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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대학교 야외박물관에 설립된 일제강정김 조선총독부 고위관료 김학응의 송덕비. 김 씨는 일제하 옥천군수, 보은군수를 지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있다.
 충북대학교 야외박물관에 설립된 일제강정김 조선총독부 고위관료 김학응의 송덕비. 김 씨는 일제하 옥천군수, 보은군수를 지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있다.
ⓒ 충북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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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2월 27일 동아일보 보도지면. 김 씨는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돼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사진 :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1961년 2월 27일 동아일보 보도지면. 김 씨는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돼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사진 :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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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된 새나라에 이 대학 만년대계를 위하여... 김(학응) 지사는 조국의 동력이 되는..."(충북대학교 대학이전 김학응(충북도)지사 송공비 中에서"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김학응(金鶴應, 창씨개명 金子薰 / 1989~?) 전 충북도지사.

김씨는 일제강점기 시절 충북도청 내무부 학무과를 시작으로 1940년 보은군수를 지냈고, 이후 옥천군수를 지내는 등 조선총독부 관리로 승승장구했다.

해방이 됐지만 일제에 부역해 성공적인 관료를 지낸 경력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해방 후 미군정하에서도 내무국 지방과장을 지냈고 1955년 9월부터 1958년 7월까지 충북도지사, 1958년 7월 29일부터 1960년 4월 30일까지 충남도지사를 지냈다.

김씨는 충북도지사로 재직할 때인 1953년 충북도가 보유하고 있던 청주시 개신동 토지 23만평을 충북대학교 부지로 제공한다.

이것을 계기로 충북대학교 부지에 김씨에 대한 송공비가 세워졌다. 천년 만년 갈 것 같았던 김 씨의 송공비는 1960년 4‧19혁명과정에서 땅 속에 묻히는 수모를 당하게된다.

1960년 김 씨는 충남도지사로 재직하며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에 가담한다. 이에 분노한 충남도민들은 김씨의 사퇴를 요구하며 시위대열에 합류했다.

결국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고 이후 김씨는 부정선거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961년 2월 27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 씨등은 업자들로부터 받은 당시 돈 2천5백만환 중 600만환을 자유당 도당 위원장에게 제공한 혐의를 받았다.

이후 1961년 10월 13일 열린 재판에서 김 씨는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 판결을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충북대학교가 김씨의 송공비를 땅에 파 묻은 것으로 알려졌다.

1960년 4.19가 혁명이후 김씨가 3.15 대통령 부정선거에 개입한 인사에 포함되면서 민주당 감사가 내려온다는 소문이 전해졌고, 충북대학이 송공비를 땅 속에 묻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씨의 송공비는 2008년 당시 임동철 충북대학교 총장의 지시로 다시 햇빛을 보게된다.

김씨는 친일경력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인해 처벌을 받은 적이 없다. 겨우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을 뿐이다. 이후 민주주의를 훼손한 대표적인 사건인 3‧15부정선거에 가담해 형사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땅속으로 들어갔던 김씨의 송공비는 다시 햇빛을 보며 유유히 충북대학교 교정을 바라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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