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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첫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2014, 문학동네) 앞에 "하나의 가슴에 둘의 심장이 뛴다 / 그다음은 세계"라고 적었다. 그리고 두 번째 시집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2018, 문학동네) 시인의 말에 그 흐름을 이어 "그 하나 둘 세계를 / 네게"라고 덧붙였다.

"세 번째 시집까지는 나름대로 생각한 흐름이 있었어요. 연속 선상에 있는 시집 3권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것을 암시하는 거죠. 큰 흐름으로 보면 첫 번째가 만남에 대한 이야기라면, 두 번째는 그 만남이 끝나고 난 뒤 이야기죠. 세 번째는 만남이 끝나고 난 후, 앞에서 헤어졌고 만났던 일들을 잊어가는 과정? 잊히는 과정에 대한 느낌을 잡고 시집을 써보려고 해요."

이 흐름을 시절 3부작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 시집은 이별 이후 시절의 지병 같은 마음이다.
 
벚나무들은 내년 봄에도 말간 눈알같이 아름답겠지요

- 시 '개벚나무 아래서' 중
나라는 밀실이 표류하는 마음에 대해서라면
마음, 그것은 나의 지병

- 시 '마음에 내리는 마음' 중
 
"두 번째 시집을 엮으면서, 시집을 관통하는 느낌이 무엇일까? 어떤 단어를 키워드로 삼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더라고요. 생각해보니 관심이 있는 것이 마음이었어요. 외부적인 것에는 무관심한 편이라서요.

자신이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게 자기 마음이잖아요? 사람은 누구나 마음 때문에 힘들어하고, 마음 때문에 기뻐하잖아요? 마음이 행복감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슬픔, 우울함을 주는 경우도 있고요. 그렇게 봤을 때, 평생 끌어안으면서 고민하고 아파하는 것이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병'이라는 표현을 쓰게 된 거죠."

Side A, Side B에 각 30편씩 총 60편의 시를 담았다. "지금은 올 것이 오는 시간 / 양의 털이 자라고 뿔이 단단해지는 계절"을 노래한 시 '양들의 침묵'으로 문을 열고, "우리는 무섭게 사랑해야 할 것만 같았다" 시 '첫'으로 닫는다.

"시집을 보면 1부, 2부… 똑같잖아요? 신선한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카세트테이프가 생각나더라고요. Side A, B가 있잖아요? 어울리는 느낌의 시들로 나누어 넣었어요."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였고 / 혼자와 더불어 나는 혼자였다"(시 '살아 있는 무대')고 쓴 이현호 시인을 지난 1월 15일 그의 주점 '묘선생'(경기 수원시 영통구 매탄동)에서 만났다.

"시인을 빨리 발음하면 '신'이잖아요"
  
이현호 시인
 이현호 시인
ⓒ 김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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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게는 언제 열었어요?
"지난해 8월에 계약했는데, 실제로 장사를 한 지는 두 달 뒤죠. 그 동안 공사했어요. 돈이 없어서 (테이블을) 직접 만들었어요(웃음). 10월 중순부터 영업했고요."

- 가게 이름 '묘선생'은 고양이에서?
"고양이 묘(猫)를 썼어요. 콘셉트가 고양이에요.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고양이를 좋아해서요. 두 마리를 키우고 있어요."

- 두 번째 시집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제목은 시 '살아 있는 무대'의 시구인데요?
"제가 지었다고 하면 멋있는데, 저 혼자 온전히 지은 것은 아니고요(웃음). 제가 골라놓은 것, 편집부에서 추천해준 것도 있었는데 동료 시인이 이 구절이 괜찮은 것 같다 해, 세 가지를 놓고 고민하다 결국 동료 시인이 추천한 걸로 했어요. 시집의 전체적인 느낌을 전하는 것 같아 잘 지은 것 같아요."

