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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소박하게나마 하고 싶은 일을 꾸려가며 사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80년이 넘은 한옥과의 첫만남, 그곳을 고치고 수선하는 과정 등을 소개합니다. - 기자말

9월 중순 이사 후 약 두 달여 동안 혼돈과 혼란의 날이 이어졌다. 이사를 했으나 온전한 집이 아니었다. 창호 대신 비닐 장막을 치고 살아야 했다. 방 도배는 창호가 완성돼야 가능했다. 안방의 온돌 바닥은 마루나 장판이 아닌 도배지를 바르기로 했는데, 이 역시 한지 도배와 맞물려야 했다. 물고 물리는 일들이 전부 멈춰 버렸을 때의 막막함이란! 절정의 단계로 나아가는 찰나에 전원이 퍽, 하고 나간 느낌이다.
 
 다른 집에 비해 유난히 창호가 많다. 방방마다 벽 대신 온통 창호로 둘러싸인 집이다. 만드는 것도 일이고, 와서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도 일이다.
 다른 집에 비해 유난히 창호가 많다. 방방마다 벽 대신 온통 창호로 둘러싸인 집이다. 만드는 것도 일이고, 와서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도 일이다.
ⓒ 이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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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말엔 다 끝날 거라던 창호는 10월이 돼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집 주인인 나는 건축주로서 모든 의무를 다했으나, 나머지 상황이 이리저리 꼬이고 꼬여 내가 도저히 어찌해 볼 여지가 없었다. 나는 그저 기다려야만 했다. 이번 주에는 처리될 거라는 이야기만 반복될 뿐 아무런 진척없이 지나가는 날이 이어졌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다면 이사를 서두르지 않았을 것이다.

날은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한여름의 폭염은 이미 옛일이고, 바야흐로 가을을 지나 초겨울로 진입하고 있었다. 아파트를 떠나 한옥에서 처음 맞는 추위에 대한 불안이 엄습했다. 게다가 비닐을 친 상태로 이 집에서 첫 겨울을 보낼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주는 스트레스는 말 그대로 '겪어보지 않으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할' 정도였다.

다들 내게 미안해 했으나 미안함은 상황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문제를 풀 능력과 권한이 없는 이들의 안타까운 표정을 지켜보는 것도 괴로운 일이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창호는 기다리다 지칠 만하면 조금씩 조금씩 들어왔다. 나중에서야 지체된 사정의 전말을 알게 됐고, 그것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일단 창호가 들어오기 시작하니 슬슬 진도가 나가기 시작했다. 유리가 붙었고, 한지 도배가 시작됐다. 

완성되지 않아 볼 수 있던 것들
 
 수많은 창호가 제자리를 잡으면 한지를 바르는 손길이 이어진다. 청년의 때부터 이 일을 하셨다는 도배 사장님의 자부심이 저 손길에 켜켜이 배어 있다.
 수많은 창호가 제자리를 잡으면 한지를 바르는 손길이 이어진다. 청년의 때부터 이 일을 하셨다는 도배 사장님의 자부심이 저 손길에 켜켜이 배어 있다.
ⓒ 이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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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다 좋기만 한 일이 없듯이 나쁘기만 한 일도 없다."

이 지당한 문장을 이전에도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집을 지으면서 얼마나 되뇌었는지 알 수 없다.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 앞에서 깊은 스트레스로 머리가 혼미해질 때마다 나는 주문처럼 이 문장을 되뇌었다. 뭔가 일이 좀 되어간다 싶을 때면 예상치 못한 복병이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 마음속으로 늘 긴장하는 게 습관이 됐다.

내가 겪은 바로 이 문장은 진리였다. 집을 다 마무리하기 전에 이사를 오게 된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닐 장막 속에서 살아야 하는 건 분명 나쁜 일이지만 온전히 나쁘기만 한 건 또 아니었다. 집을 다 마무리하기 전에 이사를 오게 되니 이 집의 구석구석이 어떤 분의 어떤 손길에 의해 완성되어 가는지를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현장을 오가며 잠깐씩 보는 것과 하루종일 그분들이 작업하는 걸 지켜보는 것은 실감의 정도가 완전히 달랐다.

