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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TV는 1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광명성절)을 맞아 노동당 양대 핵심 조직인 조직지도부·선전선동부 간부들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보도했다. 사진 왼쪽부터 리만건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최룡해 당 부위원장 겸 조직지도부장, 김 위원장, 리영식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조선중앙TV는 1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광명성절)을 맞아 노동당 양대 핵심 조직인 조직지도부·선전선동부 간부들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보도했다. 사진 왼쪽부터 리만건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최룡해 당 부위원장 겸 조직지도부장, 김 위원장, 리영식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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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은 지난 2011년 사망한 김정일의 생일로, 북한에선 광명성절이라고 부른다. 광명성절은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과 함께 북한에서 가장 큰 명절이다. 본래 명칭은 2월절이었으나 김정일이 사망한 다음해인 2012년부터 광명성절(光明星節)로 개칭됐다. 

북한 매체에 따르면, 광명성절이 되면 태양절과 마찬가지로 여러 전시회와 체육대회, 예술 공연, 주체사상 연구토론회, 김정일화축전, 요리기술축전, 얼음조각축전, 불꽃놀이, 청년동맹의 양강도 삼지연군 백두밀영 답사 등 각종 기념행사를 열며 추모 분위기를 띄운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광명성절을 맞이해 16일 0시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김정일 위원장에게 경의를 표했다"고 16일자 1면에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집권 이듬해인 2013년부터 올해까지 매해 아버지의 생일을 맞아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게릴라 야영지에서 태어나 지도자가 된 김정일

북한에서 김정일은 1942년 2월 16일에 태어난 것으로 돼 있다. 김정일은 1942년 2~3월께 보로실로프(현재의 우수리스크) 근처 게릴라 야영지에서 태어났다. 1940년 10월 동북항일연군 내 김일성 부대가 소련 영내로 숨어 들어간 뒤였다. 김일성은 항일유격대의 여성 대원이었던 김정숙과의 성혼을 소련 영토로 들어가기 직전에 선언했다. 

현재 북한은 김정일이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고 선전하고 있으나 이것이 사실이 아님은 널리 알려져 있다. 1942년 4월 18일에 작성된 야영 대원 명부에서 김정숙의 이름이 발견된 바 있다. 또 김일성 부대가 백두산 남측 중국 영내에 밀영을 설치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한반도 영내에 밀영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1941년 4월 정찰을 나갔던 김일성이 3개월 뒤인 7월 초 귀대했고, 김정숙이 이후에 임신했다면, 김정일이 출생한 때는 1942년 3월께라고 풀이된다. 

김정일은 해방 뒤 먼저 귀국해 있던 아버지를 따라 어머니와 유격대 동료들 손에 이끌려 1945년 말 귀국했다. 어머니 김정숙은 김정일과 4세 아래 동생 김경희를 남기고 1949년 사망했다.

6.25 전쟁이 시작되자 여덟 살의 김정일은 중국령으로 피난했다. 그곳에서 불안한 날들을 보내다가, 전쟁 중인 1952년 귀국해 독립운동가 자녀들을 위해 설립된 만경대혁명학원에 입학했다.

이곳은 1년만 다녔고 이후 일반 초급·고급 중학교로 옮겼다. 아마도 쟁쟁한 혁명가 자녀들 사이에서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는 김일성 우상화 작업이 한창이긴 했지만, 아들인 김정일은 당·정·군의 수많은 간부 자녀들 중 한 명이었고, 후계자로 지목받을 만한 여건도 조성되지 않은 때였다.  

김정일은 동생인 김경희처럼 소련 유학을 다녀오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 국내에서 공부하겠다고 고집해서 1960년에 김일성종합대에 입학해 1964년에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 졸업 후 김정일은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에 들어가 당시 부장이던 숙부 김영주 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965년엔 아버지를 수행해 인도네시아를 방문하기도 했다. 1966년엔 조직지도부의 중앙지도과 책임지도원으로 승진했다. 1968년엔 '보천보 전적지' 정비를 지도했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이 '대장정'을 해마다 기념하듯이 북한도 1937년에 있었던 보천보 전투를 해마다 기념하며 김일성 유격대 신화의 일부로 크게 다룬다. 

