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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와 흙'은 25일간 멕시코의 도예마을을 따라 여행한 기록을 담았다. 3년 전 칠레의 한 도예마을에서 보았던 글귀를 기억한다. "도예는 땅의 꿈에 형상을 입혀주는 인류의 유일한 예술이다." 멕시코에서 만난 흙은 어떤 꿈을 꾸고 있었는지 그들이 만들어낸 흙 예술을 통해 만나보았다. - 기자말

멕시코 중부 뿌에블라 주의 주도 뿌에블라는 내가 5년간 살았던 스페인의 도시 세비야와 많은 부분이 닮았다. 그 닮음의 이유에는 이 도시가 스페인 식민도시의 대표도시인 점도 있지만 또 하나는 도시에서 만나는 익숙한 타일과 도자기에 있었다. 뿌에블라를 대표하는 도자기 '딸라베라(talavera)는 스페인 식민지 이후 이곳에 자리잡은 도자기이고, 스페인 세비야는 이 방식의 도자기 전통을 깊이 가지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뿌에블라에는 공식적으로 정식 인가를 받은 딸라베라 공장이 십여 개 있다. 전통방식의 딸라베라를 보존하고 그 질을 유지하고자 인증 제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중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우리아르떼(Uriarte, http://uriartetalavera.com.mx)는 1824년부터 전통 딸라베라의 방식을 이어 작업을 하는 곳으로 라틴아메리카 딸라베라 공장 중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도자기 공장이다. 무엇보다 매일 시간을 정해 직접 공장과정을 볼 수 있는 투어를 진행하고 있어 딸라베라 도자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곳이기도 하다.

이미 그 공정 과정에 대해서는 스페인에서 도자기를 배울 때 경험해 본 것이었지만 뭔가 멕시코 만의 다른 이야기가 있을 듯해 그 투어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1월은 멕시코 관광비수기여서 투어를 신청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덕분에 마치 일부러 특별 예약을 한 듯 특혜를 누리며 딸라베라를 만나 볼 수 있었다.
  
멕시코 딸라베라의 공정과정을 보여주는 샘플
 멕시코 딸라베라의 공정과정을 보여주는 샘플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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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딸라베라의 역사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서 시작되지만 '뿌에블라의 딸라베라(Talavera poblado)'라고 불리는 지금의 도자기는 중국, 이탈리아, 스페인, 멕시코 원주민의 문화 등이 결합된 멕시코의 딸라베라라고 할 수 있죠."

가이드를 맡은 까를로스는 공장의 중앙 정원에 있는 딸라베라 전시품들을 보여주며 간단한 역사적인 이야기를 한 후 제조 공장 안으로 안내했다. 그 첫 발걸음에는 여전히 원석 광물을 부수어 색 안료를 만드는 기계가 있었다. 수백 년 동안 딸라베라를 대표하는 색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전통적 방식으로 안료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광물에서 추출하는 딸라베라의 여섯색
 광물에서 추출하는 딸라베라의 여섯색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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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색은 여섯 가지입니다. 코발트 블루, 연한 블루 노란색, 레몬 빛 초록, 어두운 적색. 분홍빛, 검은 색이죠. 현대 딸라베라에서는 다 많은 색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전통적으로는 이 여섯 색의 범위를 지키죠. 그것이 딸라베라의 주요 캐릭터이니까요. 그 중에서도 대표 색이라면 당연히 흰 바탕에 '코발트 블루'라고 할 수 있죠."

딸라베라의 대략적 공정과정은 흙토와 백토를 섞어 물레로 모양을 만들고, 가마에서 초벌 후 베이스 유약을 입힌다. 그리고 그 위에 색으로 디자인을 그리고 다시 한 번 굽는다. 공장이라고 표현하지만 공장안에 어마어마한 기계들이 돌아가거나 반복적으로 무언가가 생산되는 풍경은 발견할 수는 없다. 모든 과정은 다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다. 각 과정들이 분업화돼 있어 어떤 역할을 맡은 손들이 그 공간에 있느냐가 다를 뿐이다.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은 당연히 딸라베라의 화려한 색을 입히는 곳이었다. 이 곳만 해도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색을 입힐 문양이나 그림을 접시나 그릇에 옮기는 작업과 문양의 난이도에 따라 작업하는 공간도 달랐다. 주로 전통 딸라베라의 문양의 경우 정해진 전통디자인과 패턴이 있기 마련인데, 공간 한쪽에 도서관 자료처럼 쌓여 보관돼 있는 문양 본들이 이곳의 세월을 보여주고 있었다.
  
200여년간 모인 딸라베라 장식디자인
 200여년간 모인 딸라베라 장식디자인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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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이백년 동안 모아온 디자인들이에요. 전통적인 작업은 주로 기존의 것을 이용합니다. 물론 지금은 개별 주문에 따라 약간의 변형이나 아예 새로운 디자인을 연구하기도 하죠."

색을 입히는 작업은 작업자의 수준에 따라 구분돼 있다. 이곳에서 작업하는 분들은 도예전문가이거나 미술전문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간단한 그림 실력에 대한 테스트를 거쳐 들어와서 시간을 두고 배워서 익혀 전문화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그림 밑작업을 하거나 덜 복잡한 디자인을 그리는 것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 경력이 되면 점점 세밀한 작업을 하는 식으로 옮겨간다.

이미 일한 지 몇 십년씩 되는 작업자들이 모여있는 곳에 가니 모든 작업자들은 고요한 가운데 자신의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밑그림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도 그들의 붓은 하나의 망설임도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각자는 자신이 그린 그림에 자신의 이름을 표시하고 품질과 실력을 검증받는다고 했다. 재벌 후 수정사항이 생기거나 그 전 상황에서 문제가 있을 때 그 작품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자기 이름으로 지게 되어 있다.
 
딸라베라를 만드는 손과 시간
 딸라베라를 만드는 손과 시간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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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한 사람이 전문가죠. 여러 손을 거쳐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 때문에 어느 과정도 소홀히 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각 과정들이 넘어갈 때 반복적 검수와 체크들이 이루어지죠. 여러 손이지만 한 손인 것처럼 품질을 관리하는 것이 이곳의 노하우입니다."

분업화해 작업하는 과정은 한 도예가가 자신의 작업을 자신의 속도에 맞춰 처음부터 끝까지 해나가는 과정과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결국 그 수고와 자신의 시간에 충실하는 손의 이야기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루 종일 물레를 돌려 같은 크기, 형태의 기본 틀을 만들어내거나, 초벌된 도자기의 면을 사포로 말끔히 문지르거나, 흠 없이 유약을 입혀나가거나 수천 번은 반복했을 선을 따라 거침없이 붓끝을 움직이거나 모두 하나의 도자기를 향한 손들일 테니 말이다.
  
주말 장터의 딸라베라 도자기들
 주말 장터의 딸라베라 도자기들
ⓒ 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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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서 나오니 주말 거리 장터에는 많은 딸라베라들이 나와 있었다. 공정 과정을 한번 둘러봐서인지 이제 그 도자기는 그냥 흔히 있는 한 지역의 기념품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멕시코 뿌에블라에 가게 된다면, 기념품으로 딸라베라 도자기를 살 생각이라면, 그 전에 그 도자기의 시간을 먼저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그 도자기를 보여주며, 혹은 선물하며 "이 도자기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이야기 하나를 더 가지게 될 것이니 말이다.

태그:#멕시코여행, #멕시코도자기, #멕시코뿌에블라, #멕시코딸라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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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예술치료, 스페인 문화&언어, 글쓰기로 삶의 형태를 만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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