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헌정사상 최초로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됐다. 법원은 사법농단 의혹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24일 오전 1시 57분께 발부했지만,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 전 대법관은 풀어줬다. 이들 모두 혐의를 부인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핵심증거 4가지 내세운 검찰

"범죄사실 중 상당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결정한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밝힌 첫 번째 발부 사유다. 법원은 검찰이 전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강조한 '범죄 상당성'을 받아들였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추정을 넘어설 만한 객관적인 혐의가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결국 검찰이 지난해 6월부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뒤 차곡차곡 확보한 증거 중 '양승태 핵심증거 4가지'가 구속을 이끌어냈다.

개별 혐의만 40여 개에 달하는 양 전 대법원장은 크게 4가지 의혹을 받는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민사소송 개입 ▲판사 블랙리스트 지시·관리 ▲헌법재판소 기밀누설 ▲법원행정처 비자금 개입. 검찰은 혐의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지시하는 걸 넘어서 직접 범죄를 기획·주도한 물적 증거를 찾아냈다.

검찰은 영장심사에서 혐의별로 ▲징용 소송 관련 전범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변호사를 독대한 김앤장 내부 문건 ▲직접 'V' 표시를 하며 판사 인사 불이익을 관리하고 지시한 물의 야기 법관 문건 ▲헌재 기밀누설 등에 관해 대법원장 지시를 표시해두고 꼼꼼히 작성한 이규진 수첩 ▲대법원장 격려금이 적시된 행정처 비자금 문건 등을 중요 증거로 내세웠다.

특히 검찰은 같은 법원에서 판단해 '서지현 검사 인사 불이익'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을 거론했다. 검사 한 명이 받은 불이익보다 양 전 대법원장이 판사 수십 명에게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가 훨씬 무겁다고 강조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의 인사는 정당한 재량권 행사였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해 6월 1일 일명 '놀이터 기자회견'에서 "부당한 인사개입과 재판개입은 단연코 없다"라며 자신감을 보이던 양 전 대법원장은 자신이 근무한 법원의 결정으로 수의를 입게 됐다.

후배 법관에게 책임 돌리는 양승태, 결국 구속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

이 역시 발부 사유에 담긴 말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11일 검찰 공개소환 전 '친정'인 대법원 앞에서 입장을 밝혔다. 당시 그는 "이 사건에 관련된 여러 법관도 각자의 직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법과 양심에 반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고, 저는 그 말을 믿고 있다"라며 "나중에라도 과오가 있다고 밝혀진다면 그 역시 제 책임이고 제가 안고 가겠다"라고 말했다.
 
사법농단 피의자로 검찰소환을 앞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소환 직전 서초동 대법원 정문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법원 정문안쪽에서는 법원노조 조합원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청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법농단 양승태, 대법원앞 회견 사법농단 피의자로 검찰소환을 앞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소환 직전 서초동 대법원 정문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법원 정문안쪽에서는 법원노조 조합원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청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영장심사 법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달라졌다. 그는 후배 법관이 자신을 '모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작성한 업무수첩을 제시하자 양 전 대법원장과 그의 변호인은 "이규진 전 위원이 자기 살려고 나를 모함하는 것 같다", "그런 지시 자체가 없었을뿐더러 추후에 대(大)자를 적어넣는 등 조작 가능성도 있다"고 적극 방어했다. 징용 소송과 관련해서는 김앤장 변호사와 독대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통상 업무였다, 김앤장 변호사가 왜곡해 진술했다"라고 반박했다.

명 부장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이 아래로 책임을 떠넘기며 자신의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나서자, 오히려 증거인멸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완강히 무죄를 주장하는 만큼, 풀려날 경우 사건과 관련된 다른 법관들과 입을 맞추는 등의 가능성도 내다봤을 수 있다.

'양승태 → 임종헌' 직접 나선 정황 인정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추어."

발부 사유엔 이런 말도 담겨 있다. 같은 날 영장심사를 받았던 박병대 전 대법관 또한 혐의를 부인했지만 법원은 이를 '증거인멸의 우려'로 보지 않고 그를 구속하지 않았다. 박 전 대법관은 지난해 12월 징용소송과 관련해 2014년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주최하는 '삼청동 공관회의' 등에 참석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 댓글사건 재판개입 등 여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당시에도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고교후배이자 투자자문회사 T사의 대표 이아무개씨로부터 부탁을 받아 이씨 재판을 무단으로 열람한 혐의도 추가했으나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공모 관계 성립에 의문이 있다"라며 구속하지 않았다. 결국 법원은 재판 개입 등 주요 혐의와 관련해 중간고리인 박 전 대법관 없이 '양승태→임종헌'으로 지시관계를 판단해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에 직접 나선 정황에 무게를 뒀다. 사법부 최고 수장인 대법원장이었던 점도 감안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24일 새벽 대기하던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검찰은 구속 상태인 양 전 대법원장을 형사소송법에 따라 최대 20일 안에 재판에 넘겨야 한다. 검찰은 이르면 25일부터 양 전 대법원장을 불러 보강 수사에 나설 방침이다.

태그:#양승태, #박병대, #구속, #서울구치소, #사법농단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