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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가족'이 기준인 한국의 명절 문화에서 비혼은 '천덕꾸러기'거나 '낯선 존재'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비혼 인구가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정상가족'의 틀이 조금씩 깨지면서 새로운 명절문화를 원하는 목소리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프로비혼러'들에게 다른 명절의 가능성을 들어봤습니다.[편집자말]
'성평등한 명절'을 선물로 받고 싶다는 현수막을 봤습니다. 성평등한 성교육을 고민하고 시행하는 한 기관에서 내건 현수막의 내용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모두에게 성평등한 명절이 되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 저의 마음속에는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명절은 꼭 필요할까요? 명절은 왜 있는 것일까요?

예전에는 성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명절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말하면, 평등한 명절은 가사 분담 등을 나누고 함께 즐기는 것인데 그걸 다 같이 못하고 있는 점이 문제라는 식으로 말하고도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지금 제가 직면하는 명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조금 다르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해 설날, 저는 특별한 계획이 없습니다
 
명절이요? 이 고양이처럼 쉬어야죠
 명절이요? 이 고양이처럼 쉬어야죠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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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은 지겨운 '원가족'에서 어렵게 분리되어 나와서 나름 자신의 삶을 용기 있게, 엉망진창, 뚝딱뚝딱 헤쳐나가는 사람들이 가족이란 걸 까먹고 살다가도, 때만 되면 주기적으로 그걸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강제하는 엄청난 장치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는 성평등한 명절만을 요구하는 것도 좋지만, 명절을 없애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명절은 제게 정상성을 재현하는 사회적 의례였습니다. 마치 돌잔치, 장례식, 결혼식처럼요. 정상에 미치지 못하는 내 삶과 정상 기준 사이에 있는 갭을, 평소에는 흐릿하게 보고 살다가, 눈앞에 들이미니까 또렷하게 확인해야 하는 그런 거요. 그 정상성에 너무 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성평등한 명절'에 대해 고민한 이후로 한 3~4년, 평등한 명절을 쇠기 위해서 나름 아등바등 노력했습니다. '페미니스트답게 명절나기' 모임 같은 것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잡채도 같이 만들고, 음식도 하고, 재밌게 놀기도 했네요. 야밤에 공원에 나가 포켓몬고를 하기도 하고요. 한 번은, 역으로 엄마를 우리 집에 초대하기도 했습니다. 진땀 나는 일이었지만, 돌이켜 보니까 그 나름의 의미들이 있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저는 특별한 계획이 없습니다. 그저 그 긴 휴일들의 연속을 맞으면서, 모든 사람들이 일을 안 하도록 된 날이니까, 그 사람들에 제게 업무 연락을 안 할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좀 좋아요. 그 핑계를 대고 작업하고 있는 계간지 편집 마감을 미뤄 두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명절에 빈둥빈둥하며 여유를 즐기며 충전을 하고, 계간지 작업을 해내고, 연휴 마지막 날에 발주를 넣을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비혼'이라는 말에 대해 고민하다
 
책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책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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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는 어쩌다 세상에 알려진 비혼주의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비혼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습니다. 이 말은 사회가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다른 상상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렵게 이 말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고민이 무색하게, 비혼이라는 말은 저의 고민 지점들을 모두 잘 축약할 수 있는 말은 아니게 되어버린 것 같아요.

용어는 잘못이 없습니다. 결혼이라는 프레임이 너무 '쎈' 것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연애를 하면 그 끝은 결혼이어야 하고, 가정을 만들고 싶으면 결혼해야 하고, 아이를 낳으려고 해도 결혼을 해야 하는 게 이 사회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서 결혼이 피치 못할 사정이 없는 이상 일어날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결혼에 들어갈 수 없는 다른 모든 삶들, 예를 들면 동성 파트너를 둔 사람, '멀쩡한 결혼 상대'로 여겨지지 않는 사람과 같이 살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만들어지는 것이겠죠. '명절'과 '비혼'이라는 키워드가 배치됐을 때 독특한 느낌을 주고, 사람들이 구경할 만한 특이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정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번 명절에 특별한 계획이 없더라고요. 

