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채널인 tvN에도 다큐 프로그램이 있다? 아니, 이제는 "있었다"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높은 완성도와 신선한 기획을 통해 지상파 드라마들을 제치고 '드라마 왕좌' 자리를 자치한 tvN답게, 이들이 만든 다큐 또한 뭔가 달랐다.

tvN은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미세먼지와 Z세대 등 현대인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는 주제에 대해 관점의 전환이 필요함을 이야기하는 다큐 <시프트>를 방영했다.

<시프트>는 단순한 다큐를 넘어 정시아와 김원준, 대도서관을 출연시키는 등 대중적 접근성까지 높였다. 이 신선한 시도는 안타깝게도 7부작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프로그램은 사라졌지만 <시프트>가 당시 제안한 '인식의 전환'은 여전히 남아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시프트-호모더스트 쿠스

시프트-호모더스트 쿠스 ⓒ tvn


<시프트>의 막을 연 건 '미세먼지'다. '호모더스트쿠스', 매일 아침 오늘의 날씨보다 오늘의 미세먼지를 먼저 챙기는 세대, 마스크와 공기청정기가 필수가 된 슬픈 족속. 미세먼지가 압도하는 세상에서 건강한 삶을 꿈꾸는 오늘의 한국인들, 그들이 <시프트>의 첫 주인공이다. 

미세먼지가 걱정될 때마다 공기청정기를 한 대씩 사들이다 보니 어느새 집에 공기청정기만 7대가 되었다는 이 시대 대표적 '호모더스트쿠스' 정시아. 하지만 그녀만이 아니다. 정부를 향해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하는 네이버 카페 회원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중국, 그리고 미세먼지 
 
 시프트-호모더스트 쿠스

시프트-호모더스트 쿠스 ⓒ tvn


기상청에서 알려주는 미세먼지 수치를 믿지 못해 '어스널스쿨' 등의 사이트에 올라온 미세먼지 예보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셀프 예보족'도 등장했다. 카페에 셀프 예보가 올라오자마자 순식간에 조회 수가 2000이 넘는다. 심지어 어디에나 미세먼지 측정기를 가지고 다니고, 집 안 미세먼지 수치가 0이 안 되면 두려워 하는 '미세먼지 불안장애'를 가진 이들까지 등장했다. 

이렇게 '미세먼지'에 대해 걱정을 지나 과민, 공포 등을 느끼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물었다. 독일처럼 미세먼지의 일부 원인이 되는 자동차에 세금을 많이 매기면 어떻겠냐, 파리처럼 자동차가 도심에 진입할 수 없도록 통행료를 높이면 어떻겠냐고 말이다.

그러자 사람들이 반문한다. "중국이 저렇게 미세먼지를 쏟아붓는데, 자동차 좀 줄인다고 미세먼지가 나아질 것 같냐"고, 과연 그럴까?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오는 한 우리나라의 하늘은 깨끗해질 수 없는 것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호모더스크쿠스'의 대표 정시아가 나섰다. 

중국이 우리나라와 근접한 동부연안에 소각장을 확대 설치할 예정이고 공장들까지 우리와 가까운 산둥 반도로 이전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안 그래도 중국으로부터 오는 미세먼지로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인데, 중국이 이런 정책을 시행한다니 '분노'가 끓어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시프트>에서 확인한 결과 산둥반도 공장 대거 이전 설은 실체가 없었다. 또 중국이 소각장을 더 짓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우리나라와 가까운 동부 연안에만 짓는 건 아니란다. 

앞서 관련 자료를 냈던 아주대 김순태 교수조차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발 미세먼지의 직접 영향을 받는 백령도의 미세먼지가 2013년 이후 계속 감소 추세고, 위성자료에서도 중국 영향이 줄어드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더구나 중국 내에서 미세먼지로 문제가 되었던 공장들은 많이 없어졌고, 엄격한 배출 장치 규제로 중국의 대기질 또한 한결 좋았졌다고 한다.
 
노란 미세먼지 위성 사진의 정체 
 
 시프트- 호모더스트쿠스

시프트- 호모더스트쿠스 ⓒ tvn


그렇다면, 결국 우리를 분노케했던 실체는 없었던 것인가? 아니 우리나라의 공기 질은 갈수록 더 심각해지는 것 같은데, 중국의 공기질은 좋아지고 있다니... 그렇다면 종종 그 중국에서 대거 이동해 오는 저 노란 미세먼지 위성 사진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른바 '옐로우 한반도'라 불리며 중국발 미세먼지인 듯 보이는 이 사진의 정체는 뭘까? 이에 대해 연세대 지구환경 연구소 김준 교수는 "미세먼지라기보다는 해상 안개"라고 정의한다. 해상에서 피어오르는 안개를 위성에서 찍으면 이렇게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그 안개에 미세먼지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그 미세먼지에는 중국에서 온 것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서해안 제철소나 발전소에서 뿜어져 나온 것도 포함돼 있기에, 정확하게 몇 %가 해외에서 왔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는 알고 싶다. 도대체 중국이 우리 공기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말이다. 그래서 한국과 미국은 대기질을 공동연구에 돌입했다(korus-aq). 2016년 5월부터 6주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의 대기질에 영향을 미치는 건 국내적 요인이 52%, 중국이 34%, 북한이 9%에 이른다. 이 40일의 조사 기간 동안 38일이 기준치를 넘겼고, 그 중 24일이 '나쁨'이었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고정관념과 달리, 중국의 영향을 받은 건 단 3일에 불과했다고 연구 결과는 말한다. 

30년간 이어진 유럽의 산성비 논쟁
 
 시프트-호모더스트 쿠스

시프트-호모더스트 쿠스 ⓒ tvn

  
 시프트-호모더스트 쿠스

시프트-호모더스트 쿠스 ⓒ tvn


그런데 중국과 가까운 곳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일본, 그 중에서도 큐슈는 중국과 밀접해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큐슈 하늘의 미세먼지는 60%가 중국 탓이다. 하지만 중국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영향도 10%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큐슈 사람들 반응은 우리와 좀 달랐다. 같은 하늘을 이고 있는데 어떻게 하겠냐는 반응이다. 분노하고 항의를 해야한다기보다는, 공기 문제를 공동의 문제로 삼아 환경 개선에 대한 기술 지원이라든가 기술 협력 등으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본의 다른 접근은 그저 '국민 정서'의 문제라고 볼 수 없다. 일찍이 50년 전부터 미세먼지에 대해 연구하고 대책을 마련해온 '내력'의 차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앞서 산업화와 함께 도쿄의 심각한 공해를 이미 경험한 적 있는 일본은 미세먼지 인벤토리를 통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에 따라 노후 경유차 운행 금지 등 그에 맞는 정책을 실시해 왔다. 그렇기에 똑같이 미세먼지의 역습을 당하고도 큐슈와 우리나라의 공기는 달랐다. 
 
안타깝게도 공기 질 문제와 관련하여 실질적인 국제적 보상이 이루어진 사례는 없다. 한중일도 그렇지만 나라와 나라가 거의 붙어있다시피 한 유럽에서도 이 문제는 골칫거리이자, 오래된 역사적 과제다.

30년 동안 이어진 유럽 산성비 논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느 한 나라만 좋아진다고 해서 산성비를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은 유럽은 '대기오염 물질의 장거리 협약(CLRTAP, 1979)을 통해 정기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대기오염 문제를 공동의 과제로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하루 하루 미세먼지의 습격에 신음하는 우리도 이웃 나라들과 함께 이겨낼 방법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시프트-호모더스트쿠스 미세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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