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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8일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백악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국가 안보 회의 보좌관인 존 볼턴이 듣고 있는 모습.
▲ 베네수엘라 제제 관련 브리핑 1월 28일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백악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국가 안보 회의 보좌관인 존 볼턴이 듣고 있는 모습.
ⓒ AP Photo/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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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에 걸린 지도 한 장이 일부 대만(타이완) 사람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얼굴은 불그스름하고 콧수염은 하얀 존 볼튼 국가안보보좌관 뒤편에 '중국은 빨갛게, 대만은 하얗게' 칠해진 세계지도가 걸려 있었다. 그 장면이 담긴 화면을 보고 일부 대만 사람들은 '하나의 중국' 원칙과 관련해 미국이 대만 입장을 지지하는 증표로 해석하고 있다.

'하나의 중국(一个中国)' 원칙은 중국대륙과 대만·홍콩·마카오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며 합법적 중국 정부 역시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지지하는 이 원칙에 대한 은근한 반대 표시가 백악관 지도로 표현됐다며 일부 대만 사람들이 반기고 있는 것이다.

사안의 발단은 이렇다. 월요일인 지난 1월 28일 존 볼튼 보좌관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 PDVSA에 대한 제재를,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반미 입장을 고수하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자금줄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마두로는 '악명 높은' 반미 투사인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2013년 사망)의 후계자로, 차베스가 죽은 뒤 권한대행을 거쳐 대통령이 됐다. 볼튼과 므누신의 기자회견은 마두로를 겨냥한 것이지만, 대만 시청자들은 볼튼 뒤편의 세계지도에 더 주목했다. 대만 땅이 볼튼의 수염과 똑같은 흰색으로 표기된 것에 이들은 환호를 보냈다.

홍콩에서 발행된 1월 30일자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가 '대만과 중국의 분리를 보여주는 백악관 지도, 섬 인터넷의 시선을 붙들다(White House map showing Taiwan as separate from China catches the eye of island's internet)'란 기사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본문에 인용된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기사.
 본문에 인용된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기사.
ⓒ South China Morning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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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속의 island는 단순히 '섬'을 뜻하는 표현이 아니라 '자치섬(the self-ruled island)'의 약자로 사용됐다. 대만을 중국의 일부인 자치섬으로 간주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표현이다. 기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를 더 이상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두 사람(볼튼과 므누신 지칭)이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에 대한 제재를 언급하고 있을 때였다.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그 남미 국가에서 진행 중인 혼란과 미국의 예상 가능한 대응에 주목하고 있는 동안, 도끼눈(eagle-eyed)을 한 대만 인터넷 사용자들은 궁지에 몰린 대통령(마두로 지칭)을 지지하는 다른 나라들과 함께 중국과 러시아가 붉은색으로 표기된 데 반해 섬은 그렇게 표기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트럼프 대통령 이후 흔들리고 있는 '하나의 중국' 원칙

이제까지 미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그런대로 잘 지켜줬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부터 사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당선인 시절부터 이 원칙을 흔들어대며 중국 정부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2016년 11월 8일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한 달도 채 안 된 12월 2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전화 통화를 했다. 1979년 단교 이후 37년 만에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대만 총통이 접촉하는 첫 순간이었다.

트럼프는 9일 뒤인 12월 11일에는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또다시 중국을 자극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잘 알고는 있지만, 우리가 왜 하나의 중국 원칙에 얽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중국 정부는 당연히 격분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전 세계 어떤 사람, 어떤 세력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하려 시도하고 중국의 핵심 이익을 훼손한다면, 결국 돌을 들어 제 발등을 찍는 꼴이 될 뿐"이라며 비난을 가했다.

이렇게 중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하다가 제 발등 찍지 말라'며 경고하고 있지만, 트럼프의 세계전략 및 대(對)중국 전략이 종전과 크게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원칙이 앞으로 상당한 시련에 봉착할 가능성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껏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지탱해온 '언약'이 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 기간 중인 1972년 2월 28일 발표된 상하이 공동성명이다. 이후 양국 관계의 초석이 된 이 코뮈니케 제12조에서 미국은 이렇게 서약했다.
 