공사 현장은 대부분 오전 7시 반경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이사 온 뒤의 작업 시간도 다르지 않았다. 이른 아침 그날의 작업자들이 오시면 차 한 잔을 대접한다. 낮 12시경까지 작업을 하신 뒤 점심을 드시고 오신다. 다녀오시면 무조건 믹스 커피를 드려야 한다. 다른 커피는? 반기지 않으신다. 오후 두세 시경이면 간식을 챙긴다. 오후 5시경이면 하루 작업이 끝난다.

창호도, 도배도, 다른 작업도 하루에 끝나지 않았다. 짧으면 2~3일, 길게는 일주일을 출퇴근하듯이 다녀가셨다. 마당에서는 창호를 다는 분들이, 대청에서는 도배를 하는 분들이 같이 계셔서 집 안이 온통 북적거릴 때도 있었다.

일하는 분들과 같은 공간에서 머물게 되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처음에는 서먹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재미가 쏠쏠했다. 우리 집 창호 사장님은 이 일을 하신 지가 40년도 더 됐다고 하셨다. 이분 앞에서 20년 경력이란 '연장 다룰 줄도 모르는' 애송이였다.

사장님은 본인의 작업장에서 100개가 훌쩍 넘는 창호를 다 만들어 오신 뒤 우리 집에서 미세하게 조정을 거쳐 하나하나 달아주셨는데, 그럴 때면 언제나 사모님과 2인 1조였다. 남편분의 솜씨에 대한 사모님의 자부심은 가히 하늘을 찔렀다. 사모님이 '세상에 못 하는 게 없는 남편'에 대해 신나게 말씀하시면, 무뚝뚝한 창호 사장님은 말리지도 않고 그냥 옆에서 가만히 들으시며 당신 하실 일을 하셨다. 모른 척하시지만 입꼬리 부근이 슬쩍 올라가는 걸 나는 봤다.

도배 사장님 역시 사모님과 함께 2인 1조로 다니셨다. 한지를 척척 접어 한칼에 쭉 잘라 정확하게 붙이는 솜씨를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일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말이 어떤 건지 제대로 실감했다. 전국 유명한 고택의 작업은 거의 다 하셨다는 도배 사장님 역시 온몸에서 자신의 솜씨에 대한 자부심이 '뿜뿜' 흘러나왔다.

'눈대중'은 없었다

하루종일 이 분들의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는 종종 TV의 <인간극장> 같은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그분들의 연장을 다루는 능숙한 솜씨, 치밀한 마감이 어디 하루아침에 손에 익은 것이겠는가. 어떤 인연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청년의 때 또는 그보다 어릴 때부터 단련하고 연마해 온 기술의 집약이 아닐 수 없다.

이분들의 작업을 보는 것은 각별한 즐거움이었다. 손으로 어림잡아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사소한 것 하나도 반드시 줄자를 대고 길이와 폭을 확인하고, 그에 맞춰 정확히 자르고 붙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분들의 손에 의해 접히고 잘려 제자리를 찾아가는 나무며 종이는 현재 시점에서 구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가장 좋은 것들이고, 가격 또한 만만치 않다. 하나라도 허투루 해서는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게다가 이분들의 인건비 자체가 만만치 않다. 예정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으면 서로 입장이 난처해진다. 애초에 며칠 걸릴 일이라고 약속을 했으면 그 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끝내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번 움직이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인건비도 인건비지만 챙겨야 하는 연장과 도구, 자재가 엄청나다. 그것들을 펼쳐놓고 한 번에 일을 마치면 간단하지만, 예정대로 못하거나 준비해 온 자재들이 부족해서 다시 와야 하는 일이 생기면 이 연장 등속을 모두 싸서 가져간 뒤 다시 또 와야 한다. 매우 번거로운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시행착오 없이 정확하게 한 번에 끝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건?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다. 눈대중으로, 대충대충 하는 일은 이분들의 직업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다.
  
