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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로정신대 투쟁 역사의 산증인 김중곤 할아버지. 어린 시절 미쓰비시중공업에 끌려간 여동생과 아내의 명예회복을 위해 나섰던 할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미쓰비시의 사죄를 촉구했다.<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근로정신대 투쟁 역사의 산증인 김중곤 할아버지. 어린 시절 미쓰비시중공업에 끌려간 여동생과 아내의 명예회복을 위해 나섰던 할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미쓰비시의 사죄를 촉구했다.<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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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쓰비시 1차 소송 원고... 동생·아내 명예회복 일생 바쳐

"불과 열흘 전에도 미쓰비시의 사죄를 받기 전에는 못 죽는다고 하셨는데…."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1차 소송 원고인 김중곤 할아버지(金中坤, 1924년생)가 끝내 미쓰비시의 사죄를 받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지난 25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에 따르면, 이날 새벽 김중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김 할아버지의 유족으로부터 전달 받았다. 향년 96세.

김중곤 할아버지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1차 손해배상 청구소송 원고다.

일본에 끌려가 지진에 목숨을 잃고 돌아오지 못한 그의 여동생과 2001년 사별한 배우자가 모두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였다.

그의 동생 고 김순례씨, 아내 고 김복례씨는 친구 사이로 1944년 광주 수창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5월경 동원됐다. "2년간 군수공장에서 일하며 공부하면 그 후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은 것이었다.

일본 미쓰비시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로 끌려간 두 사람은 배고픔과 구타를 당하며 강제 노역을 당했다. 그러다 1944년 12월7일 발생한 동남해(도난카이) 대지진으로 고 김순례씨는 무너진 벽과 지붕에 깔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해(1944년) 12월 어느 날 집으로 사망통지서가 날아든거예요. 믿기지 않았죠.(김중곤 할아버지의 생전 발언)"

다행히 목숨을 건진 김복례씨는 해방 후 고향에 돌아와 김중곤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당시 김복례씨는 "자기만 살아 돌아와 면목 없다"고 김중곤 할아버지의 부모님을 보듬고 한 없이 울었다고. 이 인연으로 김중곤 할아버지는 김복례씨와 결혼을 하게 됐다.

일본에 끌려간 여동생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는 슬픔과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김중곤 할아버지는 미쓰비시를 단죄하기 위한 '행동'에 나섰다.

▲강제동원 여동생 사후 행동 나서

1988년 도난카이대지진에 희생된 이들의 추모비 제막식 참석차 나고야를 다시 찾은 그는 양심적인 일본인들과 인연이 닿아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은 여동생의 한을 풀고자 근로정신대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양금덕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1999년 3월1일 일본 나고야에서 미쓰비시를 상대로 소송에 나선 가운데, 2000년 12월 김중곤 할아버지도 아내 김복례씨,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와 함께 2차 소송을 제기했다.

소 제기 후 2001년 그의 아내 김복례씨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할아버지는 수십 차례 일본을 오가며 여동생과 아내의 명예회복을 위한 소송을 이어갔다.
 
 지난 2013년 11월1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1차 소송의 역사적인 1심 승소 판결 후 김중곤 할아버지(오른쪽에서 두 번째)를 비롯해 양금덕 할머니 등 소송 원고, 이금주 회장,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등이 기쁨의 만세를 외치고 있다.<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지난 2013년 11월1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1차 소송의 역사적인 1심 승소 판결 후 김중곤 할아버지(오른쪽에서 두 번째)를 비롯해 양금덕 할머니 등 소송 원고, 이금주 회장,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등이 기쁨의 만세를 외치고 있다.<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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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시작된 소송이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한 뒤로도 할아버지는 일본과 미쓰비시의 사죄를 받기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2012년 5월 개인청구권을 인정한 한국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을 계기로 2012년 10월 양금덕 할머니 등과 함께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광주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1차)을 제기한 것.

그리고 지난해 11월29일 역사적인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는 여전히 사죄와 배상을 거부하고 있다.

시민모임 안영숙 공동대표는 "열흘 전 울산으로 가 김중곤 어르신을 찾았을 때 어르신은 '미쓰비시 사죄를 받기 전에는 못 죽는다'고 했었다"고 말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할아버지는 미쓰비시의 사죄를 외쳤던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미쓰비시의 사죄를 듣지 못한채 눈을 감고 말았다.

▲김중곤 할아버지 전기 곧 출간

고인의 장례는 울산에서 치러지고 있다.(울산 굿모닝병원장례식장 102호) 시민모임은 26일 조문을 갈 계획으로 부고 소식을 전해 들은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회' 다카하시 공동대표도 할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5년 6월24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1차 소송 2심 승소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느 김중곤 할아버지.<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지난 2015년 6월24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1차 소송 2심 승소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느 김중곤 할아버지.<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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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시민모임은 김중곤 할아버지의 전기 '人間의 砦(인간의 채)' (2008. 山川修平. 야마카와 슈헤이. 三一書房)가 곧 국내에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고 밝혔다.

'人間의 砦'는 일본의 작가에 의해 한일관계의 중대한 시사적 문제로 부각한 여자근로정신대를 본격적으로 다룬 전기물이다.

일본의 양심적 작가와 근로정신대 유족 김중곤 할아버지가 인간적인 교류를 비롯해 근로정신대 지원 활동에 뛰어들기까지의 과정, 근로정신대 피해자를 돕는 일본 시민단체의 활동상을 사실대로 그렸다.

시민모임은 "김중곤 할아버지는 생전에 이 책의 번역을 누구보다 기뻐하며 고대했다"며 "안타깝게도 한국 출간을 못 본 채 고인이 되고 말았다"고 전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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