- "내가 신을 닮아갈 때"(시 '나라는 시간'), "나는 신이 없는 종교를 세우고 싶었다"(시 '마음에 내리는 마음'), "고해성사하는 신이 달빛을 켜는 밤"(시 '개벚나무 아래서') 여러 시에 신이 등장하는데, 시인에게 신이란?
"우리가 사는 비루한 현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종교적인 체험처럼 고귀한 순간이 있다고 하잖아요? 무신론자이고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것에 호기심, 갈망이 항상 있는 편이에요. 머리로는 믿지 않지만 갈구가 있죠. 호기심이 많이 드러난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신이 없다고 해도 신성한 체험을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자연에서도 느낄 수 있겠지만 인간관계에서도 신성한 것들이 문득문득 느껴지는 순간이 있고요. 사람마다 신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마음에 전착하다 보니 그런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마음의 한 부분으로서 관심이 있죠."
 
-시인이 신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있는지?(웃음)

"말장난인데, 발음을 빨리하면 시인이 신이잖아요?(웃음) 창작자 입장에서 보면 신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만드니까요. 창작이 신에 가까운 행위이지만, 시인은 신이라기보다는 비천한 존재 같은 느낌이 있죠(웃음)."

- 시집에서 자기애를 느꼈는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인가요?
"오락가락하는 것 같아요. 창작자는 두 가지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탄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자기애가 있어야 하고요. 자기에 대한 사랑 없이는 작품을 못쓸 것 같아요. 작품과 나를 사랑해야지 계속 창작할 수 있죠.

반면, 지기 비하, 자기의 비루함을 항상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애만 있으면 한쪽으로 치우치는데, 자기 비하가 제동을 걸어주는 거죠. 내가 멀리 나가지 않도록, 나를 돌아보도록 잡아주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인 자기애도 있지만 자기 비하도 심한 사람이죠. 항상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아요."

- 자기 연민?
"자기 연민과는 다른 것 같아요. 저에 대한 연민은 없어요(웃음). 행동을 돌아보았을 때 나는 왜 이렇게밖에 행동을 못했을까? 그때 왜 그랬을까? 시를 이렇게밖에 못쓸까? 이런 것들이 자기 비하의 영역이라면, 그래도 나는 시를 잘 쓰는 것 같아, 내가 잘하는 것은 이것밖에 없지 이런 면에서는 자기애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완성이라는 말을 안 써요"

- 시 쓰면서 좌절한 적은?
"엄청 많죠(웃음). 첫 시집은 지금까지도 다시 안 봤어요. 물론 쓸 때는 시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잘 쓰고 있다 다독였던 부분이 있는데, 막상 시집이 나와 머릿속에 있는 시들을 돌이켜보는데 너무 별로인 거예요. 왜 이렇게 썼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지금까지도 첫 시집을 다시 들여다보지 않아요. 너무 마음에 안 들어요. 첫 시집 읽은 독자에게는 실례일 수도 있지만요.

두 번째 시집도 마음에 안 드는 작품들이 있죠. 낼 때는 이 정도면 괜찮다 싶어 냈는데, 세 달 지나서 돌이켜보면 몇몇 작품들, 몇몇이 아니라 꽤 많은데 마음에 안 들죠(웃음)"

- 독자가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엄청나게 사랑받는 작가는 아닌 것 같아요(웃음). 시 쓸 때 직접적인 언술, 진술을 피하라고 하는 데 동의해요. 좋은 시는 시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비어 있어요. 그 비워진 부분을 독자의 경험이나 상상력으로 채울 수 있는 작품이 좋은 시라고 생각해요.

보통 시인들이 10을 비워둔다면 저는 5 정도만 비워 놓아요. 독자가 채워주는 부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게 시적인 진술로 많이 나타나죠. 그런 부분이 독자에게 흥미를 주면서 공감하는 것도 있고요. 아, 맞아 시인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구나 그런 부분에서 위로가 있을 텐데, 제 시에서 그런 것을 좀 쉽게 받을 수 있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 기억에 남는 독자의 감상이 있는지.

