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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육청에서 독립문 쪽으로 걸어가면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나온다. 교남 뉴타운이다. 거기에서 약간만 올라가면 한국에서 보기 쉽지 않은 서양풍 벽돌 주택이 나타난다. 뉴타운 단지 옆에 위태롭게 매달린 것 같은 이색적인 풍경이다. 이곳이 홍난파 가옥이고, 지방 문화재다. 정몽준과 박원순이 맞붙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이 자그마한 2층 양옥집이 시대 정신이 되었다. 보존이 능사가 아니라는 정몽준은 시장 선거에서 박원순에게 졌다.
 
한국의 아파트 문화에 대해서 가장 신랄한 분석을 들이댄 프랑스 학자 줄레리 발레조(<아파트 공화국>)가 선진국 트렌드와 한국을 비교하면서 제시한 개념 중의 하나가 '도심의 박물관화'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많은 선진국이 도심을 거대한 박물관처럼 만들어나갈 때, 한국만은 재건축을 통해서 모든 것을 새로 만들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지적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이제 우리도 3만 달러를 넘었다.
 
촛불집회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바꾸었다. 대통령이 탄핵되었고, 정권이 바뀌었다. 과연 이 현상은 무엇이고, 이 변화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그런 질문이 던져졌다. 촛불의 핵심은 무엇이고, 그 정신은 무엇일까?

다양한 질문이 던져졌지만, 어쨌든 이 모든 것을 대중적으로 관통하는 1번 질문은 누가 다음 대선의 승자가 될 것인가, 이거 아니겠는가? 현 정권의 임기가 아직 절반도 지나지 않았다. 대선 얘기는 시기적으로 이르다. 그럼에도 안희정, 이재명 등 유력 여권 대선 후보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고있다.  

촛불집회와 탄핵, 정권교체, 그리고 광장
 
지난 2017년 2월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주최 ’박근혜 없는 3월, 그래야 봄이다! 헌재 탄핵인용! 박근혜 구속! 황교안 퇴진! 19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
 지난 2017년 2월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주최 ’박근혜 없는 3월, 그래야 봄이다! 헌재 탄핵인용! 박근혜 구속! 황교안 퇴진! 19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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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이후에 벌어진 지난 대선의 레이스에서 살아남은 것은 이제 서울시장 박원순 정도다. 대선 근처에 가지도 않았지만, 그 어느 대선보다도 격렬하게 현실이 요동쳤다. 과연 촛불은 무엇일까? 우린 그 질문을 형식적으로만 받아들였지, 실제로 그 내용을 살펴보려고 한 적이 과연 있었을까?
 
이 모든 것은 2016년 겨울, 광화문광장에서 시작되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물대포가 소화전에서 물을 공급받지 못하는 행정적 조치를 취했다. MB 시절, 서울시장 출신인 대통령에 반대하며 촛불집회가 불탄 적이 있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 느닷없이 잔디를 새로 조성한다고 굴착기가 올라가기도 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여러 여건이 변화한 것은 사실이다. 이 모든 변화가 출발한 바로 그 현장인 광화문광장에서 우리는 시대의 질문을 했다.
 
그 질문이 다시 우리에게 던져졌다. 자, 이 광장을 어떻게 하는 게 좋지?
 
토건의 관점에서 광화문광장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오세훈의 '도로 다이어트'에서 유발된 도심 교통 재조정이다. 명분은 자전거 도로를 늘리자는 것인데, 공교롭게도 도심에서는 그런 인프라 재조정이 쉽지 않다. 그래서 기존의 도로를 줄여서 자전거 도로 하나를 뽑아내자는 것이다.

명분이 나쁜 건 아닌데, 교통 속도 지체라는 난관이 있다. 그래서 도심의 통행 속도를 줄이자, 그런 논쟁 하나가 생겨났다. 그건 또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민원도 많이 생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지하도시' 논쟁으로 넘어갔다. 아예 도로를 지하로 넣으면 될 것 아니냐?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이 광역고속철도, BTX 논쟁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GTX 통과 지점에 지하도시를 만들자, 이런 게 광화문광장 논의 초기를 둘러싼 흐름이었다.
 