"합중국 측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합중국은 대만해협 양안의 전체 중국인들이 오로지 하나의 중국 밖에 없음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과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점을 인정한다. 합중국 정부는 이 원칙에 도전하지 않는다."
  
1972년에 중국을 방문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왼쪽 두 번째)과 그를 맞이하는 주은래 총리(저우언라이, 왼쪽 세 번째).
 1972년에 중국을 방문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왼쪽 두 번째)과 그를 맞이하는 주은래 총리(저우언라이, 왼쪽 세 번째).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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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공동성명에 기초해 미국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했다. 그리고 그 후의 역대 대통령들은 이 원칙을 그런대로 존중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런데 트럼프가 당선인 시절부터 '언약'을 흔든 데 이어 2017년 12월을 기점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을 채택함에 따라, 미국 정부가 이 원칙을 공식적으로 훼손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 하에서 미국은 러시아보다 중국을 더 견제하고 있다. 중국의 인도양·태평양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면, 과거의 제1주적이었던 러시아와도 과감히 손잡을 수 있다는 쪽으로 미국의 입장이 바뀌고 있다.

1972년 이래로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 것은 중국과의 적대적 공존관계를 발판으로 베트남전쟁 실패의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베트남전쟁의 여파 및 러시아의 영향력 팽창을 차단하려면 중국과의 제휴가 절실히 필요했고, 중국의 도움을 받자면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고 인정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트럼프의 등장을 계기로 미국이 중국을 최대 위협으로 설정하고 공격적 태세를 보이고 있다. 2018년에 보여준 가차없는 무역전쟁은 트럼프의 대중국 전략이 역대 대통령들과 상이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니 하나의 중국 원칙이 중대한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 미국이 의도하는 게 공식 폐기라고는 볼 수 없다. 그보다는 중국을 자극함으로써 무역전쟁에서 양보를 얻어내거나 대북 압박에서 협조를 이끌어내는 게 당장에는 더 이로울 수 있다. 그렇지만, 미국이 대중국 견제를 공식 국가전략으로 채택했으니,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의 중국 원칙이 불리해질 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에도 영향 미칠 수 있는 미국의 태도 변화

문제는 그런 변화가 한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거라는 점이다.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어 미중관계가 악화되면, 미국 정부는 중국과 거래하는 각국 기업들이 이 원칙을 훼손하도록 은근히 유도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렇게 되면 중국 정부는 외국 기업들이 이 원칙에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를 더욱 더 주목하게 될 수밖에 없다. 중국과 거래하는 기업들은 이로 인해 미·중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실제로 최근 대만 맥도날드가 이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대만 맥도날드가 내놓은 광고 영상이 중국인들의 항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광고 영상에 나온 대만 대입 수험생들의 수험표에 대만 국적이 표기됐던 것이다. 이 영상을 본 중국인들이 '맥도날드 타도!'를 외치며 사태를 확산시키자, 대만 맥도날드는 '오해를 불러 일으켜 유감이며, 우리는 하나의 중국 입장을 견지한다'고 지난 19일 발표했다.

맥도날드 같은 세계적 기업이 그런 광고 영상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어대는 분위기 속에서 대만 맥도날드가 중심을 잡지 못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맥도날드의 행동이 고의냐 실수냐 하는 점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세계적인 기업이 중화권(중국·대만·홍콩·마카오)의 금기 사항을 잠시나마 건드렸다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조성하는 분위기가 그만큼 강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면, 세계적인 기업도 무심코라도 중국 정부의 금기 사항을 건드릴 수 있음을 이번 사례가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국내 3대 연예기획사인 JYP도 2015년 11월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걸그룹 트와이스 멤버인 쯔위가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대만 국기를 흔든 일로 인해 중국인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대만 사람인 쯔위는 자신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채택한 세계전략 및 대중국 전략이 수정되지 않는 한, 중국과 거래하는 한국 기업들한테 이런 문제가 앞으로 종종 발생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 기업들이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점점 힘들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이다.

하나의 중국 문제 때문에 한국 기업들이 미·중 사이에 끼게 되면, 사드 사태 때 겪은 것 이상으로 곤란을 겪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만이 빨간색이냐 흰색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강요받았을 때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안을 우리 기업들이 일찍부터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다.

태그:#하나의 중국, #맥도널드,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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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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