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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자(인터뷰어: 김주영 책임연구원)는 농촌진흥청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코피아: KOPIA, Korea Program on International Agriculture) 소속이다. 본인을 포함한 코피아 연구원ㆍ연수생은 볼리비아 현지 연구원들과 공동연구를 수행하며 국제농업교류의 한가운데 서있다.

197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농업경제학자 시어도어 슐츠 박사(Dr. Theodore Schultz)는 인간의 지식, 기술, 창의력, 태도를 높이 사며 인적자본(human capital)에 대한 투자가 개도국 경제발전과 빈곤문제 해결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농촌진흥청은 코피아 사업을 통해 개도국 지속가능성 담보를 위한 인재양성에 매진해왔고 이 과정에서 농업 미래를 선도할 일꾼이 양성된다.
 
씨감자 분무경재배 온실에서: (좌측 순) 저자, 디에고, 아비마엘, 김종혁
 씨감자 분무경재배 온실에서: (좌측 순) 저자, 디에고, 아비마엘, 김종혁
ⓒ 김대웅(농촌진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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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볼리비아 농업ㆍ환경의 미래를 책임질 20대 청년들

아비마엘(Ing. Agr. Abimael Baron Ruiz, 아래 '아비'로 명명)은 코피아 센터 현지 직원 중 가장 오랜 근무 경력을 지녔다. 학사 논문을 위해 코피아와 연을 맺은 이래 그 성실함과 능력을 인정받아 채용됐다. 2017년엔 한국 초청 연수도 다녀왔다. 명실상부 볼리비아가 낳고 한국이 양성한 글로벌 농업 인재다.

또한 최근 볼리비아에서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김종혁 연수생(국립 경상대학교 농학과 졸업 예정자)은 그간 노고를 인정받아 2018년 하반기 파견 연수생 중 '우수연수생'으로 선발됐다. 자타공인 한국 농업에 이바지할 전도유망한 청년이다.

이 20대 청년들은 코피아 볼리비아 센터의 활력소다. 둘의 장점은 묘하게 겹친다. 출근시간에 늦는 바가 없다. 담당 작물 관리를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응당 지켜야하는 직장 윤리지만 준수하기 쉽지 않음을 알기에 두 20대 청년에 놀랄 따름이다.

동료를 배려하는 마음도 크다. 남의 일도 본인 것 마냥 부지런하다. 행사 후 방치된 식기류가 말끔히 정리됐다면 십중팔구 이들이 수고한 것이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전우익 지음, 현암사)의 고집쟁이 농사꾼 어르신이 젊은 시절에 이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지난 1~2월에 걸쳐 두 청년과 이야기를 나눴다. 일하는 틈틈이 질문을 던졌고, 더 궁금한 점은 서면으로 추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 요새 청년귀농 등 농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김 연수생은 어떤 계기로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
김종혁 : "경남 창녕군 길곡면 마천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이곳 경작지는 겨울의 동장군을 몰아낸 봄이 오면 짙푸른 녹음으로 뒤덮입니다. 여름의 풍성한 경작지와 가을바람에 출렁이는 황금물결을 감상하며 양파와 마늘을 음미할 수 있는 풍요로운 마을이지요. 어릴 적부터 산과 논밭에서 뛰놀고 마을일(농사)을 도왔기에 농업은 제 일상이었습니다. 경상대학교 농학과(현 농업식물과학과)로 진학한 것도 정해진 운명이었죠.

그 후 자교 창업동아리인 '아마란스(amaranth)*' 활동을 통해 농업에 더욱 매료됐었습니다. 당시 와송(瓦松)을 주제로 집에서도 쉽게 키울 수 있는 화분을 제작해보고 와송 식용가루로도 생산했어요. 그 외, 옥수수, 인삼을 직접 재배하고 교내에서 판매했습니다. 이 때 작물을 잘 키우는 것 못지않게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판매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죠."

(*아마란스: 고대 그리스어로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이란 뜻으로, 각종 영양소가 풍부한 슈퍼 곡물 중 하나.)
 
국립 경상대학교 교내 동아리 ‘아마란스’ (김종혁 코피아 연수생 등)
 국립 경상대학교 교내 동아리 ‘아마란스’ (김종혁 코피아 연수생 등)
ⓒ 김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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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비 연구원도 농가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레 농업의 길로 들어왔다. 한국 농진청 코피아를 알게 된 경위는?
아비 : "산시몬대학교* 졸업을 위해 논문 주제를 고심 중이었어요. 이때만 해도 농업관련 한국인들이 볼리비아에 체류하며 우리 정부(농림혁신청, INIAF)와 협력 중인지 몰랐어요. 그러다 2012년 12월 말, 한인교회(Iglesia Feliz) 목사님을 통해 한국산 순무(turnipㆍnabo)를 봤는데 볼리비아산보다 훨씬 크더라고요. 어디서 이 큰 작물이 왔는지 호기심이 발동했죠. 그렇게 한인 목사님 안내로 교회 인근의 한국 농업연구소(코피아)를 알게 됐고, 한국 농작물 재배법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산시몬대학교(Universidad Mayor de San Simon)는 볼리비아 코차밤바주 국립대학교로 농업전공이 특히 유명하다. 코피아 볼리비아 센터와는 볼리비아 재래 감자종 복원연구 및 졸업예정자 교육연수 파견 등 학-연 관계를 맺고 있다.)