자전거 도로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도심 토건사업은 반대에 부딪혀 진행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박원순 시절 '걷기좋은 도시'라는 사업을 만나면서 다시 살아났다. 아무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서울역 고가도로가 바로 이 걷기 좋은 도시라는 패러다임의 연장선이다.

자전거든, 도보든, 결국에는 이미 지을 만큼 지은 공공 인프라의 새로운 먹을거리로 건설사들의 숙원사업으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결국 도심 정체가 만성화되면 지하도시를 찬성하는 여론으로 바뀔 것이다, 이게 토건족 공무원들과 대형 건설사들의 숙원사업이 되어 버렸다.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의 결과물? 천만의 말씀
 
박원순 서울시장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국제설계공모전 당선작을 발표하고 있다. 70 대 1의 경쟁률을 뚫은?당선작?'Deep Surface(과거와 미래를 깨우다)'는 CA조경과 김영민(서울시립대 조경학과 부교수), ㈜유신, ㈜선인터라인 건축이 공동 설계했다.
▲ 박원순, 광화문광장 국제설계공모전 당선작 발표 박원순 서울시장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국제설계공모전 당선작을 발표하고 있다. 70 대 1의 경쟁률을 뚫은?당선작?"Deep Surface(과거와 미래를 깨우다)"는 CA조경과 김영민(서울시립대 조경학과 부교수), ㈜유신, ㈜선인터라인 건축이 공동 설계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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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을 새롭게 고치자, 그게 촛불집회의 결과물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 이전에도 광화문광장의 도로를 절반으로 줄이고, 좀 더 문화적으로 세련된 광장을 만들고, 차후에 지체될 차량 운행속도를 개선하기 위해서 지하도로를 축으로 하는 지하도시로 가자, 이게 얘기가 있었다. 그게 원래의 밑그림이다. 촛불광장 운운은 토건족의 명분일 뿐이다.
 
현재의 계획에서는 지하도시만 빠졌다. 그렇다고 이게 영원히 빠지는 것은 아니다. 토건족에게 시간은 많다. 다음 시장, 다다음 시장에 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일단 공사를 하는 일이다! 이게 토건을 둘러싼 진짜 논의다. 촛불집회, 촛불정신, 시민정신, 이런 건 원래의 밑그림으로 보면 그냥 장식품일 뿐이다.

일단은 1천억 원 정도로 소박하게(!) 시작하지만, 이건 도심 도로의 전면 재정비 그리고 지하도시로 패러다임을 넘길 수 있는 토건적 기회다. 마침 촛불집회라는 좋은 명분이 있으니까, 시민들의 찬성 여론을 이끌어내기도 쉽다. '너 촛불정신에 반대해?' 토건은 원래 그렇게 움직인다. 국책사업, 지역 숙원사업, 새로운 시대정신 구현, 온갖 명분을 만들어서 결국 시멘트에게 돈이 들어가게 한다.

현재의 광화문광장 조성 사업도 마찬가지다. 말은 멋지지만, 결국은 시멘트에게 돈이 들어가고, 사람들은 촛불과 촛불 정신이 아니라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기념하게 된다. 그리고 한 번 광장에 퍼부어진 시멘트는 더 많은 시멘트를 부른다. 그 시작은 소박한 천억 원이지만, 결국은 수십조 원까지 금액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다 세금이다.
 
이 시점에서 발레리 줄레조가 우리에게 소개한 '도심의 박물관화' 개념과 교남 뉴타운의 홍난파 가옥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MB가 시작한 뉴타운의 광풍 앞에서 한 때는 박원순도 보존하자는 사람이었다. 자, 지금의 촛불광장은 그 자체로 문화재적인 가치를 지닌 도심 박물관이 될 수는 없을까?
 
지금 촛불광장은 도심 박물관이 될수 없을까

지금의 광화문광장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이순신 동상은 박정희가 만들었다. 세종대왕 동상은 MB가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의 광장은 오세훈이 만들었다. 거기에서 촛불을 들고 역사를 바꾼 건 촛불시민들이다. 이 자체로 21세기 최고의 사적이고, 기념관이다. 그리고 거기에 박정희부터 그의 딸에 이르는 역사를 바꾸고 싶었던 어느 겨울 날의 한 명 한 명의 사연이 담겨 있다.

