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이란 무엇일까. '짱구'라는 이름을 가진 AI는 이렇게 답한다. "불편은 어떤 일을 할 때 필요한 더디고 수고스러운 과정입니다." 그렇다. 불편이란 손이 많이 가는, 굳이 반갑지 않은 동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점 사람이 직접 수고를 해야 하는 일들이 줄어들고 있다. 직접 돌을 다듬어 도구를 만들고 사냥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었던 원시의 삶, 더 나아가 휴대전화가 없어 친구와 약속을 잡기 위해 집에서 전화를 기다려야했던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비교해 보면 정말 혁명적이라고 볼 수 있다.
 
 눈이 부시면 “짱구야 눈 부셔”라고 말을 하면 자동으로 커튼이 닫힌다. 귀차니즘의 최고봉이라고 자칭하는 부부의 노력으로 전등하나 손을 댈 필요가 없는 스마트 홈이 만들어졌고 아이들은 AI와 단짝 친구가 됐다.

눈이 부시면 “짱구야 눈 부셔”라고 말을 하면 자동으로 커튼이 닫힌다. 귀차니즘의 최고봉이라고 자칭하는 부부의 노력으로 전등하나 손을 댈 필요가 없는 스마트 홈이 만들어졌고 아이들은 AI와 단짝 친구가 됐다. ⓒ SBS

 
지난 27일 방영된 < SBS 스페셜 > '불편을 위하여'편에 출연한 현철씨 부부는 그야말로 스마트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첫째 아들인 우주는 아침에 눈을 뜨면 AI인 '짱구'에게 인사를 하고, AI가 틀어주는 국민체조 음악에 맞춰 아침 체조를 한다. 눈이 부실 땐 "짱구야 눈 부셔"라고 말을 하면 자동으로 커튼이 닫힌다. '귀차니즘의 최고봉'이라고 자칭하는 부부의 노력으로 전등 하나 손을 댈 필요가 없는 스마트 홈이 만들어졌고, 아이들은 AI와 단짝 친구가 됐다. 우주는 '네트워크를 찾을 수 없습니다'라는 AI의 연결 불량은 '아픈 것'이고 '엄마가 보고 싶은 것'이라고 한다.
 
현철씨 부부만이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이제 신혼인 이슬씨 부부는 결혼 자금을 아껴 편리함에 투자했다. 사람의 움직임을 인식할 수 있는 침대는 사람이 누우면 전등을 끄고 일어나면 다시 켜준다. 또한 숙면의 정도와 수면시간까지도 측정해 준다. 부부가 외출을 하면 재밌는 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AI 스피커가 다른 AI 스피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그렇게 AI 스피커들끼리 힘을 합쳐 집을 청소하고 부부가 돌아오는 것을 반겨주기까지 한다. 현철씨는 편리함이란 '생각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다 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불편함과 편리함의 사이에서 생활하고 있는 부부도 있다. 바로 형선씨 부부다. 매번 아내에게 집에서 생활하면서 불편한 것들을 묻고 개선하여 스마트한 집을 만들고 있는 남편은 아날로그로 남겨둔 곳이 있다. 바로 서재다. 그는 서재에서 종이로 된 만화책을 보며 추억도 떠올리고 마음의 안식을 즐긴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아내도 망치질을 해 직접 지갑을 만들면서 고민거리 등을 잊곤 한다. 이들은 편리함 속에서 더딘 불편을 통해 안식을 즐긴다.
 
방송에 출연한 이현수씨(계명대 의대 교수)는 편리한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불편을 찾는 이유는 '뇌가 움직이기 위해 진화된 기관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예로 멍게 같은 해양동물이 유충일 때는 먹이를 찾아 움직이다가 정착을 했을 때 뇌를 재흡수하는 현상을 든다.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도 뇌가 편리함을 불편해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인류는 대부분을 '플라이스토세'(신생대 제4기에 속하는 지질 시대)를 보내며 도구를 직접 만들고 사용하면서 움직이는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산업혁명 이후의 편리함이 오히려 뇌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스마트 기기'가 보편화된 시대, 불편함을 스스로 찾아나선 이들
 
 대학생인 유진씨는 터치 한 번이면 스마트폰을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요즘에도 테이프를 찾아다닌다.

대학생인 유진씨는 터치 한 번이면 스마트폰을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요즘에도 테이프를 찾아다닌다. ⓒ SBS

 
이들의 주장대로일까. 편리함을 추구하는 이들과 반대로 불편함을 열심히 찾아다니는 이들이 있다. 대학생인 유진씨는 터치 한 번이면 스마트폰을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요즘에도 카세트 테이프를 찾아다닌다. 오래된 노래를 좋아하는 그녀에게 워크맨을 통해 노래를 듣는 것은 그 시대의 음악을 즐기는 방법이다. 심지어 그녀는 핸드폰에 있는 음원을 워크맨에 연결하여 녹음하며 자신만의 테이프를 제작하기도 한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자르고 다시 연결해야 하는 수고스러운 작업이지만 그녀에게 테이프는 음악이 가진 실체고 그녀를 나타내주는 개성이다.
 
또, 여전히 타자기를 고집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빠르게 작성하고 언제든지 수정을 할 수 있는 키보드를 통한 작업에 비해 직접 활자가 먹지를 때려 찍는 타자기는 수정도 불가능하고 치기 어려운 글자들도 있다. 한 때는 산업 시대의 필수품이었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타자기. 타자기를 위해 수리점을 운영하는 25살의 재홍씨는 시골 외진 곳을 다니며 오래된 타자기를 구매하기도 한다. 손이 근질거린다는 그는 타자기의 직관적이고 탁월한 손맛에 푹 빠져있다.
 
 직접 손님들이 장작을 캐서 난방을 하고 신발을 신고 벗어가면서 화장실에서 식재료를 씻어야 하는 민박집도 있다.

직접 손님들이 장작을 캐서 난방을 하고 신발을 신고 벗어가면서 화장실에서 식재료를 씻어야 하는 민박집도 있다. ⓒ SBS

 
직접 손님들이 장작을 캐서 난방을 하고 신발을 신고 벗어가면서 화장실에서 식재료를 씻어야 하는 민박집도 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데 2시간이 넘게 걸리고 밤에는 장작을 계속 넣어줘야 하는 난방기구 때문에 추위에 떨며 잠을 설치기도 하는 이곳에 손님들은 더딤과 불편함을 즐기러 찾아온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로망을 꿈꿨던 이들은 도시의 편리함을 되새기며 돌아가기도 한다. 어찌됐든 모든 걸 갖추고 있는 곳에 비해 직접 해보는 기억들이 인상 깊다.
 
불편함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이제는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쉽게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손을 움직일 필요는 없어져가지만 치열하게 고민하고 복잡함 속에서, 고통 받아야 하는 바쁜 사회 속에서 더디지만 침착하게 즐길 수 있는 그런 것. 효율과 이익만을 중요시하는 요즘이지만 안식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바보 같이 정직한 그런 것. 나 역시 나만의 불편함이 무엇인지 찾아봐야겠다. 점점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조용히 앉아 해볼 수 있을 만한 것을.
 
불편함 공테이프 타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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