어쨌든 요즘 저의 고민 중 하나는, 제가 결혼 제도에 반대한다는 말을 해도, 결혼을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해도, 결혼을 하지 않고도 잘 사는 삶을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해도, 어떤 식으로 잘 풀어서 설명하려 노력해도 더 나아간 논의는 어렵다는 점입니다. 결국 '비혼'이라는 말 역시 결혼을 중심으로 논의가 뱅뱅 도는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지 않나, 프레임 싸움에서 이기려면 어떤 전략을 해야 하는가, 그런 것이 저의 고민입니다. 

'종갓집' 며느리 다룬 프로그램은 왜 오전 5시에 할까
 
차례상.
 차례상.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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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대해 찾아보다가, 재미있는 부분도 발견했습니다. 명절에 모이면 보통 티브이를 보니까, 지난해 편성된 명절 특선 티브이 프로그램표를 찾아보았습니다. 오전 5시에는 종갓집 며느리에 대한 프로그램을 하고, 저녁 6시쯤에는 살림하는 남자들에 대한 프로그램을 하더라고요.

이 말은, 새벽 5시에 그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건 종갓집 며느리라는 걸, 사회는 이미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기획한 사람들은 잘 안다는 의미입니다. 또, 명절이라는 큰 틀을 깨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건 남성을 가사 영역에 참여시키는 것이라는 사실도 이미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명절용 가족 영화'를 살펴보았습니다. 갈등과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영화, 그것만이 명절 특선 영화가 될 수 있겠더라고요. 엄마와 아홉 살 어린 막내 동생, 심지어 할머니, 그리고 나와 생각도 정치 성향도 취향도 무엇 하나 같지 않은 고모나 삼촌 등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야만 할 때, 우리는 어떤 서사를 '우리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서사로 고를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과 분란을 일으키는 어떤 포인트, 그 지점이 사람들에게 지향점이 되기도 하고 취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없는 영화만이 '가족 영화'가 될 수 있는 것이죠. 제 생각에, <오아시스> 같은 영화는 당연히 볼 수 없었습니다(예전에 가족들 앞에서 그 영화가 틀어졌다가 엄마가 당황하며 재빨리 티브이 채널을 돌린 기억이 나요).

하지만 지난해 특선에는 <마당을 나온 암탉>이 선별되어 있었습니다. 이건 괜찮을 거예요. 섹스 안 나오고, 동성애 안 나오고, 가족을 사랑하고, 비혼 안 나오는 영화 정도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는 명절을 딱히 명절이란 생각 없이 보낼 생각이지만, 명절을 명절처럼 맞을 여러분이 선택하게 될 '가족 영화'가 무엇이 될지가 너무 궁금해졌습니다(혹시 적당한 영화를 골라 그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족 내에서 싸움이 나지 않는 데도 성공하셨다면 영화 제목을 독자의견란에 남겨 주세요).

마지막으로, 저는 남들이 이상해하거나 신기한 눈으로 보는 비혼주의자지만, 명절에는 쉬고 싶은 평범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제가 올해 처음으로 몰스킨 다이어리란 걸 써 보게 되었는데, 전 세계 각국의 공휴일이 모두 빼곡히 적혀 있더라고요. 그것을 살펴 보니, 한국은 날씨 좋을 때 연달아 쉴 수 있는 날이 없는 불운한 나라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회에서, 평일에 어쩌다 하루씩 찔끔찔끔 돌아오는 휴일에 좋은 쉼을 맞이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요. 그나마 설과 추석 연휴가 한국인에게 주어지는 장기간의 휴식이라는 점을 국제인의 시각에서 살펴보니까, 저에게는 이 쉼이 너무나 소중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연휴를 맞은 모든 이에게 평화가 가득한 명절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요.

태그:#명절, #비혼, #비혼으로명절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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