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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8월 대학 시간강사 처우를 개선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시간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대학가에 '시간강사 정리해고'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이 기사는 이상구 시민기자가 자신과 동료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겪는 '칼바람'을 시간강사 L씨 이야기로 재구성한 글입니다.[편집자말]
L씨는 I시에 있는 모 사립전문대학의 시간강사(이하 '시강')다. 그는 지난달 말 학과 조교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시간강사법이 개정되면서 학교에서 되도록 시강을 줄이라는 지시가 있어 이번 학기부터는 부득이 강의를 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새 학기 시간표만 학수고대하던 L씨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그러나 L씨는 이내 평정을 되찾고 전화를 끊으며 조교에게 '고맙다'라고 말했다. 정말 고마워서였다. 지난 8년 동안 예닐곱 군데 대학에서 강의해 봤지만 시강 자르면서 이렇게 친절하게(?) 그 사유까지 알려준 학교는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숫자는 복잡합니다. 회계는 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삼바’를 이야기했습니다.
 지난 8년 동안 예닐곱 군데 대학에서 강의해 봤지만 시간강사를 자르면서 이렇게 친절하게(?) 그 사유까지 알려준 학교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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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씨는 시강 생활 전에는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다녔다. 그런데 2011년 11월 느닷없이 그의 회사가 M&A로 사라져 버렸다. 비교적 고위직이었던 L씨는 1순위로 정리해고를 당해야 했다. 2006년부터 대학원에 진학해 주경야독하던 그는 회사에서 쫓겨나온 이듬해 박사학위를 땄다. L씨의 처지를 익히 알고 있던 지도교수가 추천해 그 해부터 모교에서 시간강사를 시작했다. 시강을 하면서도 재취업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L씨는 그렇게 본의 아니게 전업시강이 됐다.

L씨의 소식을 들은 다른 지인들도 여기저기 강의를 주선해 주었다. 그 덕에 많게는 1주일에 33시간을 강의한 적도 있었다. 주5일 하루 평균 7시간꼴이었다. 멀리는 전라도까지 강의하러 다녔다.

주위 사람들이 미쳤냐고, 그러다 죽겠다며 말리기도 했지만 L씨는 꿋꿋하게 2년 4학기를 그렇게 강의했다. 아는 분들이 어렵게 추천해주시는데 거절할 수도 없었을뿐더러, 무엇보다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강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언감생심 처음부터 아예 불가능한 노릇이었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L씨는 시간당 3만 6천 원에서 5만 4천 원까지 강의료를 받았다. 물론 세전(稅前)이 그렇다. 제일 후했던 학교에서는 주당 9시간 강의하고 세후 160만 원정도 받았다. 주 33시간 강의할 때 정확히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얼추 250만 원쯤 입금된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기름값, 고속도로 통행료, 밥값 등 길 위에서 버리는 돈이 많았다. 의료보험, 국민연금 같은 준조세까지 자부담으로 내면 그야말로 남는 게 없었다. 그나마 방학에는 수입이 전혀 없다. L씨는 비수기(방학)면 이삿짐, 대리운전 따위의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당이 세다는 말에 공사장 막일도 나가봤지만 그의 나이엔 무리였다. 고작 이틀 나가고 일주일을 앓았다. 약값이 더 많이 들었다고 했다. 이래저래 쪼들리기는 매한가지였다.

불친절한 해고

돈보다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예측불가능성이다. 다음 학기에도 강의를 줄지 어떨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엿장수 아니 교수들, 특히 학과장 마음대로였다. 사전에 알려주는 정보가 하나도 없으니 계획적 생활 같은 건 진즉 포기해야 했다. 새롭게 추천해주는 곳이 있어도 다니던 학교가 어찌될지 몰라 포기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더 환장할 노릇은 그러다가 잘렸는데도 정작 당사자는 왜 그렇게 됐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어봐도 조교들은 잘 모른다고 얼버무렸다. 그렇다고 하늘 같은 교수님들께 여쭤보는 것은 불경스럽게 여겨졌다. 혹 나중에라도 불이익을 받을지도 몰랐다. 물론 학칙에 해고 사유를 알려줘야 한다는 규정도 없었다.

L씨는 제일 처음 강의를 시작했던 모교에서 가장 먼저 잘려봤다. 처음엔 전혀 영문을 몰랐는데 나중에 들리는 말로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L씨 지도교수의 정년퇴직이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동안 노 교수의 그늘에 가려 있던 같은 전공의 젊은 교수가 그동안의 한을 풀려고 자신의 제자들로 강사를 몽땅 대체했다는 거였다.

