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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졸업했다. 끝나려면 멀었던 것 같던 12년이 지나 졸업을 했다. 나는 12년을 무엇을 어떻게 보내며 살았던가.
 나도 이제 졸업했다. 끝나려면 멀었던 것 같던 12년이 지나 졸업을 했다. 나는 12년을 무엇을 어떻게 보내며 살았던가.
ⓒ unsplash
 
졸업했다.

나도 이제 졸업했다. 끝나려면 멀었던 것 같던 12년이 지나 졸업을 했다. 나는 12년을 무엇을 어떻게 보내며 살았던가.

처음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를 기억한다. 아직 한글을 깨치지 못한 채로 입학한 나는 쉽게 쉽게 받아쓰기를 준비하는 남들과 달리 완벽하지 못했다. 대부분 50점을 넘기기 힘들었고, 때로는 0점도 받아왔다. 그렇지만 남들이 말하는 '오기' 같은 것이 생기지 않았다.

굳이 매주 선생님이 호명하는 100점자의 명예는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가끔 나오는 70점, 80점에 만족했다. 진짜로 만족했다. 고학년 시절, 필요 점수를 충족하지 못해 방과 후 남아서 재시험을 봐야 했다. 난 그때도 창피함보다는 집에 일찍 가지 못한 것 때문에 짜증나기만 했다. 나는 늘 그랬다.

중학교 때부터 학원에 다녔다. 국·영·수 그리고 과학까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만큼 학원에 있었고, 점수도 어느 정도 잘 나왔다. 하지만 중학교 시기에도 90점 정도의 점수만 받아왔고 단 한 번도 100점을 받지 못하였다. 그래도 100점을 받지 못한 아쉬움보다 아쉽게 97점을 받은 만족감이 더 컸다, 나는 늘 그랬다.

사람들은 부족하다고만 했다

나는 늘 나의 점수에 만족하는데, 주변 사람들은 항상 나에게 부족하다고 했다. 내가 만족한 점수들을 보고 공부를 못한다고 했다. 그들은 내 점수를 어디에 비교했기에 못하고 부족하다고 했던 걸까. 바로 내 점수는 어느 정도의 대학을 가기에 부족한 것이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기에는 점수가 부족했다. 아니 점수 자체가 부족했다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숫자였다.

나는 대학에 가기를 위해 공부하는데 정작 왜 대학을 가야 하는지 몰랐다. 대학을 가야 하는 이유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받은 때는 고등학생이 되어서였다.

사람들은 보통 대학교를 나온 사람에게 기회와 가능성이 집중된다고 했다. 그 가능성과 기회는 같은 대학 사람들 사이의 인맥, 대학에서 자신의 인생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오는 것이라고 했다. 대학생활이 자신의 인생을 탐구하는 시간이라는 데에 여러 의견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대학 인맥으로 만들어지는 기회는 정당한가.

고등학교 시절 어느 선생님은 말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그거 거짓말이야. 나는 훤히 다 보여. 너희들도 곧 알게 될 거야. 대학은 간 애랑 못 간 애와 차이, 지방의 대학을 다니는 애, 서울의 대학을 다니는 애, 가는 길부터 달라질 거야."

부당한 사회였다. 하지만 12년 동안 학교를 다니며 가장 놀랐던 점은, 우리가 대학을 가야 하는 이유가 '부당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사실 앞서 말한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를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들은 것은 아니다. 중학교와  초등학교 시절에도 비슷한 말을 들어왔다. 그러나 그때는 이 말들은 일부 부족한 어른들의 편향된 시각이라 여겼다. 적어도 그때는 선생님이 대학을 그런 식으로 정의하지 않았다. 대학은 꿈을 펼치는 곳,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자유의 공간과 기간이라고 했다.

공부의 목표와 이유
   
하지만 대학을 가지 않아도 꿈을 펼칠 길이 있고, 대학을 간다고 자유가 펼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고등학생이 되자 선생님들의 대학에 대한 정의는 천편일률적으로 변했다. 그들은 조금 더 현실적으로, 좋은 대학일수록 더 얻을 수 있는 특혜와 대학을 가지 못했을 때 나만 가지지 못할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친구들에겐 공격적으로 대하며 겁을 줬다.