- 김 연수생의 코피아 지원 계기는?
김종혁 : "경상대학교 'GPP(Global Pioneer Program) 대학생 해외탐방 프로그램'을 통해 첫 해외경험을 쌓았어요. 대부분 미국ㆍ유럽 선진 기술 탐방을 떠났지만 제 팀은 필리핀 국제 미작연구소(IRRI)와 산미구엘 맥주공장, 농림부를 방문했어요. 이때 한국-개도국 간 농업 협업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그러다 2018년 하반기 코피아 연수생 공고를 봤는데 학점이수 혜택도 있고 연수비도 제공하기에 마지막 학기를 개도국 현장에서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 학부시절 풍부한 경험이 바탕이 된 것 같다. 코피아 생활 중 힘든 점은?
아비 : "코피아 연구과제를 갖고 논문을 작성해야 했어요. 당시 제 과제는 '수경재배를 통한 씨감자 기본종 생산'으로 볼리비아에 부재한 재배법이었어요. 개인적으로 큰 도전이었습니다. 당시 Arturo Baudoin 선임연구원과 함께 연구를 시작했는데 첫 수경재배(2013년 7월)는 실패했어요.

원인은 다양한데 일단 온실이 너무 어두웠고(plástico oscuro) 영양 결핍 현상도 두드러졌죠. 줄기가 성장하지 못했고 뿌리는 하얗게 변색됐었습니다. 당연히 감자 괴경은 형성조차 안됐어요. 수경재배 지식이 부족해 발생한 대참사였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도와 농사지으면서 이렇게 망친 적이 없었기에 상심이 컸습니다.
 
거듭된 수경재배의 연구실패
 거듭된 수경재배의 연구실패
ⓒ Abimael(K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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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는 더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소장님 임기 종료(교체) 해에다 설상가상으로 Arturo 선임연구원이 계약 만료가 됐거든요. 그 후 센터에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테크니션 디에고(Diego)'가 새로 고용되어 한국산 채소작물 재배 과제를 맡으면서 이 과제를 보조한다고 제 연구는 우선순위에서 점차 밀렸습니다.

그러다 제 학교 선배인 '행정원 리차드(Richard, 농업석사)'가 고용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그의 지원으로 씨감자 수경재배를 재개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쓰디 쓴 실패를 맛봤습니다. 뿌리가 부실했고 잎이 발달하지 않았어요. 외부기관에서 시험관 배양된(In Vitro) 씨감자 종자를 받았는데 관리 방법을 잘 몰랐던 탓이죠. 대부분 수분결핍으로 죽었습니다."
 
- 볼리비아 전역에서 한국 농업기술을 알기 위해 농업인, 학생, 지자체 관료 등이 방문한다. 늘 전문가 포스를 보이며 수경재배를 소개하는 아비 연구원에게 암울한 과거가 있다곤 상상조차 못했다.

아비 : "당시 연속된 실패로 자괴감에 빠졌어요. 수경재배방식은 씨감자 대량증식에 적합하지 않다고 분노했죠. 연구결과가 없으니 논문을 못 썼고 졸업은 연기됐어요. 그렇게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기존 방식을 싹 바꿨습니다. 자료를 뒤져가며 수경재배 영양액 구성 성분을 바꿨어요. 산(acid)을 넣어 pH를 조절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했어요.

2014년 12월 마침내 처음으로 감자 뿌리와 줄기가 정상적으로 형성됐고 괴경이 주렁주렁 맺혔었습니다. 전통방식인 상토재배보다 수경재배는 무려 5~10배 생산량을 가집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감자 품종을 갖고 실험해 왔습니다. 무엇보다 코피아 수경재배 연구에서 인내와 끈기를 기른 것이 가장 큰 자산입니다."
 
농과대 학생들에게 씨감자 재배를 설명하는 아비마엘 연구원
 농과대 학생들에게 씨감자 재배를 설명하는 아비마엘 연구원
ⓒ 김주영(코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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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연구 시작 후 2018년에 학위를 받았으니 총 5년이 걸린 셈인데 코피아에서 결실을 맺어 다행이다. 6개월 연수를 무사히 마친 김 연수생이 어려웠던 점은?
김종혁 : "코피아를 그저 '해외에서 농사짓는 곳'이라 단순히 생각했던터라 볼리비아에 도착하자마자 혼란을 겪었습니다.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았어요. 생필품 구입에도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아비 연구원을 비롯한 현지인들 간 소통도 불가능했고요. 하지만 소장님 및 한국 연구원 선배들 도움과 자체 어학강사료 지원 제도를 통해 언어장벽을 극복해나갔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 농사 짬밥을 활용해 현지인들과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됐죠."