 내 집의 완성된 창호 중 하나. 완성 후의 이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러나 이것이 없던 때부터 자리를 잡는 모습을 다 지켜본 그 기억으로 내 집의 창호들은 내게 더욱 각별한 무엇이 되었다.
 내 집의 완성된 창호 중 하나. 완성 후의 이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러나 이것이 없던 때부터 자리를 잡는 모습을 다 지켜본 그 기억으로 내 집의 창호들은 내게 더욱 각별한 무엇이 되었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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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문을 여닫을 때마다 한지 바른 문의 감촉이 손끝에 전해진다. 이제 갓 풀칠한 그때로부터 팽팽해져 어엿한 문이 되어 햇살과 추위를 막아주고 있으니 볼 때마다 대견하다.
 방문을 여닫을 때마다 한지 바른 문의 감촉이 손끝에 전해진다. 이제 갓 풀칠한 그때로부터 팽팽해져 어엿한 문이 되어 햇살과 추위를 막아주고 있으니 볼 때마다 대견하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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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하루의 작업을 마치고 돌아가시면, 그 작업의 결과물 앞에 가만히 앉아 손으로 조심스럽게 만져보는 것이 내 나름의 의식이었다. 선명한 대패질 자국 위로 톱밥이 묻어나는 창호, 풀이 덜 말라 아직 축축한 한지의 느낌은 이제 막 태어난 생명체의 여린 속살과도 같았다. 하루만 지나면 톱밥이 말끔히 쓸리고, 풀이 마른 한지는 팽팽해져 손가락 끝으로 툭 치면 그 튕겨나는 소리가 짱짱하다.

나는 집의 마무리가 덜 되어 속이 터질 것 같은 심정이 밑바닥에서 솟구칠 때면, 한밤중이건 이른 새벽이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때로는 창호를, 때로는 한지 바른 문을 쓰다듬었다. '그 덕분에 이 작업의 과정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좋구나' 되뇌면서. 언제 어느 때든 손을 대기 전에 반드시 깨끗하게 씻었음은 물론이다.
 
 이 연재를 처음부터 보신 분들은 이 유리창을 기억하실까? 저 유리창의 구조와 저 오래된 유리창을 나는 물론이고 이 집의 건축가 역시 몹시 사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고쳐 지은 집에 계승되었다.
 이 연재를 처음부터 보신 분들은 이 유리창을 기억하실까? 저 유리창의 구조와 저 오래된 유리창을 나는 물론이고 이 집의 건축가 역시 몹시 사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고쳐 지은 집에 계승되었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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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6년에 지은 집에서 제 역할을 했던 무늬 유리가 2018년 고쳐 지은 집 유리창에 그대로 옮겨 앉았다. 이 집에 처음 들어섰을 때 나를 맞이한 그 유리창의 구조를 계승한 것은 이 집을 고쳐 지은 모든 주체들이 이 공간에 쌓인 시간에 바치는 오마주이다.
 1936년에 지은 집에서 제 역할을 했던 무늬 유리가 2018년 고쳐 지은 집 유리창에 그대로 옮겨 앉았다. 이 집에 처음 들어섰을 때 나를 맞이한 그 유리창의 구조를 계승한 것은 이 집을 고쳐 지은 모든 주체들이 이 공간에 쌓인 시간에 바치는 오마주이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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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가 들어오고 도배가 마무리되어가는 한편으로 드디어 유리가 들어왔다. 이 집의 유리는 내게 매우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나는 블록처럼, 모자이크처럼 구성된 유리창의 배치가 맘에 들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 유리창에 자리 잡은, 지금은 나오지 않는다는 유리를 꼭 되살려 쓰겠다고 마음 먹었다.

여기에 꽂힌 건 나만이 아니다. 이 집을 설계한 건축가 역시 유리창의 배치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그는 설계도면을 그리면서 1936년에 지어진 이 집의 DNA를 새로 수선하는 집에 구현해 넣었다. 여기에 들어갈 유리는 당연히 예전의 그 유리여야 했다. 공사하는 내내 이 유리창의 유리가 깨지지 않도록 많은 사람들이 신경 쓰고 조심해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유리가 새로 고친 집의 유리창에 자리를 잡았다. 80여 년 전에 그랬듯이. 애초에는 전면 유리창에 같은 유리를 쓰고 싶었으나 크기가 맞지 않아 정중앙에 배치했다. 양쪽에는 새롭게 생산되기 시작한 무늬 유리 중 어울릴 만한 것을 골라 넣었다. 남은 유리는 부엌 찬장에, 화장실 문에 알뜰하게 활용했음은 물론이다.

