나사 내에 캐서린 존슨 계산소를 열어 그녀의 업적을 기렸다. 흑인에게 헌정한 것은 최초라고 한다.
 
1863년 1월 1일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을 한 지 140여 년 후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탄생했다. 그러나 미국내 인종차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018년 커피를 시키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며 경찰에 체포된 두 흑인 청년의 스타벅스 사건, 2019년 패션계에서 흑인을 희화화한 '유색인종' 비하 사건 등은 차별의 현장을 보여준다.
 
"유색인의 불행은 노예화되었다는 데 있다. 백인의 불행과 비인간성은 일정 부분 인간을 살해했다는 데 있다."- 프란츠 파농

<그린 북>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이 유색 인종에겐 노예화된 사고로부터의 자각과 투쟁으로, 백인들에게는 차별과 비인간성으로 인간을 살해한 죄에 대한 뼈아픈 각성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그린 북 돈 셜리 로자 파크스 인종차별 철폐 케서린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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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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