1969년엔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돼 영화 <피바다> 제작을 주도했다. 김정일은 영화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영화 제작 분야에서 활동이 두드러졌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북한 현대사>(2014, 창비)에서 "유격대 국가는 극장 국가로서 설계사, 연출가를 필요로 했다"며 "그 역할을 담당한 것이 수령의 아들 김정일이었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유일사상체계와 주체사상이 강조되고 유격대 국가가 성립해가는 과정에서 김정일은 당기구에서 두각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유격대 국가란 수령인 김일성을 유격대 사령관으로 하고 전 인민을 유격대원화하는 체제다. 1974년에 나온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라는 구호가 유명하다. 극장 국가란 물리적 강제보다 과시의 정치(화려한 의례와 공연)로 통치되는 국가를 통칭한다.

1980년 대 초 귀순한 신경완(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출신, 1998년 사망)의 진술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가 일부에서 김일성의 후계자로 지목됐지만, 그는 원래 유격대에서 함께 싸운 사람도 아니었고 병치레도 잦았다고 한다. 빨치산파 고참 간부들에겐 모스크바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것이 전부인 동생보다는 유격대 야영지에서 태어난 아들이 후계자로 더 적합해 보였다. 게다가 김정일은 수완이 좋다는 평가마저 돌았다. 

"위험한 인물" 혹은 "다재다능한 인물", 그에 대한 두 가지 평가

1970년에 열린 제5회 당대회를 준비할 때 김정일을 당중앙위 후보위원 정도의 자리엔 앉혀야 한다는 강력한 의견이 존재했었지만 김일성이 나서서 시기상조라며 무마시켰다고 알려졌다. 1971년이 되자, 김영주는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본인 대신 사상조직 문제를 담당하는 당비서로 김정일을 추천했다. 그러나 이때에도 김일성은 아직 이르다며 반대했다. 다음해인 1972년은 김일성이 환갑을 맞은 해다. 후계자를 생각해둬야 한다는 의견이 본격적으로 나왔다. 

같은 해에 김정일은 영화 <꽃 파는 처녀>의 제작을 지도하고, 김일성의 환갑을 기념한 조선혁명박물관 건립과 그 앞의 광장에 거대한 김일성 동상을 세우는 작업을 주도했다. 다음해 김영주가 직책을 수행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자 9월에 김정일은 조직선전 담당 당비서가 돼 조직지도부장과 선전선동부장을 겸직했다. 김정일은 이후 사망 때까지 조직지도부장을 겸직했다. 

1974년 2월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오진우의 제안으로 김정일은 당 정치위원에 선출됐다. 사실상의 후계자로 정식 승인된 순간이었다. 이후 김정일은 '당중앙'이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1980년 10월 열린 조선로동당 제6회 대회는 김정일이 정식으로 데뷔한 자리였다. 그는 이 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됐다. 대회 직후 중앙위 회의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정치국 위원 및 비서, 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됐다. 김일성에 버금가는 지위가 부여됐으며, 호칭도 당중앙에서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로 바뀌었다.    

김정일은 1994년 김일성 사망 때까지 당을 완전히 장악했고, 그 권력은 말년의 김일성조차도 두려워할 만큼 확고한 기반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은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69세였다. 다음해 4월 열린 제4차 당대표자회의에서 김정일은 영원한 총비서,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연달아 추대됐다. 김정은은 당 제1비서, 정치국 상무위원,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됐다. 

황장엽은 김정일을 "위험한 인물" 혹은 "통치능력이 떨어지는 지도자"라고 봤다. 반면 신경완은 <곁에서 본 김정일>(2000, 김영사)에서 "주민들에게 직접 환갑상, 생일상을 차려주고, 격려편지도 곧잘 보낸다"면서 "함부로 사람을 버리지 않아 잘못을 했을 때는 가차없이 벌을 내리지만 반면에 충분한 반성의 기미가 보일 때는 다시 불러들이고 과거를 묻지 않는다, 머리가 비상하고 탁월하며 논리정연하고 치밀한 성격이다, 업무에 대한 열정과 집중력이 대단하고 다재다능한 인물"이라고 후하게 평가했다.

태그:#김정일, #광명성절, #신경완, #황장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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