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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절 100주년을 앞둔 24일, 역사 타방을 위해 충남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을 찾은 어린이들이 태극기 광장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 2019.2.24
 3.1절 100주년을 앞둔 24일, 역사 타방을 위해 충남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을 찾은 어린이들이 태극기 광장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 2019.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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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해와는 달리 2019학년도를 시작하기 위한 학교 안팎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아 답사와 계기수업 등을 준비하는 역사와 국어 과목 교사들의 노력이 새 학년 시작 전부터 학교를 덥히고 있다. 더욱이 3월 1일은 공식적으로 새 학년이 시작되는 날이다.

1학년 담임을 맡게 된 한 국어과 동료교사는 프로젝트 과제와 수행평가, 학급별 소풍에 이르기까지 1년 동안의 수업 주제를 3.1운동과 임정으로 정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이라며, 나아가 아이들에게 우리나라의 현대사와 헌법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는 욕심을 드러냈다. 그러자면 과목별 융합 수업도 필요할 것이다.

국어과가 그럴진대 하물며 역사과가 강 건너 불구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늘 그렇듯 빠듯한 수업시수에, 두툼한 교과서 분량이 부담스럽긴 해도, 올해만큼은 교과 진도에서의 변화가 불가피할 것 같다. 교과서의 다른 부분을 통째로 들어내는 한이 있더라도 3.1운동과 임정을 역사 수업의 중심에 둘 작정이다. 이미 지난해 말께 아이들과 합의한 터다.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저장된 아이들 70여 명에게 카톡을 통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3.1운동과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해결이 절실하고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과제를 묻는 '주관식' 질문이었다. 아이들이 보내준 답변들을 그러모아 나름 주제를 정하고 수업지도안을 만들어볼 요량이었다.

질문이 워낙 포괄적이고 두루뭉술해 온갖 다양한 답변이 쏟아질 줄 알았다. 남북 화해와 평화, 지역 갈등과 경제적 양극화 해소가 우선 거론될 것이고, 최근 들어 이슈가 된 5.18 역사 왜곡 문제도 다수 등장하리라 여겼다. 그것들이 100년 전 3.1운동, 임정과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발표와 토론 등을 통해 씨줄과 날줄로 엮어보려 했다.

아이들의 한결같은 대답 "친일 잔재 청산"

그런데 아이들의 답변은 서너 명을 제외하곤 입이라도 맞춘 듯 한결같았다. 친일 잔재의 청산. 그것도 해방 뒤 친일파가 처단되기는커녕 그들의 후손들까지 독재정권에 빌붙어 승승장구하면서 불의가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는 후기를 예외 없이 덧붙였다. 쑥스럽게도 계기수업을 통해 가르치고자 했던 '모범정답'을 일찌감치 아이들에게 들켜버린 셈이다.

한 아이는 답변에 이어 솔깃한 제안 하나를 던졌다. 수업시간에 이완용이나 송병준, 이광수나 최남선 등 누구나 다 아는 친일파 말고 감쪽같이 숨어 있는 친일파를 찾아 공유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면 어떻겠냐는 거다. 학교 게시판에 '이달의 독립운동가' 포스터가 붙듯이, '이달의 친일파' 홍보물을 제작해 교실마다 게시하자는 아이디어다.

위대한 독립운동가들을 찾아 현양하는 것보다,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친일파를 응징하고 기억하며 얻는 교육적 효과가 훨씬 더 크다는 주장이었다. 2.8독립선언을 주도했다 변절한 이광수와 3.1독립선언을 이끌었다 변절한 최린을 기억할수록 한용운과 이육사 등의 이름이 더욱 숭고하게 빛날 것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반면교사 삼자는 논리다.

그가 예시 삼아 처음 거론한 '숨은 친일파'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였다. 그가 친일파였고, 유럽에 살면서 나치에 동조했다는 사실을 어느 인터넷 블로그에서 우연히 읽었다면서, 처음엔 '가짜 뉴스'일 거라고 지레짐작했단다. 며칠 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안익태, 너마저…'라고 중얼거리면서.