"어떤 분이 두 번째 시집에 대해 '생계형 블랙 로맨스'라는 표현을 쓰신 적이 있어요(웃음). 로맨스는 로맨스인데 사랑을 하는 중이 아니고 사랑이 끝나고 난 뒤, 그 끝난 자리에 남아 혼자 꾸역꾸역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블랙 로맨스 표현을 쓰신 것 같아요. 그 슬픔을 견디면서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 먹고 사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까 생계형이라고 붙이셨더라고요. 그 말이 재미있고, 두 번째 시집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는 재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해 기억에 남아요."

- 시는 어떻게 쓰게 됐는지.
"예술 표현에 관심이 많았어요. 처음부터 시를 쓰겠다는 생각은 아니었고요. 고등학교 때 음악, 미술에 관심이 많았어요. 음악, 미술을 조금씩 했는데 너무 잘하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좌절을 겪었죠(웃음). 책 읽는 것에 관심이 있었는데, 주변에는 글 쓰는 친구가 없더라고요. 글 쓰는 것은 비교할 수 없어 제 실력을 잘 몰랐어요. 글 쓰는 것은 잘 하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이 있었죠. 그래서 진로를 문예창작과로 정했죠. 그곳에서 제대로 문학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시를 쓰게 됐죠."

- 시는 어떤 방식으로 쓰는지.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고요. 시가 안 써진다고 해서 쓰려고 안달복달하는 스타일은 아니죠.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편이에요. 책을 보거나 사람과 이야기할 때 등 갑자기 제게 치고 들어오는 문장이 있어요. 그 문장을 붙잡고 이야기를 덧붙여보기도 해요. 그 문장이 왜 나를 훅 쳤는지 생각해보면서 제 경험, 감정과 연결시켜 풀어내는 것 같아요."

- 시 완성은 얼마나 걸리나요?
"저는 완성이라는 말을 안 써요. 퇴고를 계속하는 편이에요. 첫 번째 시집을 많이 수정했어요. 두 번째 시집도 증쇄를 찍을 때 몇 곳 수정했고요. 횟수가 줄겠지만 기회가 되면 한 번씩 훑어보면서 고칠 곳이 없나 보기도 해요. 완성이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첫 시집 나온 지 5년이 된 것 같은데, 그 정도 되니까 안 보게 되더라고요(웃음) 언제든지 눈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수정할 것이라서 완성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평생 계속 보는 거죠."

- 시집을 엮을 때 하나의 시처럼 만든다고 해요. 3부작을 이야기했는데, 어떤 시들을 써야겠다 틀을 잡아놓고 쓰는지, 쓰고 난 뒤에 재구성하는지.
"후자요. 미리 기획을 세워놓고 시 쓰는 것은 저와 맞지 않아요. 시는 그때그때 쓰이는 대로 써요. 제가 말하는 흐름이라는 것은 나중에 시집을 엮을 때죠. 60편을 시집으로 엮는다고 해서 시 60편만 쓰고 시집 내야지가 아니잖아요? 그 이상 쓰잖아요.

몇십 편 정도를 버리고 그 안에서도 추린 다음에 퇴고를 해요. 제가 말한 3부작 느낌은 기획을 하고 쓴다기보다 전체적인 느낌으로 엮으면 시집과 시집을 이어주는 어떤 흐름도 생길 거라는 거죠. 주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고요. 저라는 시인을 전체적으로 볼 때, 독자가 이해하기도 좋을 것 같고요. 느낌적인 부분을 말하는 거지, 기획을 하지는 않아요."

시를 쓴다는 행위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표지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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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하고 싶은 시 한 편이 있다면?
"네 편 이야기해도 되죠?(웃음) 첫 번째 시인 '양들의 침묵'. 시집의 전체적인 느낌을 이야기해주는 시라고 생각해서 앞에 배치했어요. 전체적으로 시집이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어떤 느낌인지 짐작하시기에 좋을 것 같아요.

