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극장 운영을 종료한 '일시정지시네마' 전경

지난 17일 극장 운영을 종료한 '일시정지시네마' 전경 ⓒ 권진경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독립영화를 볼 기회를 마련해주었던 춘천의 '일시정지 시네마'가 문을 닫았다. 

지난 17일, '일시정지 시네마'가 3년 전 자리 잡은 '강원 춘천시 춘천로146번길 6'은 떠나보내야 하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이곳을 찾은 150여 명의 사람으로 북적였다. 폐관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극장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마지막 상영은 매진됐다. 폐관 행사를 진행하던 유재균 '일시정지 시네마' 대표는 행사 내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지난 17일 극장 운영을 종료한 강원도 춘천 독립영화관 '일시정지시네마' 폐관 행사 현장

지난 17일 극장 운영을 종료한 강원도 춘천 독립영화관 '일시정지시네마' 폐관 행사 현장 ⓒ 권진경

 
이날 현장을 찾은 사람들은 "다양한 독립영화를 볼 수 있었던 '일시정지시네마'가 사라져서 아쉽다"면서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다시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몇몇 관객과 감독들은 아쉬운 마음에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지난 17일 문을 닫은 강원도 춘천 독립영화관 '일시정지시네마' 전경. 그동안 일시정지시네마를 찾았던 관객들이 남긴 메모들이 벽 한 켠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지난 17일 문을 닫은 강원도 춘천 독립영화관 '일시정지시네마' 전경. 그동안 일시정지시네마를 찾았던 관객들이 남긴 메모들이 벽 한 켠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 권진경

 
강원도 춘천에 자리 잡은 '일시정지 시네마'는 춘천의 첫 독립영화관이었다. 2016년 5월 춘천 운교 사거리 부근에 일시정지 시네마를 만든 유재균 대표는 대학에서 영상미디어를 전공하고, 현재 춘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디어 아트 작가다. 

대학에 다닐 당시 3년간 교내 시네마테크를 운영했던 유 대표는 춘천에서 자기가 보고 싶은 독립·예술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만들고자 했다. 그 결실이 춘천의 첫 단편영화관으로 기억될 '일시정지 시네마'다. 극장 이름을 '일시정지 시네마'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일상에 지친 관객들이 극장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일상으로 다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지었다"고 말했다. 

춘천의 첫 독립영화관으로 기억될 극장, 왜 문을 닫았을까?
 
 지난 17일 극장 운영을 종료한 강원도 춘천 독립영화관 '일시정지시네마' 전경

지난 17일 극장 운영을 종료한 강원도 춘천 독립영화관 '일시정지시네마' 전경 ⓒ 권진경

 
관객과 지역의 영화 제작자들, 미디어 활동가들이 함께 극장을 만들어가는 '커뮤니티 시네마'를 지향한 '일시정지 시네마'는 다른 대도시는 물론 강릉시네마테크, 정동진독립영화제,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등 강릉과 비교했을 때 영화 문화 저변이 현저히 좁은 춘천에서 지역 관객들의 독립, 예술 영화 향유 기회를 넓히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다.

유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일시정지 시네마'는 극장 이름을 따라 '퍼즈그라운드'(PAUSEGROUND)라는 '일시정지 시네마'만의 독특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관광지로 유명한 춘천의 이점을 살려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일시정지 시네마'는 독립영화 감독과 배우, 관객들이 함께 춘천을 여행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독립단편영화 상영, 단편영화제작 워크숍, 영화제를 함께 진행하는 '단편 입덕 유랑기'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지난해 8월에는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에무 시네마에서 '영화 그리고 휴식'이라는 부제 하에 '필름 시에스타' 상영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 17일 극장 운영을 종료한 강원도 춘천 독립영화관 '일시정지시네마' 전경. 일시정지시네마'에서 상영된 독립/예술영화 포스터들이 전시되어 있다. 포스터로 전시된 작품 외에도 일시정지시네마는 다양한 독립 단편 영화들을 상영 했고, 관객과의 만남을 주도했다.

지난 17일 극장 운영을 종료한 강원도 춘천 독립영화관 '일시정지시네마' 전경. 일시정지시네마'에서 상영된 독립/예술영화 포스터들이 전시되어 있다. 포스터로 전시된 작품 외에도 일시정지시네마는 다양한 독립 단편 영화들을 상영 했고, 관객과의 만남을 주도했다. ⓒ 권진경

 
여러 행사들로 '일시정지 시네마'를 사랑하는 관객들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춘천, 강원도뿐만 아니라 타 지역 사람들도 '일시정지 시네마'만의 특별한 프로그램을 경험하고자 이곳을 찾았다. 새로운 시네아스트로 주목받는 춘천 출신 김대환, 장우진 감독, 2017년 출범한 강원영상위원회 또한 '일시정지 시네마'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자 했다. 

