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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앞의 오래된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의 주인, 은종복씨가 지난 14일 청와대에 열린 '자영업자 소상공인 간담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는 오는 6월 26년간 운영한 풀무질을 떠나겠다며 세 청년들에게 가게를 넘기겠다고 한 바 있습니다. 은씨는 이날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편지 한 통을 건넸습니다. 그가 대통령에게 전한 편지를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편집자말]
대학가에 몇 개 남지 않은 사회과학서점 가운데 하나인 `풀무질'을 운영했던 은종복씨. (자료사진)
 대학가에 몇 개 남지 않은 사회과학서점 가운데 하나인 `풀무질"을 운영했던 은종복씨.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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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께 드리는 글

저는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앞에서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을 26년 동안 꾸렸습니다. 책방 풀무질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여러 사람들이 힘과 슬기와 돈을 모았어요. 풀무질을 인수하겠다는 젊은 사람들이 나왔고 풀무질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책을 사주었지요.

올 설날 이틀 전(3일)에 대중모금을 시작했는데 4일 만에 1000만 원이 모였고 오늘(14일)로 10일이 지났는데 1800만 원이 넘게 모였어요. 저는 큰 회사에서 책방 풀무질에 1억 원을 주는 것보다 1000명의 사람이 1만 원씩 모아서 천만 원을 모으는 것이 훨씬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회사가 책방 풀무질에 그렇게 큰돈을 주지도 않겠지만, 줘도 받지 않겠습니다. 가난하지만 마음 맑은 사람들이 만 원씩 모아서 준다면 기꺼이 받겠습니다.

대통령님, 풀무질의 벗들을 대신해 전합니다

책방 풀무질에 오는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대통령께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편의점 사장님은 성균관대 앞에 이마트 편의점이 새로 들어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올 3월부턴 편의점 사이에 거리를 두어야 하는데 그 법을 피해서 서둘러 편의점을 새로 연 것이지요. "편의점 본사에서는 동네에 편의점이 많이 생기면 돈을 더 벌겠지만 동네 편의점들은 서로 경쟁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하셨어요.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도 찬성하지만, 동네 편의점 거리 두기를 먼저 했으면 좋았겠다"고.

성대 학생들에게도 물었지요. "대학생들에게도 교통요금 할인을 해달라"고 했어요. 사실 프랑스에서는 대학생이면 25살 때까지 모든 문화·예술·교통비를 정가의 5%만 내면 돼요. 영화 한 편, 연극 한 편, 미술관 관람료가 우리나라 돈으로 500원이면 되지요. 학생들이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 하는 일이 없지요. 물론 그 나라는 대학생 학비도 한 학기에 50만 원만 내지요. 독일은 아예 학비가 없지만.

출판사 일을 하는 분은 "국가보안법을 없애야 한다"고 했어요. 국가보안법은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길의 걸림돌이지요. 사람들이 마르크스가 1848년에 쓴 <공산당선언>을 읽는다고 모두 공산주의자가 될까요. 지만원이 1980년 광주항쟁 때 한반도 북녘 사람들이 내려와서 폭동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고 누가 믿을까요. 사상·언론·양심의 자유를 막는 법은 없애야 합니다. 저도 국가보안법으로 1997년에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갔고, 서울구치소에서 한 달을 살다 나왔지요.

지금도 책방 풀무질에는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에 해당하는 책들이 있어요. 이제는 그런 책들을 너무 안 읽어서 문제 아닐까요. 요즘 대학생들은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적 변증법은 고사하고 그냥 변증법도 잘 모른다고 해요. 프랑스에서는 백성들 삶을 옥죄는 정책을 펴면 고등학생들이 먼저 거리에 나서서 시위하지요.

그들은 중고등학교 때 이미 노동조합운동사, 세계혁명운동사를 토론하면서 공부해요. 우리나라는 오로지 이름난 대학에 가려고 학창시절을 다 보내요. 대학에 들어가서는 일터 찾기 공부에 매달리다 보니 참된 민주주의를 찾으려는 공부와는 멀어지지요.

'가난하지만 맑은' 이들을 위한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자영업·소상공인과 대화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참석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이날 만남은 중소·벤처기업, 대·중견기업, 혁신벤처기업에 이은 경제계와의 4번째 소통자리로 소상공인연합회 등 36개 관련 단체와 자영업자 등 총 160여 명이 참석했다.
▲ 심각한 표정으로 자영업·소상공인 질문 듣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자영업·소상공인과 대화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참석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이날 만남은 중소·벤처기업, 대·중견기업, 혁신벤처기업에 이은 경제계와의 4번째 소통자리로 소상공인연합회 등 36개 관련 단체와 자영업자 등 총 160여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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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풀무질에 오는 많은 사람들이 "기본소득정책을 펴달라"고 했어요. 가난한 것을 증명해야만 돈을 주는 선별복지가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누구에게나 한 달에 일정액을 그냥 주는 제도지요. 이제는 만 명의 사람이 할 일을 기계 한 대가 하지요. 그 인공지능기계가 머리 좋은 몇 사람 노력으로만 만들었을까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사회예요. 모든 백성들에게 생활배당금을 주어야 합니다.

방위분담금으로 미국에 한 해에 1조가 넘게 돈을 주기로 했지요. 지난해 세금도 22조 더 걷혔어요. 돈이 없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서 돈이 없는 것 아닐까요.

또 여러 사람들이 말했어요. 국민의 힘을 믿고 남북정책이나 포용정책을 더 힘차게 해달라고. 제발 토건사업은 그만하라고. 어쩌면 경제성장을 멈추려는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고.

저는 딱 두 가지만 대통령께 부탁드리고 싶어요. 농사꾼이 마음 놓고 농사를 짓는 세상과 비정규직이 없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책방을 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뜬금없겠지만, 저도 밥을 먹고 살아요. 경제개발협력기구 많은 나라들은 식량자급률이 100%가 넘어요. 우리나라는 25%가 채 되지 않아요. 또, 만약 석유가 없어진다면 석유 농법을 주로 하는 우리나라에 큰 재앙으로 다가올 거예요.

얼마 앞서 일을 하다 목숨을 달리한 김용균님을 생각하면 고개를 들 수 없어요. 우리나라는 이승만 정권 때부터 바꾸지 않은 정책이 있어요. 바로 저곡가 저임금이에요. 그 정책은 이 땅에서 제일 행복해야 할 농사꾼 노동자 도시빈민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지요.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 모두가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오랫동안 생각하고 실천했고 더 잘 해보려고 애쓴다는 것도 알아요.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셨지요. 참 고맙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주세요. 몸 마음 튼튼하세요.

2019년 2월 14일 목요일 새벽이 밝아오는 무렵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
 
책방 풀무질
 책방 풀무질
ⓒ 텀블벅 풀무질 모금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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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문재인, #대통령, #풀무질 ,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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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앞에서 작은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을 2019년 6월 11일까지 26년 동안 꾸렸어요. 그 자리는 젊은 분들에게 물려 주었어요. 제주시 구좌읍 세화에 2019년 7월 25일 '제주풀무질' 이름으로 작은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새로 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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