아무리 공모를 통해서 최신 유행하는 디자인으로 광장을 다시 만든다고 해도, 우리가 역사를 바꾼 그 광장과 거기 담긴 사연은 사라지는 것이다. 그냥 새로운 시멘트가 부어지는 것이다. 광화문광장을 진중권은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라고 했다. 맞다. 오세훈의 아이러니다.

우리는 바로 그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에서 역사를 만들었다. 아이러니는 스토리텔링의 중요 요소다. 아이러니와 사연이 사라진 시멘트, 촛불시민들이 촛불광장 정도 역사의 기억으로 보존하는 것도 우리의 토건세력은 허락하지 않는다. 그게 슬프지 않은가?
 
자, 어쩔까? 촛불을 지방문화재로 지정해도 되고, 아예 정부에서 국가문화재로 지정해도 된다. 시간이 지나면 이 광장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21세기의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시설이다. 새로 만든다는 광장에는 아이러니가 없고, 사연이 없고, 세계문화유산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금이라도 문화재로 지정하면 안 될까?

생각해 보자. 정권이 바뀌고 시장이 바뀌면 시청광장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었다. 광화문광장도 그렇게 될 것이다. 오세훈이 만든 것을 박원순이 바꾸었다, 역사에는 그렇게 짧게 한 줄로 기록될 것이다. 정권은 무한하지 않다. 언제 사회적 흐름이 바뀌고, '촛불 광장'이 '태극기 광장'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그럴 리가 없다고? 미래는 모른다. 무엇보다도, 토건과 건설사가 그걸 원한다. 그리고 다시 '통일광장'으로 바꾸게 될지도 모른다. 뭐라도 핑계가 생기면 토건족은 새로운 광장을 만들 것이다. 동상도 치우고, 새 동상 갖다 놓고, 광장도 다시 만들고, 이런 토건적 행사를 앞으로도 계속해야 하는가?
 
광화문광장을 유신의 것, MB의 것, 오세훈의 것, 있는 그대로 보존하면 그게 박원순의 가치가 된다. 그게 문화적 공존이고, 미래적 통합이다. 그리고 그게 촛불의 시대정신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미 공모도 하지 않았느냐고? 물론 돈은 들었다. 그게 아깝다고 천억 원을 새로 쓰는 건 좀 이상하다. 그리고 그렇게 공사의 문을 열면, 지하도시까지 수조 원, 아니 수십조 원이 더 들어간다. 차라리 광장에 쓸 돈 천억 원을 서울시 촛불재단을 만들고, 문화사업과 보존사업, 그리고 시민활동에 쓰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새로운 공사예산 천억 원쯤 기대하는 건설사를 제외하면, 그게 우리 모두에게 유익한 제안일 수 있을 것다. 촛불광장 공사장에서 기념 테이프 커팅을 하는 박원순과 지방문화재로 광화문광장을 지정하는 박원순의 모습, 두 가지 중에서 뭐가 더 문화적이고, 뭐가 더 미래적인가? 아직 공사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숙고하고 선택할 시간은 아직도 충분하다.

아이러니를 아이러니대로 보존하는 것, 그것이 진짜로 촛불이 승리하는 길 아닌가? 이겼다고 상대편에 속한 것을 싹 밀어버리고, 자기 보고 싶은 대로 새 것을 만드는 것, 이건 과거적 방식이고, 토건적 방식이다. 진보, 보수, 누가 이겨도, 결국 건설업자만 돈 번다.

나는 지금 상태로의 광화문광장이 세계문화유산이 되는 것, 그게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진짜로 촛불이 이기는 길이다. 촛불의 정신은 포용과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 광화문광장의 활용 방안, 문화재 지정을 또 하나의 선택지로 추가하면 좋겠다.

태그:#우석훈, #광화문 광장, #박원순,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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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문제, 환경-자원 문제에 대한 전문가. 경제학 전공. 기후변화협약 UNFCCC 기술이전 전문가그룹 아시아지역 대표 이사 현대환경연구원 연구위원, 에너지관리공단 팀장 역임 한국생태경제연구회 창립회원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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