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대전 승리 주역... 강소휘(왼쪽)-표승주 선수

화성대전 승리 주역... 강소휘(왼쪽)-표승주 선수 ⓒ 박진철

 
벼랑 끝에서 살려낸 봄 배구 희망. 그것은 '간절함'이었다. 역대급 순위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2018~2019시즌 V리그 여자배구에서 GS칼텍스가 극적으로 플레이오프(PO) 진출 가능성을 이어갔다.

GS칼텍스는 지난 16일 경기도 화성시 실내체육관에 열린 IBK기업은행과 경기에서 5세트 막판 대역전극을 펼치며 세트 스코어 3-2(25-22 27-25 23-25 19-25 15-13)로 승리했다.

두 팀은 챔피언결정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불꽃 튀는 공방을 벌였다. 경기장은 4000명 가까운 관중들이 득점 하나하나에 함성을 뿜어내면서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6라운드의 첫 주말 경기를 끝낸 여자배구는 말 그대로 '대혼돈' 상황이다. 18일 현재 정규리그 순위가 1위 흥국생명(승점 51점-17승8패), 2위 한국도로공사(48점-17승9패), 3위 IBK기업은행(46점-15승11패), 4위 GS칼텍스(45점-16승10패) 순으로 재편됐다. 이어 5위 현대건설(23점-7승19패), 6위 KGC인삼공사(18점-5승20패)가 자리하고 있다.

정규리그 3위까지만 진출하는 플레이오프 경쟁은 안개가 자욱하다. 1위 자리도 한국도로공사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면서 위험 경고등이 켜졌다.

특히 GS칼텍스에는 16일 IBK기업은행전 승리가 올 시즌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값진 승리였다. 만약 패했다면, '봄 배구'인 PO 진출이 매우 어려운 국면으로 빠지기 때문이다. 지옥 문턱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셈이다.

실제로 GS칼텍스가 3-1 이내로 패했다면, 경쟁 상대인 한국도로공사, IBK기업은행과 승점이 5점 차이로 더 벌어질 뻔했다. 남은 경기가 4경기인 걸 감안하면, 뒤집기가 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이날 경기에서 외국인 선수 부상이라는 악재까지 발생했다. GS칼텍스의 알리(28세·186cm)는 4세트 초반 블로킹을 하고 착지하는 과정에서 원래 안 좋았던 왼쪽 무릎이 삐끗하며 주저앉았다. 알리는 큰 통증을 호소하며 코트에서 나왔다. 다행히 18일 병원 정밀검진 결과, 무릎 인대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 

GS칼텍스 관계자는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충분한 휴식과 재활이 필요하기 때문에 20일 인삼공사전은 출전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그 이후 경기는 통증 호전 상태와 알리의 의지에 따라 출전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리한 조건은 또 있다. 남은 경기 일정이 좋지 않다. GS칼텍스는 20일 KGC인삼공사(서울 홈), 23일 흥국생명(인천 원정), 3월 1일 현대건설(서울 홈), 3월 3일 한국도로공사(김천 원정)와 경기를 남겨 놓고 있다. 여자배구 6개 팀 중 가장 먼저 정규리그 일정이 끝난다. 경기 간격도 2~3일로 짧다. 체력적인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만큼 이날 IBK기업은행전 승리가 매우 중요했다.

차상현 감독 "이제는 무조건 베스트, 박혜민 투입은 승부수"
 
 '막판 대역전 주인공' 신인 박혜민(181cm)... IBK기업은행-GS칼텍스 경기 (2019.2.16, 화성 실내체육관)

'막판 대역전 주인공' 신인 박혜민(181cm)... IBK기업은행-GS칼텍스 경기 (2019.2.16, 화성 실내체육관) ⓒ 박진철

  
차상현 GS칼텍스 감독이 경기 직후 언론 인터뷰실에서 보인 표정과 발언에서도 긴박했던 경기 상황과 절박한 심정이 그대로 묻어났다.

그는 "(대역전승에 대해) 선수들에게 굉장히 고맙다. 끝까지 투지를 발휘해줬고, 저희가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졌으면 많이 힘든 상황이 됐을 것이다. 외국인 선수까지 부상을 당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며 "잔여 경기도 암울하게 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선수들이 끝까지 끈을 놓지 않은 것에 고맙게 생각한다. 나머지 경기도 잘 준비하면 가능성이 아직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5세트 막판 중요한 순간에 신인 선수인 박혜민(19세·181cm)을 전격 투입한 배경에 대해서도 '승부수'였다고 밝혔다. "4세트에서 박혜민의 서브가 날카롭게 들어가는 게 분명히 보였다"며 "박혜민의 경기 리듬이 제 눈에 보였기 때문에 표승주 대신 투입해 서브를 변경하는 승부수를 띄웠다"고 설명했다.

