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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트렌드 2019> 표지
 <모바일 트렌드 2019> 표지
ⓒ 미래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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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넥팅랩의 <모바일 트렌드 2019>를 읽었다. 모바일 트렌드는 몇 년 전부터 5G였으니, '트렌드'가 새로울 것은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미래의 모습은 조금씩 현실에 구현되고 있다. 5G가 어떻게 우리 생활로 들어오게 될지, <모바일 트렌드 2019>의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5G를 단지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5세대 무선통신 기술의 특징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초고속, 초저지연, 그리고 초연결. 양적 차이가 누적되면 질적 차이로 바뀐다는 말이 있다. 5G야말로 그런 사례다.

전송 속도가 많이 빨라진다는 초고속, 그리고 컴퓨터나 휴대폰 이외에도 많은 물건들이 서로 연결된다는 초연결은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대단한 변화도 아니다. 양적 변화다. 하지만 초저지연, 즉 통신에 걸리는 지연시간이 크게 감소하는 현상은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수준의 양적 변화다.

자율 주행과 엣지 컴퓨팅

5G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되는 많은 기술을 가능케 한다. IoT와 자율 주행이 대표적인 분야다. 생활 편리에 초점이 있는 IoT와는 달리, 자율 주행에서 5G는 사람의 목숨과 직접 연결된다.

움직이던 자동차가 전방에 갑자기 뛰어든 사람을 발견한다. 인공지능은 곧바로 브레이크를 밟는다. 하지만 자동차는 움직이던 중이다. 전방 센서가 이미지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를 인공지능이 판독하고, 정지신호를 보내는 각 단계마다 시간이 소요된다. 시속 72km로 움직이던 자동차라면, 1초에 20m를 움직인다. 자율 주행 자동차가 급제동이라는 판단에 0.1초를 소모한다면, 자동차는 이미 2m를 움직인 뒤다. 5G는 바로 그 제동거리를 줄여서 생명을 구한다. 아니, 5G는 자율 주행을 법적,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하게 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안전 대책을 제공한다.

5G와 함께 현실로 다가오는 또 하나의 자율 주행 아이디어는 군집 주행이다. 자동차들이 마치 기차와 같이 줄을 지어 도로를 달리는 것이다. 선두에 달리는 차량을 사람이 운전하고, 뒤따르는 차량들은 기본적인 수준의 자율 주행 기술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뒤따르는 차량에 필요한 자율 주행 기술은 레벨 2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군집 주행은 공기저항을 줄여 연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부가적인 장점도 가지고 있다.

빨라진 전송 속도는 또한 분산 컴퓨팅을 다시 한 번 진화시킨다. 현재의 클라우드 서비스가 하드 드라이브를 외주화한 것이라면, '엣지 컴퓨팅'은 하드 드라이브에 더하여 CPU, 즉 연산 능력까지도 일부 외주화한다. 5G 시대가 되더라도 통신사들은 수익성 향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상황에서, 엣지 컴퓨팅은 통신사들에게 매력적인 수익모델로 다가온다.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 발전에 핵심 분야 중 하나가 효율화다. 5G를 앞당기려는 노력에는 효율성을 높이려는 기발한 아이디어도 포함된다. 더 많은 양의 화물을 수송하기 위해서 반드시 도로 확장 공사를 할 필요는 없다. 버스 전용차로나 가변 차선을 설치하는 '아이디어'만으로도 토목공사에 준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무선통신에도 그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으니, 바로 네트워크 슬라이싱이다. 하나의 물리적 네트워크를 여러 개의 가상 네트워크로 분리하는 것이다.

도로의 폭은 그대로 둔 채, 차선을 새로 그리는 것과 같다. 새롭게 그리는 차선은 그 길을 다니는 차량에 맞추어 설계된다. 차량 흐름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것이 문제가 될까? 예전에는 경차라도 1, 2차선을 마음껏 달릴 수 있었다면, 이제는 갓길로만 주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아래의 풍자만화를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망중립성 폐지를 풍자한 만화
 망중립성 폐지를 풍자한 만화
ⓒ Steve Sa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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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차를 갓길로 달리게 하는 것이 왜 문제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차선을 새로 그리면서, 마세라티급의 호화 승용차를 제외한 모든 차량은 갓길로 달리라고 한다면 어떨까? 버스 전용차선이 아니라 아우디 전용 차선이 생긴다면? 테슬라를 제외한 차량은 전부 시속 50km 속도 제한을 건다면? 트럼프에게 반대 표를 던진 사람들은 모두 갓길로만 다녀야 한다면?

네트워크 슬라이싱이 문제 되는 이유는 이것이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망중립성이란 무엇인가?

망중립성

망중립성이란, 통신업자가 네트워크 사용자를 차별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예컨대 SK가 페이스북과 특별계약을 체결하고 페이스북 이용자에게만 더 빠른 접속 속도를 제공한다면, 그것은 서비스 차별에 해당하여 망중립성에 위배된다.

