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월 18일부터 1주일 간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베트남이 북미정상회담으로 이렇게 '핫'해질 줄 모르고 떠난 여행인데요, 앞으로 몇 편에 걸쳐 베트남에서 느꼈던 이야기들을 적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말

결혼 10주년 여행

결혼 10주년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베트남. 요즘 들어 워낙 인기 있는 해외 관광지기도 했지만, 베트남은 10년 전 우리의 신혼여행지기도 했다. 그동안 얼마나 변했을까. 언론을 보면 1년이 다르게 발전하던데, 더 변하고 비싸지기 전에 베트남을 다시 가보고 싶었다.

게다가 10년 전의 베트남은 2008년 경제 위기 때문에 달러 환율이 1600원 이상이었다. 그 전에 다녀온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돈 걱정 없이 쌀국수와 맥주를 먹었다는데, 당시 나는 그 흔한 쌀국수를 한국과 비슷한 가격에 먹어야 했다. 오호라 통재라. 그러니 달러 환율이 1100원대인 이번에는 베트남에서 원 없이 쌀국수와 맥주를 먹으리라는 작은 소망도 있었다.
 
나름 한이 맺힌 베트남 음식
▲ 맥주와 쌀국수 나름 한이 맺힌 베트남 음식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시작한 베트남 여행. 막상 계획을 짜고자 하니 가장 먼저 걸리는 것은 아이들의 나이였다. 첫째야 어느새 11살이었지만 9살 둘째와 7살 막내는 아직 어린 듯했다. 5~6시간의 비행시간도 문제이거니와 과연 이 녀석들이 나중에 이번 여행을 기억할 수 있을지도 자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경비가 많이 드는 해외여행인데 지금 다녀오면 돈이 아깝지 않을까?

그러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비록 어렴풋하지만 어렸을 때 부모님과 다녀온 여행에 대한 즐거운 추억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들이 나중에 사진을 보고 스스로 만들어낸 기억일 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 추억들은 나의 유전자에 깊이 각인됐고 이후 나의 성장에도 꽤나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번 베트남 여행도 우리 아이들에게 그렇게 작용하겠지.

며칠 동안 아내와 함께 열심히 베트남 여행을 계획했다. 10년 전에는 호치민(사이공)-나짱-하노이를 다녀왔으니 이번에는 다낭-후에-호이안을 가기로 했다. 다낭과 호이안은 요즘 워낙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관광도시였고, 후에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수도였다. 20년 전 대학에서 베트남 역사를 배우며 교수님한테 꼭 한 번 가보라고 추천 받은 곳이기도 했다.

여행사 패키지로 가지 않는 만큼 베트남 항공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끙끙 대며 좌석을 예약했고, 인터넷을 뒤져 적당한 곳에 숙소를 직접 예약했다. 베트남의 1월 날씨는 우리의 초가을쯤으로 우기의 끝자락이었는데, 그에 맞춰 장롱 깊숙이 넣어둔 여름, 가을 옷들을 꺼내 트렁크에 집어넣었다.

자, 드디어 준비 끝. 이제 가자, 베트남으로!

인천공항에서 다낭으로
 
새벽부터 붐비는 인천공항
 새벽부터 붐비는 인천공항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집에서 느지막이 저녁을 먹은 뒤, 차를 몰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다음날 새벽 비행기였기에 공항 내 캡슐호텔을 예약해뒀다. 올림픽도로를 지나 인천공항까지 뻗은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니 그제야 해외여행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업무 등으로 몇 번 해외를 다녀온 나와 달리 아내는 결혼 이후 해외는 처음이라며 더욱 설레는 듯했다.

캡슐호텔에서 4~5시간 잤을까? 새벽 4시에 알람이 울렸다. 우리 가족은 서둘러 공항 출국장으로 갔다.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공항은 북적거리고 있었다. 언론들은 경기가 나쁘다고 난리들인데 해외여행 가는 사람은 왜 이렇게나 많은지. 물론 우리도 그중 하나였지만, 해외여행과 내수 경기는 상관이 없는 건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수속을 마치고 검색한 후 출국장을 통과했다. 여권을 내미는 아이들의 바짝 긴장한 얼굴. 다행히 법무부 직원들은 아이들에게 어른들만큼 무뚝뚝하지는 않았다. 그제야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통과하는 아이들. 녀석들은 이 설렘을 언제까지 기억할까. 
 
훗. 5시간 반쯤이야
 훗. 5시간 반쯤이야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타국 저가 항공기 게이트는 출국장에서도 가장 먼 거리에 있었다. 한참을 걸어 몇 층을 내려간 뒤, 다시 전철을 타고 또 다시 한참을 걸어 게이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혹자의 말대로 조금 늦게 도착하면 비행기를 탈 수 없을 만큼의 이동 시간이었다. 아무리 돈이 최고라고 하지만 이렇게 게이트가 멀어서야 원. 아이들은 그래도 마냥 좋은지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바지런히 떠들고 뛰어다녔다.

이륙 시간이 1시간 지연되는 덕에 아침을 먹고, 휴식을 취한 뒤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를 타면 앞좌석에 TV도 있을 거라며 기대했던 아이들은 잠깐 실망했지만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그렇게 5시간 반을 날아 우리는 베트남 다낭 공항에 도착했다. 여기는 베트남 다낭!