이날 박혜민은 5세트 11-13으로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표승주  대신 교체 멤버로 투입됐다. 그리고 예리하고 까다로운 서브로 IBK기업은행의 수비진을 뒤흔들었다. 서브 에이스까지 작렬하며 13-13 동점을 만들기도 했다. 마지막 끝내기 득점도 사실상 박혜민의 서브 득점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갓 고교를 졸업한 신인이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대역전극의 주인공이 됐다. 올 시즌 신인 선수들이 왜 역대급인지를 보여준 또 하나의 장면이 탄생한 셈이다.

차 감독은 순위 싸움이 치열한 상황에 대해 "받아들여야 한다. 피해서 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남은 4경기는 솔직히 방법이 없다. 자칫 잘못하면 (플레이오프 진출이) 그냥 끝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저희가 가지고 있는 베스트를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다른 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표승주 "버텨야 산다"... 강소휘 "젖 먹던 힘까지 쏟을 것"
 
 '돌아온 장신 센터' 문명화(189cm)

'돌아온 장신 센터' 문명화(189cm) ⓒ 박진철

 
선수들의 인터뷰 발언에도 이날 경기의 중요성과 봄 배구(PO 진출)에 대한 간절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표승주는 "알리가 부상으로 나간 이후 선수들이 더욱 똘똘 뭉쳐서 하자고 했는데, 그게 잘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GS칼텍스로 온 이후 봄 배구를 한 번도 못 갔다. 올해 저희한테 기회가 왔는데, 5라운드에서 좀 처져서 그게 지금 힘든 부분으로 다가왔다"며 "남은 4경기를 잘 버티고 이겨내면 더 단단해져서 플레이오프에 가서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잘 버텨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솔직히 말해서 남은 4경기 모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최대한 승점을 많이 얻어야 플레이오프에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강소휘도 "복근 부상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 가끔 약간 복근이 땡기는데, 경기 뛰는 데는 지장이 없다"며 "다른 선수들도 아픈데 다 참고 한다. 저도 죽을 만큼 아픈 건 아니니까, 몇 경기 안 남았으니까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한다"고 투지를 불태웠다. 그러면서 "매 경기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1점 1점 포인트를 따내면 플레이오프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명화는 "이전 경기까지는 주로 교체 멤버로 들어갔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선발로 계속 뛰었다"며 "그래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조금씩 경기 감각을 찾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부상 회복에 대해서는 "경기 중 세트가 길게 가면 통증이 오긴 하는데, 버틸 만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팀에 도움이 되고 싶은데, 그동안 부상 때문에 그러지 못해서 많이 힘들었다"며 "팀원들이 워낙 잘해주고 있어서 내가 복귀하면 센터진이 흔들릴 때 들어가서 잘해주자는 생각만 했다"고 밝혔다.

5년 만에 찾아온 기회, '이대로 멈출 수 없다'

GS칼텍스는 2013~2014시즌에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이후 계속 하위권에만 맴돌았다. 2014~2015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4년 동안 봄 배구는 고사하고, 계속 4~5위로 부진했다.

선수들도 봄 배구를 향한 간절함은 더욱 커졌다. 표승주는 2014~2015시즌에 정대영의 FA 보상 선수로 한국도로공사에서 GS칼텍스로 팀을 옮긴 지 5년이 됐다. 그러나 이적 이후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지 못했다. 강소휘도 2015~2016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GS칼텍스에 입단했다. 마찬가지로 아직 봄 배구를 경험하지 못했다.

올 시즌은 달랐다. 시즌 초반부터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거센 돌풍을 일으켰다. 2라운드는 1위에 등극했고, 4라운드까지도 2위를 유지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시기인 5라운드에서 1승 4패로 급격히 다운됐다. 순위도 4위로 내려갔다. 시즌 내내 잘하다가 막판에 봄 배구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결말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런 상황에서도 GS칼텍스 홈구장인 서울 장충체육관은 연일 3000~4000명의 구름 관중이 몰려들고 있다.

GS칼텍스 선수들이 끝까지 주저앉을 수 없는 이유들이다. 그 절박함이 화성대전에서 대역전극을 만들었고, PO 희망을 살려냈다. 간절함이 사무치면 메마른 사막에서도 꽃이 핀다는 말이 있다. GS칼텍스는 봄 배구의 꽃을 피울 수 있을까.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프로배구 V리그 GS칼텍스 IBK기업은행 KOVO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비록 모양이 틀려도 왜곡되지 않게끔 사각형 우리 삶의 모습을, 동그란 렌즈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