누구나 자유롭게 정보를 교환하는 장으로서 인터넷을 설계한 초기 개척자들의 사상이 망중립성에 담겨있다. 망중립성이란 민주주의의 보통선거, 평등선거와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돈을 많이 낸 사람이 업로드한 정보, 또는 정부 정책에 부합하는 정보가 통신망에서 우선권을 가지고 돌아다닌다면, 어떤 세상이 올까?

망중립성 논란은 넷플릭스의 부상과 함께 시작되었다. 미국의 통신 사업자들은 넷플릭스가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므로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6년 9월 기준, 미국 전체 인터넷 트래픽의 35%가 넷플릭스로 인한 것이었다니, 무리한 요구는 아니다. 그러나 차별적 과금은 망중립성에 위배된다. 넷플릭스는 물론 네티즌들도 반발했다.

실제로 버라이즌은 넷플릭스 스트리밍 속도를 10mbps로 제한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시인하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속도 제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신업자들과 별도 계약을 추진했다. 2014년 컴캐스트와 계약 후 넷플릭스 스트리밍 서비스 속도는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이 또한 통신업자들이 넷플릭스 서비스의 속도를 제한했다는 증거다. 결국 넷플릭스는 모든 주요 통신업자들과 특별계약을 맺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망중립성은 사이버 세계에서 성배와도 같은 존재지만, 정부 정책에 의해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오바마 대통령은 망중립성을 지켜나가겠다고 천명한 반면,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직후 망중립성 폐기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망중립성은 비차별, 비차단, 투명성의 세 가지 원칙으로 이루어지는데, 미국은 비차별 및 비차단 원칙을 이미 어느 정도 완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EU는 망중립성 폐기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이후에 움직이겠다고 한다.

망중립성이 무너진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구글이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퍼지던 당시로 돌아가서, 망중립성이 없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해보자. 구글의 부상에 위협을 느낀 마이크로소프트는 통신업자들에게 막대한 돈을 안겨주면서, '빙' 검색엔진만을 위한 통신망을 대대적으로 구축한다. 검색 결과는 구글에 비해 형편없지만, 검색 속도는 구글에 비해 1000배 이상 빠른 빙이 등장한다. 구글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망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이유

망중립성이 사이버 세상에서만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발생한 '멘도시노 컴플렉스 산불'은 2개월 동안 서울시 면적 3배에 해당하는 숲을 태웠다. 이 산불이 막대한 피해를 끼친 배경에는 미국의 대표 통신기업 중 하나인 버라이즌이 있다.

버라이즌이 소방서에서 사용하는 인터넷 회선에 대해 속도 제한을 걸었기 때문에, 초기 대응이 늦어진 것이다. 소방서가 속도 저하에 대해 항의하자, 버라이즌은 더 비싼 요금제 가입을 권유했다고 한다. 당시 버라이즌은 소방서의 인터넷 회선 속도를 1/200로 낮췄다고 한다. 경제 논리 앞에서는 인명도 자연도 무시하는 신자유주의의 위용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모바일 트렌드 2019>는 망중립성이 폐기된 모습을 이미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중국 이야기다.

중국의 인터넷 검열 시스템은 만리장성( The Great Wall)에 빗대어 '만리방화벽( The Great Firewall)'이라 불린다. 유명 게임 <문명> 시리즈에도 이미 현대 문명의 '위업'으로 등장하는 개념이다. 만리방화벽은 망중립성의 세 원칙을 모두 깨버린다. 검열 문제로 중국에서 철수했던 구글조차 중국 시장에 다시 들어가기 위해 소위 '드래곤플라이'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망중립성이 사라진 세상에는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가 강림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망중립성에 대한 위협으로 네트워크 슬라이싱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내 생각에 더 큰 문제는 바로 제로 레이팅이다. 네트워크 슬라이싱은 그 자체로도 차별적인 요소가 강해서 대중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반면, 제로 레이팅은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공짜'의 옷을 입고 있다.

아주 인기 있는 모바일 게임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경쟁사가 이 게임에 도전하는 게임을 만들었지만 시장 지분을 빼앗아 오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경쟁사가 거대 통신기업에 인수된다. 통신기업은 이제 자사 게임이 된 이 게임에 대해 제로 레이팅, 즉 통신료 무과금 정책을 편다. 기존의 게임이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데이터 요금이 아예 나가지 않는 게임에 맞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렇게 게임 시장의 판도가 바뀌면, 이 통신기업은 제로 레이팅을 계속 유지할까?

나는 앞서 망중립성을 보통선거, 평등선거에 비유했다. 망중립성은 사이버 덕후들의 기묘한 신념이 아니다. 사이버 세상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보루다. 현실 세상과 함께 사이버 세상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이 지켜야 할 권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모바일 트렌드 2019 - 지금 우리에게 5G란 무엇인가

커넥팅랩 외 지음, 미래의창(2018)


태그:#잡식성 책사냥꾼, #커넥팅랩, #<모바일 트렌드 2019>, #망중립성, #네트워크 슬라이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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