우리는 늘 경쟁 속에 있었다. 나의 가치와 가능성은 모두 나의 점수에 적혀 있었다. 나는 남보다 항상 뛰어난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했고, 뛰어난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흔한 가치 없는 인간일 뿐이었다. 목표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이고, 이유는 부당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우리는 학창시절 동안 자신의 존재와 행복을 찾는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누군가는 질 수밖에 없고, 아무도 얻을 것이 없는 소모적 경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끊임없는 경쟁 속에 내가 설 자리는 없었다.

학교에 다니며 행복했던 기억이 있긴 하다. 중학교 때 남들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서울교육청에서 운영하는 고교자유학년제 '오디세이학교'에서 고등학교 1년을 보냈다. 그곳에는 우리가 경쟁에서 벗어나 나를 찾아가는 시간을 보내도록 도움을 주었다. 매일 '오늘은 뭐하지'를 기대하며 다녔다.

12년 동안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경쟁에서 벗어나 있던 기간이었다. 경쟁에서 벗어나 있을 기회를 얻자, 내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성장이 나의 가능성과 가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단 나도 대학에 지원했다. 그래도 12년 동안 공부라며 해온 일들을 마무리하는 것이 대학 지원 같았다.

순진한 착각을 했다
 
우리는 늘 경쟁 속에 있었다. 나의 가치와 가능성은 모두 나의 점수에 적혀 있었다. 목표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이고, 이유는 부당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늘 경쟁 속에 있었다. 나의 가치와 가능성은 모두 나의 점수에 적혀 있었다. 목표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이고, 이유는 부당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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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학 입시는 수시(학교성적, 생활기록부 위주)로 6곳, 정시(수능 성적 위주)로 3곳을 지원할 수 있다. 수시전형중 하나라도 합격하면 대체로 이후에 진행되는 정시전형 지원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대부분 수시에선 어느 정도 떨어질 것을 각오하고 상대적으로 높은 성적을 요구하는 대학에 지원한다.

더군다나 나는 오디세이학교 경험을 강조할 수 있는 전형이 수시뿐이라 이쪽에 몰두했다. 대학에 들어가려면 남들보다 뛰어난 무언가가 있어야만 했고, 내가 말할 수 있는 '나의 뛰어난 점'은 오디세이학교 경험을 바탕으로 한 나의 가능성이었다.

그렇게 난 나를 대학에 팔았다. 남들에겐 없는 경험이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합격은 기대 못하더라도 절반 이상이 보는 면접이라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면접에서 결과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털어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순진한 착각이었다.

대학교는 나의 경험보다는 나의 성적이 뛰어나길 원했다. 일단 성적이 뛰어나고 남다른 경험도 있길 바랐던 것이다. 난 값어치로 표현하지 못하는, 그래서는 안 될 나의 경험에 값어치를 정했고, 그 경험마저 비교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비열한 경쟁력을 갖추어 경쟁을 해보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그것조차도 성적보다 귀하지 못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았지만,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그 모든 것이 필요없는 것이 됐다.

'내 모든 것'의 쓸모

모든 의욕을 잃은 후에 나는 정시전형에 지원하였다. 정시전형은 대부분 수능 성적으로만 판단하기 때문에 나를 팔 필요가 없었다. 수능 성적은 나의 그 어떠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수능 성적만으로 붙을 수 있는 대학에 지원하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반대로 붙을 때도 나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정시로 지원한 대학 3곳 중 2군데에 붙었지만, 등록하지 않았다. 사실 지원할 때부터 2곳은 합격을 확신했다. 그리고 지원할 때부터 등록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 대학이 이상한 대학교라서, 아니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학교라서가 아니다. 난 학교를 그런 식으로 나누지 않았다. 그저 내가 붙은 학교들은 내 성적의 학생이 필요했을 뿐 내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재수를 선택하지도 않았다. 대학에 성적으로 구애하는 일이 나에게 의미 있지 않았다. 또 성적 말고 다른 방법으로 대학에 구애하고자 한다면, 그 방법은 반복학습만 하는 재수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대학에 구애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

이렇게 남들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패자의 생활이 시작한 것일 수도 있다. 또 누군가가 보기에는 또 하나의 도전적인 삶이 될 수도 있다.

태그:#졸업, #고등학교, #교육, #진학, #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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