나와 집의 시간이 포개진 순간
 
 쪽마루가 만들어지고 있다. 나무를 켤 때마다 흩날리던 먼지와 마당을 채운 나무 부스러기를 잊을 수 없다. 우리집 쪽마루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눈 앞에서 만들어졌다. 쪽마루의 처음을 안다는 것은 남들이 쉽게 갖지 못할 기억이다.
 쪽마루가 만들어지고 있다. 나무를 켤 때마다 흩날리던 먼지와 마당을 채운 나무 부스러기를 잊을 수 없다. 우리집 쪽마루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눈 앞에서 만들어졌다. 쪽마루의 처음을 안다는 것은 남들이 쉽게 갖지 못할 기억이다.
ⓒ 이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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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꿈꾸던 쪽마루 라이프는 아마도 다가올 봄날이 되어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저 창호를, 저 한지를, 저 유리를, 저 마루를 이 집에 이사 온 뒤 나는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내가 꿈꾸던 쪽마루 라이프는 아마도 다가올 봄날이 되어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저 창호를, 저 한지를, 저 유리를, 저 마루를 이 집에 이사 온 뒤 나는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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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더 한참을 기다려서야 쪽마루가 달렸다. 우리 집 쪽마루를 달아주신 두 분의 목수 어르신은 이 집을 짓는 데 처음부터 참여했다고 하셨다. 한옥의 목수분들은 주로 '대장' 목수님을 중심으로 몇 분이 팀을 짜서 다니는데, 쪽마루는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어서 대장 목수님은 안 오시고, 두 분만 오셨다.

약간 '덤앤더머' 스타일의 두 분은 작업의 방식을 두고 끝도 없이 티격태격하셨다.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는 이렇게나 저렇게나 매한가지인 것 같은데 이게 맞니, 저게 더 낫니 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낮췄다 하셨다.

그런데도 일은 신기하게 잘 돌아가고 은근히 호흡이 척척 맞았다. 목공소에서 들어온 거친 나무판재가 이 두 분의 손길을 거쳐 매끈해졌고, 규격에 맞게 잘렸다. 그 나무들을 마치 레고나 퍼즐을 맞추듯 하나하나 이어 붙이면 마루로 완성됐다. 우리 집에 붙어야 할 쪽마루는 세 개. 꼬박 나흘여 동안 두 분이 자르고 다듬고 이어 맞추고 끼운 다음에 드디어 완성.

서촌 한옥에서 한 달 가까이 머물면서 쪽마루 라이프를 즐긴 기억 때문에 내 집의 쪽마루에서 차 한 잔 마실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쪽마루가 만들어질 기미가 보이기도 전에 쪽마루에 두고 쓸 소반을 일찌감치 마련해 뒀는데, 정작 쪽마루가 완성되니 날이 추워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집은 이제 완성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 집과 나의 시간이 어느덧 포개져 함께 흐르고 있다. 이 집에서의 나의 시간은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집은 이제 완성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 집과 나의 시간이 어느덧 포개져 함께 흐르고 있다. 이 집에서의 나의 시간은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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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는 한꺼번에 완성되지 않았다. 약 130여 개의 창호 중 20% 남짓은 또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창호가 들어오는 날과 날들 사이에 한지와 유리 공사도 드문드문 이어졌다. 쪽마루가 자리를 잡고, 중문이 들어서고, 유리와 창호, 한지 도배까지 얼추 끝나니 초겨울이 다 됐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긴 했으나 이제 한고비를 가까스로 넘겼다.

그 후 며칠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심하게 앓았다. 매우 심하게. 이제 안심하고 겨울을 보낼 수 있게 됐다는 걸 몸이 알았던 걸까. 긴장과 염려로 경직돼 있던 몸과 마음이 느슨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눈을 뜰 때로부터 감을 때까지 내 눈앞에 펼쳐진 서까래의 물결이 나는 참 좋았다.
 눈을 뜰 때로부터 감을 때까지 내 눈앞에 펼쳐진 서까래의 물결이 나는 참 좋았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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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 깨기를 반복할 때마다 눈 앞에 펼쳐진 건 그토록 내가 원하던 서까래의 물결이었다. 눈을 뜰 때로부터 감을 때까지 내 눈 앞에 펼쳐진 그 물결이 나는 참 좋았다.

집은 이렇게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고, 이 집과 나의 시간이 포개져 함께 흐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을 찍은 황우섭은 주로 인물과 건축물을 찍는다. 사람도 건물도 기교와 치장 대신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는 걸 좋아한다. 오래된 것에 집착하고,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 산티아고 순례와 나오시마 여행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긴 단행본이 국내에 출간됐고, '조병수 건축사무소' 전속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찍은 사진이 영국 'Thames&Hudson'에서 펴낸 조병수 건축가의 작품집 의 표지 및 본문에 실렸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hyehwa11-17)에도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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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지금은 혜화동 인근 낡고 오래된 한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