그렇게 지역 영화 애호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일시정지 시네마'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폐관을 택했다. 극장의 새로운 대안 모델로 각광 받고는 있지만, 가시적으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일시정지 시네마'에 대한 영화진흥위원회, 지자체, 지역사회의 관심은 미온적이었고, 극장을 유지하기 위한 운영진과 직원, 상영 활동가들의 삶이 희생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강원도 춘천 독립영화관 일시정지시네마 좌)유재균 대표 우)고승현 스태프

강원도 춘천 독립영화관 일시정지시네마 좌)유재균 대표 우)고승현 스태프 ⓒ 권진경

 
유 대표는 "극장을 운영하는데 여럿 어려움이 있었지만 관객들이 꾸준히 일시정지 시네마를 찾았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극장 문을 계속 열 수도 있었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독립예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예전만큼 극장을 찾지 않는 데는 넷플릭스, IPTV를 중심으로 한 플랫폼 변화 등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반면, 많은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코미디 영화 혹은 미국, 유럽에서 대규모 자본으로 제작된 예술영화 상영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지난 17일 극장 운영을 종료한 강원도 춘천 독립영화관 '일시정지시네마' 전경.관객과 지역의 영화 제작자들, 미디어 활동가들이 함께 극장을 만들어가는 ‘커뮤니티 시네마’를 지향한 일시정지시네마는 관객과 감독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상영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해왔다.

지난 17일 극장 운영을 종료한 강원도 춘천 독립영화관 '일시정지시네마' 전경.관객과 지역의 영화 제작자들, 미디어 활동가들이 함께 극장을 만들어가는 ‘커뮤니티 시네마’를 지향한 일시정지시네마는 관객과 감독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상영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해왔다. ⓒ 권진경

 
한국 독립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 수가 계속 급감하는 이유를 분명 관객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소수 특정 영화에만 상영관을 몰아주는 스크린 독과점 또한 다양한 영화와 극장들이 설 자리를 줄어들게 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폐관 일주일 전부터 다양한 폐관기념 상영회를 진행한 '일시정지 시네마'는 마지막 상영작으로 박배일 감독의 <라스트 씬>을 선정했다. <라스트 씬>은 지난해 갑자기 문을 닫은 국도예술관의 폐관 전 한달 간의 기록을 중심으로, 운영난으로 1년 정도 문을 닫아야했던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운영 중단 위기를 겪어야 했던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광주극장의 사례를 통해 오늘날 독립예술영화관 들의 현실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상영 뒤에는 영화를 만든 박배일 감독과의 관객과의 대화 이후, 그동안 일시정지 시네마를 사랑했던 관객, 감독들이 함께 하는 폐관 선언으로 행사는 마무리 되었다. 
 
 강원도 춘천 독립영화관 '일시정지시네마' 폐관 행사 종료 이후 운영진과 관객들이 모여 촬영한 기념 사진

강원도 춘천 독립영화관 '일시정지시네마' 폐관 행사 종료 이후 운영진과 관객들이 모여 촬영한 기념 사진 ⓒ 박주환

 
이날 유 대표는 "비록 '일시정지 시네마'는 문을 닫지만, 춘천 곳곳에 위치한 복합 문화 공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독립영화 상영회를 꾸준히 진행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또 독립영화 <튼튼이의 모험> 고봉수 감독과 배우들, 관객들이 함께 영화를 보고 춘천 곳곳을 돌아다니는 행사로 각광받았던 '영화 여행 프로그램' 또한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지난 17일 극장 운영을 종료한 강원도 춘천 독립영화관 일시정지시네마 전경. 일시정지시네마를 사랑하는 관객의 마음이 담긴 메모가 눈에 띈다.

지난 17일 극장 운영을 종료한 강원도 춘천 독립영화관 일시정지시네마 전경. 일시정지시네마를 사랑하는 관객의 마음이 담긴 메모가 눈에 띈다. ⓒ 권진경

 
지난해 5월부터 '일시정지 시네마' 운영진으로 합류한 고승현 스태프는 "고향인 원주로 돌아가 원주 구도심을 기반으로 한 독립 영화 상영회 및 단편 영화 상영관 설립을 준비 중"이라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일시정지 시네마'는 결국 관객들에게 안녕을 고했지만, 강원, 춘천 관객들에게 독립/예술영화를 소개하고자 하는 운영진들의 행보는 계속될 예정이다. 

최근 지역 영화관계자들을 중심으로 더 안정된 독립예술영화 상영과 고용 형태를 보장하는 독립영화전용관 설립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조만간 새로운 '일시정지 시네마'가 문을 여는 날을 기대해 본다. 
일시정지시네마 독립영화관 독립영화 춘천 극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