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가정법은 언제나 존재한다. 에이스 손흥민을 좀 더 효과적으로 살려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이번 아시안컵에서 손흥민 활용도는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이미 한국 축구대표팀의 아시안컵 일정은 종료됐다. 59년 만에 아시아 정상에 도전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워낙 기대가 컸던 탓일까. 8강 탈락은 무척 실망스러운 결과다.

이번 대회에서 벤투호의 경기력은 매우 좋지 않았다. 공격 전개 속도는 느렸고, 상대의 밀집 수비를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했다. 특히 선수들의 컨디션도 상당히 떨어져있었다. 이 가운데 손흥민은 평소 실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주장 완장 꼭 쥔 손흥민 25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자예드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아시안컵 8강전 한국과 카타르와의 경기가 끝난 뒤 손흥민이 주장 완장을 손에 쥐고 그라운드를 나서고 있다.

▲ 주장 완장 꼭 쥔 손흥민 25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자예드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아시안컵 8강전 한국과 카타르와의 경기가 끝난 뒤 손흥민이 주장 완장을 손에 쥐고 그라운드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손흥민, 토트넘서 맹활약했지만 우려된 혹사 논란

손흥민은 명실상부한 벤투호의 에이스다. 올 시즌 토트넘에서 절정의 기량을 뽐내며 프리미어리그에서 손꼽히는 윙포워드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지난해 12월부터 골 폭풍을 몰아치며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선수 후보에 오르는 등 컨디션은 최고조였다.

그래서 아시안컵에 대한 대표팀의 기대감을 키웠다. 토트넘에서의 활약을 대표팀까지 이어갈 수만 있다면 아시안컵 우승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꿈처럼 보였다. 그러나 손흥민은 지난해 12월부터 토트넘에서만 총 13경기를 뛰었다. 3~4일 간격으로 출장하며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지난 14일(이하 한국시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서 90분 풀타임을 뛴 뒤 곧바로 아랍에미리트행 비행기에 올랐다. 손흥민은 3일 뒤 열리는 중국과의 조별리그 3차전부터 출전할 수 있었지만 먼 거리를 이동한 터라 휴식을 취할 듯했다.

앞서 토트넘에서 많은 경기를 소화하며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고, 장시간 비행·시차와 기후 적응 등 외부적인 요소도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손흥민은 자신이 직접 벤투 감독에게 중국전 출전을 강행하겠다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선수 출전 권한은 감독에게 있다. 벤투 감독으로서는 조별리그 1위가 중요했다.

16강 진출 후 토너먼트 대진에 있어 좀 더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

방전된 손흥민, 토너먼트서 잇따른 부진

벤투 감독은 중국전에서 최상의 라인업을 구성했다. 이미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상황이지만 조 1위를 차지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반면 마르셀로 리피 중국 대표팀 감독은 1.5군을 내세웠다.

한국은 중국을 상대로 모처럼 시원한 경기 내용으로 2-0 완승을 거뒀다. 선발 출장한 손흥민도 몸놀림은 무거웠지만 클래스를 과시하며 1도움과 1개의 페널티킥 유도로 팀 승리를 견인했다.

이 경기에서 벤투 감독은 손흥민은 후반 44분에서야 벤치로 불러들였다. 후반 초반 2-0으로 리드하고 있었고, 경기 흐름상 중국이 반전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손흥민을 좀 더 일찍 교체하고 휴식하게 하는 것이 좋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다들 수고했어 16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알 나얀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중국의 아시안컵 조별리그 C조 3차전에서 승리한 축구 대표팀 손흥민이 주세종 등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 다들 수고했어 16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알 나얀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중국의 아시안컵 조별리그 C조 3차전에서 승리한 축구 대표팀 손흥민이 주세종 등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통상적이라면 손흥민 없이 중국을 잡고 조 1위를 차지하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사실 양 팀 선수 개개인 능력차를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벤투 감독으로서는 그럴 여유도 자신감도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중국전 이후 16강 바레인전까지 5일의 휴식 기간이 남아있었던 점도 사실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충분한 휴식 후 올라와야 할 컨디션이 오히려 떨어졌다는 데 있다. 16강 바레인전에서 보여준 한국의 경기력은 필리핀, 키르기스스탄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바레인전에서는 동점골을 허용하며 연장전 30분을 더 치러야 했다. 가뜩이나 기성용이 부상으로 조기에 대회를 마감했고, 이재성과 황희찬이 부상으로 신음하면서 8강 카타르전에 출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벤투 감독은 황인범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올리는 것 말고는 마땅히 꺼내들 카드가 없었다. 손흥민은 120분 풀타임을 뛰고 3일 만에 다시 카타르전에 나서야 했다.
 
답답해 하는 손흥민 25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자예드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아시안컵 8강전 한국과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경기가 잘 안풀리자 답답해 하고 있다.

▲ 답답해 하는 손흥민 25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자예드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아시안컵 8강전 한국과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경기가 잘 안풀리자 답답해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예상대로 카타르전에서 손흥민은 부진했다. 특유의 폭발력 있는 돌파와 전진성이 사라졌다. 후반에는 공간이 열리면서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맞았지만 평소답지 않게 슈팅의 강도가 약했다. 컨디션 난조로 인해 손흥민은 스스로 해결하기보단 동료들에게 찬스를 만들어주거나 플레이메이킹에 주력했다.

손흥민이 부진하자 한국은 이렇다 할 공격 루트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결국 답답한 경기 운영이 지속됐고, 후반 33분 카타르의 중거리 슛 한 방에 무너지며 대회를 마감했다.

이번 대회 내내 벤투 감독의 선수단 관리는 비판의 대상이었다. 의료진 2명이 대회 도중 팀을 떠났고,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부득이하게 선수층은 얇았으며, 대부분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벤투 감독은 매 경기 주전들을 큰 변화 없이 출전시켰다.

손흥민이 중국전에 89분 출전한 것만으로 아시안컵 실패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확대해석하긴 어렵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대회 운영에 있어 큰 문제점을 발생시켰다. 결국 아시안컵 참사는 예견된 일이었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드러난 실수를 다시 답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좀 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벤투 손흥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신뢰도 있고 유익한 기사로 찾아뵙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