참 어이없는 노릇이었지만 L씨는 그게 앞으로 자신이 적응해야 할 현실임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두 번째 역시 비슷했다. L씨를 기용해 준 직전 학과장이 모종의 스캔들 때문에 징계성 좌천으로 물러나자, 그가 추천한 강사들이 무더기로 잘린 것이다. 말하자면 L씨는 모교에선 적폐청산, 두 번째 학교에선 연좌제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L씨는 특히 평생교육원의 학점은행반이나 산업체 위탁반 같은 곳에서 강의를 많이 했다. 그런 특수반의 강사 재기용 기준은 오직 학생유치실적이었다. 실적이 없으면 칼같이 강의에서 배제됐다. 학과장들은 만날 때마다 실적으로 부담을 줬다. L씨는 마치 영업사원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 외에도 정말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강의를 추천해준 교수에게 매년 상품권을 상납하다가 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되던 해에 끊었더니 강의는 물론 아예 인연까지 끊어버린 경우도 있었다며 L씨는 씁쓸해 했다.
 
 혹자는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다녀서 얻은 게 뭐냐고 묻는다. 나는 얻은 게 많았다고 단호히 대답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가 시강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며 뜯어고친 "고등교육법 개정안(일명 시간강사법)" 때문이라니 L씨는 더 기가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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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런 이유들은 나중에 가서야 제3자를 통해 듣거나 정황상으로 유추한 게 대부분이다. 학교로부터 배제사유는커녕 강의 배제 여부조차 통보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새학기 앞두고 학교에서 아무 연락이 없으면 그냥 잘린 것으로 간주하면 그만이었다.

어떤 학교는 강의평가점수도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공개하더라도 자기 점수만 공개하지 남의 것까지 공개하지는 않는 학교도 있었다. 순위대로 강의배정을 결정할 것이라 하고도 그랬다. 결국 대부분의 시강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저 주면 주는 대로 안 주면 그런가 보다 하며 기계처럼 강의만 하면 되는 길가의 깡통 신세와 다를 게 없었다고 L씨는 한탄했다.

그렇게 다 잘려나가고 마지막으로 남은 학교가 이번에 잘리게 된 전문대학이었다. 이젠 그나마도 사라져 버리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가 시강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며 뜯어고친 '고등교육법 개정안(일명 시간강사법)' 때문이라니 L씨는 더 기가 막혔다.

올 8월부터 실시될 이 법안은 시강들에게 교원과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고 별문제 없으면 3년까지 재임용을 보장한다는 게 개정의 골자다. 교원과 동등한 지위란, 방학에도 기본급을 지급하고 퇴직금과 4대 보험 등의 복리혜택까지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업 시강들에게는 꿈과 같은 얘기지만 학교 입장에서는 당연히 큰 부담거리일 것이다. 많게는 연간 수백억 원의 지출이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래서 각 학교들은 나름대로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전임교수들의 강의시간을 늘리고, 시강 대신 현직이 있는 겸임이나 초빙교수 등을 확충하는 게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법 바뀐다고 좋아했건만

심지어 어느 학교에선 교양과목과 졸업이수학점을 축소하는 꼼수까지 동원한다고 한다. 어찌 됐든 시강들의 처우를 개선해 주자는 법 때문에 애꿎은 시강들만 굶어죽을 판이 되고 말았다. L씨도 그나마 한 달에 백여 만 원 들어오던 강사료 수입마저 끊기게 됐다.

"어떡하긴요. 그렇게 하라면 하는 수밖에요. 박사 받으니 직장 없어지고, 법 바뀐다고 좋아했더니 시강 자리까지 빼앗기니... 어이도 없고 화도 나지만, 어디 가서 누구한테 하소연하겠어요."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 씁쓸하게 운을 뗀 L씨는 맥없이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는 시강이 본업이고 대운(대리운전)이 알바였는데, 본격적으로 전업대기(대리운전기사)로 나서야죠 뭐. 호사다마라고 하잖아요.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 좋은 날도 오지 않겠어요?"

짐짓 밝은 표정을 지었지만 그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지금의 나쁜 일은 다음의 호사를 위한 건널목일지도 모른다. 그렇게라도 믿어야 하루를 버틸 힘이 나지 않겠냐고 그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그의 말마따나 다마(多魔) 끝에 호사(好事)가 하루빨리 찾아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우리는 두 손을 꼭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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