두 번째에 있는 시 '배교'는 제게 의미가 있는 시예요. 첫 번째 시집을 내고 나는 왜 이렇게 못쓰지 자괴감에 휩싸였어요. 한동안 시를 못 썼죠. '배교'를 쓰고 나서 자신감이 조금 올라왔어요. 두 번째 시집의 시들을 쓸 수 있게 한 동력이 된 시라서 애착이 있어요. 연달아 있는 '보통의 표정', '만화(晩夏)' 시가 있어요. 이 두 시는 독자가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그나마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시 같아요."
 
혼자 있는 집을, 왜 나는 빈집이라고 부릅니까

흰 접시의 외식(外食)도 흠집 난 소반 위의 컵라면도 뱃속에 들어서는 같은 눈빛입니다

"죽기 살기로 살았더니 이만큼 살게 됐어요." 혼자 있을 때 켜는 텔레비전은 무엇을 위로합니까
이만큼 살아서 죽어버린 것들은

변기 안쪽이 붉게 물듭니다, 뜨겁던 컵라면의 속내도 벌겋게 젖었습니다

겨울은 겨울로 살기 위해 빈집으로 온기를 피해 왔지만, 커튼을 젖히자 날벌레같이 달려드는 햇빛들

사랑을 믿기 때문에 사랑했을까, 삶을 사랑해서 살아가고 있을까

밥을 안치려고
손등은 쌀뜨물 안에서 뿌옇게 흐려진다

네가 없는 집을, 나는 왜 빈집이라고 불렀을까
  
- 시 '배교' 전문
 
이현호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은 지난 1월 7일, <살아있는 무대 시:전詩>(총연출 임선빈, 기획 LP STORY)에서 새로운 예술로 재탄생되었다. 행위예술가 신용구의 퍼포먼스, 첼리스트 지예안의 연주, 배우 민일홍, 윤미영의 시극이다. 공연에 참여 중인 시인.
 이현호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은 지난 1월 7일, <살아있는 무대 시:전詩>(총연출 임선빈, 기획 LP STORY)에서 새로운 예술로 재탄생되었다. 행위예술가 신용구의 퍼포먼스, 첼리스트 지예안의 연주, 배우 민일홍, 윤미영의 시극이다. 공연에 참여 중인 시인.
ⓒ 김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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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무대 시:전詩> 신용구 행위예술가
 <살아있는 무대 시:전詩> 신용구 행위예술가
ⓒ 김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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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무대 시:전詩> 첼리스트 지예안
 <살아있는 무대 시:전詩> 첼리스트 지예안
ⓒ 김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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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무대 시:전詩> 배우 민일홍, 윤미영
 <살아있는 무대 시:전詩> 배우 민일홍, 윤미영
ⓒ 김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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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에게 시란 무엇일까요?
"너무 어려워요(웃음). 저의 밥벌이, 존재 기반이죠. 시를 쓴다는 행위가 없으면 살아갈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습관처럼 되어버린 것이죠. 물론 시를 쓸 때 습관적으로 쓰는 매너리즘에 대한 것은 아니고요. 시를 쓴다는 행위가 제 생활에 밀착되어 있다는 맥락에서 습관이나 버릇 같은 거죠."

- 죽을 때까지 시를 쓰겠네요?
"장담은 못하겠어요. 굳이 시여야만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예술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거죠. 시여야 한다는 장르의 고집은 없어요. 희곡, 소설, 영화에도 도전해볼 수 있는데 그 근간에 있는 것이 시죠. 시인으로서의 소설 쓰기, 시인으로서의 영화, 희곡이겠죠."

- 예술가가 되고 싶은 거죠?
"네. 저는 예술가가 좋아요(웃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2019년 2월호에도 실립니다.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이현호 지음, 문학동네(2018)


태그:#이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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