동남아시아판 우버 '그랩'
 
덥다 더워
▲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덥다 더워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1월 중순인데도 불구하고 따뜻한 바람이 불었고, 그나마 얇게 걸치고 있던 점퍼마저도 덥게 느껴졌다. 동남아 사람들은 그런데도 이런 날씨에 얼어 죽는 사람도 있다던데, 한국에 온 동남아 이주노동자들은 한반도의 겨울을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다시 입국심사. 아이들은 이번에도 바짝 긴장했다. 아니, 비행기에서 내릴 때부터 얼어 있었다. 한국말 대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들려온데다, 아빠는 "헤어지면 무조건 '헬프 미'를 외치라"며 겁을 준 터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이들은 곧 적응했고, 여전히 들떠서 자기들끼리 깔깔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 그래야 어린이지.

무사히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나왔다. 환전을 한 뒤 택시 대신 '그랩'을 이용해 차를 불렀다. 베트남에 오기 전 인터넷을 찾아본 결과 베트남의 택시는 미터기를 제대로 작동 안 시키는 등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가 많으니 그랩을 이용하라는 글들이 많았었다.
 
동남아시아의 우버 '그랩'
 동남아시아의 우버 "그랩"
ⓒ 그랩 홈페이지

관련사진보기

 
그랩은 동남아시아판 우버로,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카카오 카풀과 같은 개념의 시스템이었다. 스마트폰에 전용 앱을 깔고 현재 위치와 내가 갈 곳을 찍으면 거리와 요금, 그리고 운행 가능한 자동차가 화면에 뜨고 그중 한 대가 내게 오는 원리였다. 택시보다는 조금 비쌌지만 굳이 흥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바가지 쓸 염려가 없다는 점에서 관광객들에게는 최적화된 프로그램이었다.

그랩이 들어올 때 베트남 사회는 우리처럼 논쟁이 없었을까 의문도 들었지만, 베트남을 돌아다녀본 결과 그랩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인 듯했다. 급격하게 발전하는 사회에 반해 아직 대중교통 시스템이 미비한 베트남에서는 택시도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택시기사들은 우리와 달리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는 택시기사라는 직업이 젊은이들의 가계를 책임질 수 있을 만큼 벌이가 나쁘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는 우리 사회와 큰 차이기도 했다. 이미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갖춰진 한국 사회에서 택시를 타는 승객들은 크게 늘지 않는다. 게다가 택시 기사의 벌이는 매우 낮다. 그런데 이런 시장에 4차 산업혁명이란 명목으로 거대 자본이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한다? 물론 그것이 시대적 조류라고는 하지만 힘없는 당사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분명 사회적 합의와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베트남의 오토바이 물결

 
온통 오토바이다
▲ 베트남의 흔한 풍경 온통 오토바이다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공항에서 다낭 중심가로 가는 자동차 안. 창밖을 보니 번화한 거리에 초국적 자본의 간판들이 보였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활기찬 도시의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베트남 거리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나 어디서 쏟아져 나오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거대한 오토바이의 물결이었다. 10년 전 호치민시에서 경악했던 바로 그 모습. 다낭도 마찬가지였다.

신호등은 있었지만 정교하지 않은 신호체계. 도로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뒤섞여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사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활보하고 있었다. 도처에서 경적이 울려댔지만 아무도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이방인의 눈에는 말 그대로 카오스였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질서가 있는 듯했다.

왜 이렇게 베트남에는 오토바이가 많을까? 자료를 찾아보니 베트남의 비싼 자동차 가격이 그 이유였다. 관세가 100% 정도 붙는다 하니 자동차는 언감생심인 것이다. 그에 반해 오토바이는 현지 공장이 있어서 그보다 싸고. 일본의 오토바이 회사도 많이 진출해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일본산 오토바이가 눈에 많이 띄었다. 나중에 북한도 베트남 식으로 개방된다면 오토바이의 천국이 될까? 
 
차와 뒤섞여 있는 오토바이들
 차와 뒤섞여 있는 오토바이들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다낭 중심가에서 베트남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인 반미 샌드위치를 사고 나오는 길. 나를 선두로 다섯 식구가 줄을 지어 길을 건너는데 갑자기 뒤에서 비명 소리가 났고, 곧이어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아뿔싸. 우리 집 7살 막내가 오토바이에 치여 길거리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베트남에 도착한 지 1시간도 안 돼 일어난 사고였다.

아이는 하얗게 질려 울고 있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주위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는 자기에게 경적을 울리며 다가오는 오토바이를 피하기 위해 좌우로 몸을 움직였고, 오토바이 역시 이를 피한다고 좌우로 움직이다가 부딪혔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지.

아내는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무조건 앞만 보며 직진했던 나를 강하게 질책했고, 아이들은 이후부터 오토바이만 보면 몸이 경직됐다. 며칠 돌아다녀본 결과, 베트남에서는 오토바이가 경적을 울리면 피하거나 멈추지 않고 그냥 가던 대로 가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오토바이 물결은 꽤 오랫동안 무서운 존재였다.
 
자동차 대신 오토바이
▲ 베트남의 대형마트 자동차 대신 오토바이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우리의 목적지인 후에를 가기 위해 그랩에 접속했다. 그러자 예약된 기사가 내게 따로 메시지를 보냈다. 10만동 할인해 줄 테니 그랩을 취소하고 자기랑 따로 거래하자는 것이었다. 그랩의 수수료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라나.

망설였다. 베트남에서 워낙 많은 한국인들이 사기를 당한다고 하던데 이래도 괜찮은지. 그러나 이내 수락했다. 바가지를 써도 뭐 얼마나 쓰겠는가. 몇몇의 경험담 때문에 베트남 사람들 모두를 의심할 수 없는 법. 우리 가족은 그랩 차량을 타고 다낭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100km 떨어져 있는 후에로 출발했다.

태그:#베트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