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닿다

진심이 닿다 ⓒ tvn

 
채널을 돌리다 '어라?' 했다, <도깨비>를 재방송해주나? 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꽤 돼지 않을까? tvN 새 수목드라마 <진심이 닿다> 이야기다. <도깨비>에서 불멸의 비극적 사랑으로 인기를 끌었던 '저승사자' 이동욱과 '써니' 유인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십중팔구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도깨비>의 저승이와 써니의 애절했던 사랑에 마음이 빼았겼던 사람들이 그 저승이와 써니가 출연한다 해서 <진심이 닿다>에 채널을 고정했을 수도 있다.

시청률이 생명인 드라마는 굳이 그런 관심을 피하지 않는다. 아니 심지어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진심이 닿다> 속 이동욱이 분한 권정록은 변호사지만, 색깔만 달라졌을 뿐 <도깨비> 속 예의 그 롱코트를 '착장'했다. 무표정으로 일관했던 했던 저승이의 표정도 그대로다.

유인나라고 다를까? 한때는 정치적 제물이 되어 목숨을 잃은 황후였지만, 현세의 써니가 자신의 무기로 삼았던 그 '철없음'은 <진심이 닿다> 속 한류 스타 오윤서의 성격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굳이 다름을 강조하기보단, 같아서 보게 만들고 싶다는 '목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진심이 닿다>. 그래서 더 이 드라마의 진심이 의심스럽다. 

<진심이 닿다> 그리고 <도깨비>와 <김비서가 왜 그럴까>   
 도깨비

도깨비 ⓒ tvn

사랑하는 여인을 저승으로 데리고 가야만 했던 비극적 사랑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이들의 해피엔딩을 빌었다. 그래서 드라마의 마지막에 여배우와 강력계 형사로 환생한 이들에게 환호를 보냈다. 그래서일까? 일반적으로 한 번 같이 호흡을 맞춘 두 남녀 배우가 다시 만나기 힘든 드라마계에서 이동욱과 유인나의 두 번째 만남에 적지 않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마가 노골적으로 환생이라도 한 듯 이전 드라마의 캐릭터를 '오마주'한 듯했지만, 거기까지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런데 막상 드라마를 보다보니 <도깨비>말고 떠오르는 또 다른 작품이 있었다. 바로 2018년 tvN 화제작이었던 <김비서가 왜 그럴까>다. 물론 두 작품의 배경은 다르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부회장과 비서가 주인공이고 <진심이 닿다> 주인공의 직업은 변호사와 비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웹툰을 원작으로 한 터라, 특별한 서사보다는 두 남녀 배우의 이른바 '케미'에 전적으로 의존한 작품이라는 점과 '츤데레' 남자 주인공에, 발랄하고 자기 주도적인 여주인공의 조화라는 점, 두 주인공과 호흡할 다채로운 캐릭터의 주변 조연 캐릭터가 등장하며 시트콤에 가까운 설정으로 극을 채워간다는 점에서 <진심이 닿다>는 어쩔 수 없이 <김비서가 왜 그럴까>(아래 김비서)를 떠올리게 했다.

<김비서>가 박서준과 박민영의 놀라운 케미로 시청률 8%를 넘어서며 지난해 tvN의 효자로 등극했듯, <진심이 닿다>는 이미 <도깨비>를 통해 화제성이 입증된 두 주인공 이동욱과 유인나를 캐스팅 해 과거의 영광을 다시 한 번 재연하고자 한다. 

그런데, '남귤북지(남쪽의 귤을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라고 <진심이 닿다>로 온 <도깨비>의 저승이와 써니는 아직까지는 전작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아니 외려, 두 배우의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들의 아쉬움이 흘러나오고 있다. 

<도깨비> 속 써니는 '철없음'을 혈혈단신 천애고아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무기로 장착해 공감을 얻었지만, <진심이 닿다> 속 오윤서는 본의 아닌 사건에 연루되어 숙고의 기간을 가진 한류 스타임에도 '그냥' 철이 없다. 