그의 제안에 다시 한번 아이들에게 급조한 설문을 돌렸다. 안익태가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또 친일파가 작곡한 애국가를 교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등을 역시 '주관식'으로 물었다. 아이들의 진솔하고 명료한 답변이 메일과 문자로 속속 도착했고, 또 다른 예상치 못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놀랍게도 셋 중 한 명은 안익태가 누구인지 몰랐다고 고백했다. 애국가를 누가 작곡했고, 노랫말은 누가 썼는지 지금껏 한 번도 의문을 품어본 적도 없고, 숱하게 듣고 불렀지만 학교에서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며 핑계 아닌 핑계를 댔다. 한 아이는 아리랑의 가락처럼 오래 전부터 구전된 노래인 줄로만 알았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안다는 아이들도 그가 애국가를 작곡했다는 게 고작이었다. 모두 질문을 받고 나서야 그의 생애에 대해 알아봤다고 했다. 그가 친일을 넘어 나치에 부역했다는 사실에 경악하면서도, 자료의 끝에 붙어 있는 '이견이 있다'는 말을 위안으로 삼는 눈치였다. 구체적인 행적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다는 뜻일 테지만, 그보단 믿고 싶지 않다는 것에 가까웠다.

일본 유학시절부터 '에키타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그가 버젓이 국립묘지에 안장된 이유는 단 하나, 애국가를 작곡했다는 것뿐이다.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안익태라는 이름은 애국가와 '동의어'로 간주됐다. 오로지 애국가 하나로 그의 비루한 생애가 감춰지고 반민족적 행위가 용서받은 셈이다. 그가 대표적인 '숨은 친일파'로 낙인찍힌 이유다.

'에키타이'의 애국가, 어찌해야 할까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개원한 한국문화원의 안익태 흉상.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개원한 한국문화원의 안익태 흉상. 2015.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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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애국가를 바꾸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아이들의 입장이 정확히 반으로 갈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찬반으로 나뉘었다기보다 바꾸는 게 옳은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거라는 뜻이었다. 전가의 보도처럼 경제 현실 운운하며 극심한 갈등이 빚어질 게 틀림없다고 이구동성 말했다.

한 아이는 만약 애국가를 바꾸자고 하면 대다수 어른들은 '먹고 살기 힘든데 친일파가 대수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게 빤하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하긴 불과 10년 전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 한마디에 압도적인 표차로 전과자조차 대통령으로 뽑아준 어른들 아닌가. 기실 아이들의 '확신에 찬 예측'은 기성세대가 심어준 것이다.

일부는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해서는 곤란하다며, 더구나 애국가를 작곡한 이후 변절했다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적어도 곡에서든 노랫말에서든 '왜색풍'을 느낄 순 없지 않냐는 거다. 더러 애국가를 누가 작곡했느냐보다 누가 부르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주장을 펴는 아이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라 사랑의 마음을 불러일으켜야 할 애국가가 국가와 민족을 배신한 친일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국어 교과서에서 이광수와 최남선, 서정주, 모윤숙 등 친일파의 문학작품이 대부분 삭제된 마당에 애국가라고 예외일 순 없다고 말했다. 작가와 작품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단언한 것이다.

'체급'이 달라 국가와 교가를 단순 비교하긴 힘들겠지만, 친일파가 작곡한 교가를 바꾸는 학교가 있다는 것도 논거로 제시됐다. 광주제일고등학교(광주일고)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음악가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를 불러오다 최근 교체 작업이 진행 중이다. 주지하다시피, 광주일고는 3.1운동 이후 일제강점기 최대의 민족운동으로 평가받는 광주학생항일운동의 발상지다.

듣자니까, 교체될 새 교가는 광주일고의 동문인 김종률에게 맡겨졌다고 한다. 그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작곡가로 잘 알려져 있다. 교가의 교체를 통해 일제강점기 학생들의 독립을 향한 결연한 의지가 반세기를 지나 민주화운동의 불꽃으로 계승되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애국가의 교체 여부보다 애국가의 '오남용'이 더 문제라고 지적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애국가는 태극기와 함께 일제강점기 독립 정신을 북돋웠고,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민주주의의 염원을 담아낸 노래였으며, 최근에는 '태극기 부대'의 공식 응원가처럼 불리고 있다. '정체성'에 혼선을 빚으며 애국가의 위상이 예전만 같지 못하다는 뜻이다.

무심코 던진 '주관식' 질문 하나가 본의 아니게 아이들에게 '선행 학습'을 강제한 꼴이 돼버렸다. 올해의 계기수업은 '숨은 친일파 찾기'로 주제가 정해졌으니, 이제 수업지도안을 마련하는 일만 남았다. 그나저나 이야기가 여기까지 온 걸 보면, 3.1운동과 임정 수립 100주년을 허투루 보내는 건 왠지 아이들에게 죄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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