- 업무하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점은?
김종혁 : "먼 이국땅에서 씨감자 수경재배기술과 한국산 채소가 재배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우리 기술이 개도국에 전파되어 생산성 증대에 기여함을 보니 뿌듯했어요. 특히 저희 센터 근처인 빈또 시(Ciudad de Vinto) 농가들과 상추를 공동 재배하고 수경 재배 씨감자를 지역 소농에 보급했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gracias(고맙습니다)란 말을 들을 때 뿌듯했습니다. 이런 협업과 지원이 계속 축적되면 농가소득 증대에 도움 되고 나아가 볼리비아 삶의 질이 향상되리라 믿습니다."

- 두 사람에게 농촌진흥청 코피아는 어떤 존재인가?
아비 : "코피아 전ㆍ현직 소장님들은 제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물자와 인력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한국 속담으로 늘 배려하고 격려해주셨습니다. 또한 제 연구를 도와준 Ing. Arturo Baudoin와 Ing. Richard Delgadillo 두 연구원도 코피아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입니다. 농촌진흥청 초청으로 한국의 농업도 볼 수 있었죠. 게다가 코피아는 제 스승인 산시몬대학교 Gino Aguirre 교수님과 재래종 씨감자 복원 사업 등 협업을 진행 중입니다. 코피아는 제 삶과 같습니다."

김종혁 : "이곳 생활을 통해 제 자신을 돌아보고 향후 진로에 대해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농업전문가인 권순종 소장님과 다양한 경험을 지닌 선배 연구원들 덕에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됐습니다. 소중한 경험과 인연을 선사한 코피아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자 묘종을 세척 중인 아비마엘 연구원과 김종혁 연수생
 감자 묘종을 세척 중인 아비마엘 연구원과 김종혁 연수생
ⓒ 김주영(코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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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 모두 멘트가 오글거린다. (웃음) 두 사람 향후 계획은?
아비 : "수경재배 씨감자 생산체계가 괘도에 올랐다고 안심할 정도로 농업은 만만치 않습니다. 아직까지 특정 품종의 형태학적 발달단계 분석, 기후변화로 달라진 환경에서의 작물ㆍ병해충 바이러스 관리 등 연구 분야가 산더미입니다. 최근엔 상토층 높이ㆍ두께 차이에 따른 씨감자 상태 비교 연구와 감자 재래종 복원사업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종혁 : "아비 연구원을 보면 '근성과 열정'이란 단어가 떠오릅니다. 항상 부지런하게 연구하고 교육 자료도 제작하더라고요. 아비 연구원이 없다면 코피아의 수경재배기술 교육과 지역농가 씨감자 보급이 쉽지 않을 겁니다. 저는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하여 농업ㆍ환경 분야를 보다 깊이 공부하여 사회에 보탬이 되겠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는 아프리카ㆍ남미 속담처럼 인재 양성에는 수많은 노력과 인내가 수반된다. 코피아 사업은 양국의 농업ㆍ환경 분야에 활약할 두 청년의 여정 중 한 구간을 함께하며 물심양면 지원했다. 국제원조 수원국에서 수혜국으로 변모한 한국 정부는 글로벌 농업의 지속가능성 담보에 유의미한 기여를 할 것이다.

아비 연구원의 말마따나 코피아가 보인 인내와 배려는 개도국 협력사업의 미덕이다. 현장에서 조급해하지 말고 poco a poco (조금씩) 해나간다면 한 아이의 성장으로 마을이 풍요로워지는 광경도 곧 목도하리라 믿는다.
 
농촌진흥청 코피아 볼리비아센터 : 권순종 소장(가운데) 등
 농촌진흥청 코피아 볼리비아센터 : 권순종 소장(가운데) 등
ⓒ 김대웅(농촌진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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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기사: 농촌진흥청 코피아 볼리비아센터 이야기]
 1) 안데스 산맥의 정기를 받은 토착민과 동고동락하는 사연  http://omn.kr/u2ex
 2) 볼리비아의 참 '세련된' 기후변화 대응법   http://omn.kr/1c57u 
 3) [번외편] 남미 최초 원주민 출신 볼리비아 대통령 이야기 http://omn.kr/1acql

태그:#농촌진흥청, #볼리비아, #코피아, #농진청, #경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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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프리랜서 기자/에세이스트 前) 유엔 FAO 조지아사무소 / 농촌진흥청 KOPIA 볼리비아 / 환경재단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 유엔 사막화방지협약 태국 / (졸)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 (졸)경상국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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