나름 드라마는 한류 스타 오윤서를 설명하는 장면으로 각종 광고의 오윤서 버전을 빈번하게 삽입하는데, 그 자체가 보는 시청자들로부터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게 한다. 아니 그것조차도 오윤서의 애교라고 넘어간다고 해도, 드라마 2회 마지막 부분에까지 오윤서의 원맨쇼와 그를 둘러싼 해프닝으로 장식하는 건 조금 너무했다.

상투적인, 너무도 상투적인 장면들
 
 김비서가 왜 그럴까

김비서가 왜 그럴까 ⓒ tvn


'츤데레' 남주와 '철없는' 여주의 만남, 그리고 그를 둘러싼 시트콤과 같은 배경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드라마는 2회 중반에 이르기까지 두 주인공의 '진심'을 제대로 드러내 주지 않는다. 여주인공의 철없음을 넘어 거의 코미디에 가까운 오글거리는 설정들을 참고 참아 2회 중반 쯤에 이르러서야 그녀의 철없음이 써니의 철없음처럼 거친 연예계 생활을 버텨낸 나름의 무기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후 다짜고짜 냉랭함을 넘어 싸가지 없기까지 했던 남자 주인공은 갑자기 태세를 전환하여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진심이 닿다>를 보며 고민에 빠진 이유는 익숙한 남녀 주인공 때문만은 아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은 주는 '상투성'이 가장 아쉬웠다. 알고 보면 마음은 따뜻한 츤데레 남자 주인공, 철없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씩씩한 캔디형 여자 주인공에, 남자의 첫사랑은 똑똑하고 당찬 걸크러시 여자 검사이다. 여검사 유여름을 설명하는 첫 장면은 특히 그랬다. 검사 회의에 참석한 한 남자 검사는 살인 사건에 휘말린 피해자 여성을 놓고 성 편견에 사로잡힌 예단을 하고, 정의로운 여검사는 그런 남검사에게 이의를 제기한다. 아무래도 이 장면은 이제 여검사가 나오는 드라마의 '클리셰'가 된 듯하다.

거기다 주요 캐릭터들 또한 어디서 본 듯한 인물에 성격이다. 오윤서의 소속사 대표는 입으로는 오윤서에 대한 정을 읊어대지만 정작 손해는 절대 감수하지 않는 이해타산적인 인물이요, 그런 소속사 대표의 부탁으로 오윤서를 위장 취업시켜준 로펌 대표는 알고보니 오윤서의 열렬한 팬으로 불철주야 오윤서를 향한 '덕심'에 불타오른다.

여자만 보면 매력을 흘리지만 알고보면 마마보인 이혼 전문 변호사에, 극소심한 듯하지만 속내를 숨길 수 없는 변호사, 그리고 '능력자' 터줏대감 비서와 그를 흠모하는 깡패같은 사무장까지. 이준혁, 오정세, 심형탁, 장소연, 박경혜, 박지환 등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로 커버되지만 그들의 캐릭터는 이젠 너무 익숙한 것들이다. 그렇다보니, 이들과 오윤서가 벌이는 해프닝들이 극의 활기를 불어넣어주기 보단, 식상함만 가중시킨다.

지난해 방송된 <김비서>는 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어 인기를 얻었지만, 서사가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런데 그런 비판을 고려하지 않고 인기 있는 콘셉트를 무분별하게 복제한다면, 시청자들의 외면만을 받을 뿐이다. 

케이블, 종편의 가세로 드라마 제작 편수의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2014년 <미생> 이래 웹툰은 드라마의 가장 훌륭한 콘텐츠 제공처가 되어왔다. 하지만 차별성이 없는 비슷비슷한 '로코' 버전 웹툰의 반복적 드라마화는 결국 <계룡선녀전>,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등의 부진을 만들어낼 뿐이다.

<진심이 닿다> 역시 그런 관성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진심이 닿다>만의 문제가 아니라, 늘어나는 드라마와 그를 따르지 못하는 제작 퀄리티 혹은 관습적인 제작 방식 등의 문제로, 드라마계 전체가 숙고해봐야 할 문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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