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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은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있던 자신의 결점에 대해 생각이 떠오르게 할 수도 있고, 자아를 성찰하면서 과거를 뒤돌아보게 할 수도 있다. 전혀 모르던 지식을 알게 되면서 앎 그 자체에 대해 즐거운 감정을 가지게 할 수도 있다. 어렵고 혼란스러울 때일수록 독서는 단단한 기반이 되어준다.

그런데 좋은 책을 읽고 난 후에 취하는 행동은 각자 다르다. 어떤 사람은 읽고 그대로 책을 덮는다. 어떤 사람은 좋은 책을 주변에 추천한다. 어떤 사람은 책을 읽고 책에 대한 글을 쓴다.

책마다,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독서법이 있겠지만, 좋은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책의 모든 것을 뇌에 보존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기 마련이다. 책을 읽고 그 내용과 느낌을 정확하게 기억하면 가장 좋겠지만, 사실 이것은 쉽지가 않다. 감동이나 느낌은 쉽게 사라지며, 요약되지 않은 정보 역시 다른 기억 사이로 흩어질 수 있다. 

이렇게 독서만으로는 책과 함께하기 어려운 경우에, 책과 더 오래 함께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서평을 쓰는 것이다.

 
서평쓰는법
 서평쓰는법
ⓒ 이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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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쓰는법'(도서출판 유유)은 책을 정말 사랑하는 애서가가 쓴 책이다. 180 페이지 내외의 짧은 책에 독서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겨 있다. 이 책의 부제는 독서의 완성인데, 저자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은 독서의 심화인 동시에 독서의 완성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잘 읽고, 깊이 읽고, 책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서평을 쓰는 것이 답이라고 보는 것이다.

책의 제목은 서평 쓰는 법이지만 저자는 서평의 기술적인 작성법부터 말하지 않는다. 대신 서평의 본질과 정체성을 언급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책에 따르면, 서평은 일종의 대화이다. 독백에 가까운 독후감과는 다른 점이다. 서평은 이를 읽어줄 독자가 필요하고, 읽은 독자는 서평에 반응해서 서평이 말하는 바에 동의하거나 반대하게 된다. 이런 대화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서평을 쓰는 사람은 반드시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서평을 쓰는 사람은 스스로를 성찰하고 언어와 논리를 구성하게 된다. 책에 대한 성찰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깨달음을 더 넓게 확장하게 된다.
 
좋은 책을 잘 읽으면, 삶의 지평이 넓어집니다. 서평은 이러한 독서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서평 쓰기의 귀결은 독서를 통해 획득한 자아와 타자에 대한 깨달음을 더 넓은 지평으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즉 인격의 통합을 추구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서평을 쓸 때마다 이런 마음을 되새기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서평 쓰기의 목표 자체에 대해서는 한 번쯤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49P
 
구체적으로는, 서평이 의도하는 바는 보통 독자가 책을 읽게 하거나 읽지 않게 하는 것이다. 독자가 해당 책을 읽거나 읽지 않는 반응을 하면 서평은 제구실을 다한 것이고, 이로써 서평을 통한 대화가 완성된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이렇게 서평쓰기가 좋다면, 어떤 방법으로 서평을 써야 하는 걸까. 책은 서평의 씨줄과 날줄은 요약과 평가라고 본다. 요약없는 서평은 맹목적이고, 평가가 없는 서평은 공허하기 때문이다. 충실한 요약이 자리한 위에 맥락에 기초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충실한 요약을 위해서 저자는 책의 각 장을 읽고 난 후 생각이나 기록을 정리해둘 것을 추천한다. 목차를 두고 요지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정리가 되면 좋다고 본다.

평가를 위해서는, 서평의 대상이 되는 책이 위치한 현재의 맥락을 살피거나, 역사적 맥락을 살피는 것을 권한다. 이를 바탕으로 제목의 의미, 목차의 분석, 문체 이해에 들어간다. 저자는 목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책의 핵심을 보여주는 동시에 책의 구조를 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목차는 독서의 시작점이자, 동시에 서평에서 평가의 시작점입니다. 따라서 서평을 작성하려면 목차부터 정밀하게 읽어야 합니다. 목차에 대한 점검 과정에서 책의 핵심이 어느 정도는 포착되어야 합니다. 정상적인 경우에, 목차가 곧 책의 조감도이자 설계도이기 때문입니다. 목차가 틀어지면, 책 자체가 틀어집니다. -129P
 
물론 이런 방법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글을 쓰는 것은 심리적 압박이 있다. 첫 문장이 잘 안 써져서 글을 포기하게 되거나, 글이 너무 짧으면 문제가 있는 것인지 생각하다가 지쳐버릴 수 있다. 저자는 문호들처럼 첫 문장을 잘 쓸 필요는 없으며, 첫 문장이 훌륭하거나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반드시 미문을 써야할 필요도 없고, 분량도 A4 한 장 정도 이상이라면 기본적인 분량이라고 말한다. 글에 자신이 없는 사람에게도 힘이 되는 조언이다. 대신 퇴고는 반복할 것을 권한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서 서평 쓰기는 단순한 개인적 도락을 넘어 강력한 정치적 행위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써서 서평이 쌓이면 사회도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책을 읽고 나면 그 감정과 지식을 타인과 공유하고 싶어진다. 개인적으로, 책의 제목이 이상하거나 표지의 디자인이 영 아니다싶은데 내용이 좋은 책을 읽으면 그 책에 대한 글을 쓰거나 남에게 책에 대해서 알리고 싶어진다. 정말 좋은 책인데 외견이 이상한 책들은 독자들의 손을 거치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그런 일을 막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서평은 일종의 대화라는 저자의 의견에 눈길이 갔다.

저자 본인이 책에 관심이 있고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보니, 서평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게 되고 타인과 대화하게 된다는 말에 책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바라보는 애서가의 관점을 하나 더 알게 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이 책은 크기가 작은 판형으로 제작되었고, 페이지 수도 180페이지 정도에 그쳐서 보통의 도서에 비해 가볍고 작은 책이다. 작은 크기에 담긴 내용에 퍼갈 생각은 많으니, 가볍게 골라서 무겁게 얻어 가면 좋다. 

서평 쓰는 법 - 독서의 완성

이원석 지음, 유유(2016)


태그:#서평, #책, #독서, #도서,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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