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법농단 피의자로 검찰소환을 앞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소환 직전 서초동 대법원 정문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법농단" 양승태, 대법원앞 회견 사법농단 피의자로 검찰소환을 앞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소환 직전 서초동 대법원 정문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운명의 한 주가 시작됐다. 초유의 사법농단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사법연수원 2기)의 영장실질심사 기일이 확정됐다.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명재권(52·27기)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23일 오전 10시 30분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 심사를 연다고 밝혔다.

또한 재정구된 박병대 전 대법관(62·12기)에 대한 영장 심사는 같은 시각 허경호(45·27기)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맡는다. 두 사람에 대한 구속 여부는 이르면 23일 밤, 늦어도 24일 새벽에는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7년 2월 법원행정처의 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 외압 논란으로부터 촉발된 사법농단 의혹의 중간 결론이 이번 주에 윤곽을 드러내는 셈이다. 양 전 대법원장과 한 차례 영장이 기각된 박 전 대법관에 대해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동안 법원의 자체 진상조사와 검찰 수사가 2년 가까이 진행돼 왔지만 사법농단 의혹의 실체와 몸통은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정치권력과 결탁한 양승태 사법부의 낯부끄러운 치부와 민낯이 여지없이 드러난 상황임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다.

이는 '무오류'를 앞세운 법원의 특권의식과 조직보호 논리가 결합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에도 대법관들과 법원장들은 의혹을 "사실무근"이라 규정했다. 본격적인 검찰 수사를 앞둔 상황에서 영장 발부를 결정할 재판부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고도 볼 수 있다.  

실제 이후 검찰의 압수수색영장은 줄줄이 기각됐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압수수색영장 기각률은 10% 안팎이다. 그런데 사법농단 수사와 관련해서는 90% 가까이 치솟았다. 일반인이 납득하기 힘든 엄청난 간극이다. 둘 중의 하나라고 추정할 수 있다. 법원이 제 식구를 감싼 것이거나, 사법농단의 죄질이 일반사건의 경우보다 가볍다고 여긴 것이거나. 

김명수 대법원은 적극적인 수사협조를 약속했지만, 그 말과는 다른 행보가 이어졌다. 사법농단 의혹의 중심에 있던 법원행정처는 관련 자료의 제출을 노골적으로 거부·지연시켰다. 법원행정처는 검찰이 요구했던 전산 및 인사 관련 자료, 업무추진비 내역 등의 제출을 완강히 거부하면서 수사 방해 의혹까지 샀다. 조사를 받아야 할 당사자로서는 아주 부적절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사법농단 핵심 관계자에 대한 구속영장도 번번이 기각됐다. 대법원 판결문 초안과 재판검토보고서 등을 무단 반출하고 폐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유해용 전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데 이어,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인물로 손꼽히는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 역시 기각됐다.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구속된 경우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유일하다.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일제 강제 징용 소송 재판 개입, 법관 인사 불이익, 헌법재판소 견제, KTX 승무원 부당해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전교조 법외노조 관련 행정소송 개입, 통합진보당 소송 기각 종용 등 양승태 대법원을 둘러싼 무수한 사법농단 의혹을 감안하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덕의 소치"라더니, 돌아서선 "기억나지 않는다"

세간의 시선이 영장 심사를 앞둔 사법부로 쏠리는 것은 이같은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런 면에서 사법농단 의혹의 몸통으로 손꼽히는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여부는 추락할 대로 추락한 사법부의 신뢰와 공정성 회복을 위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주지하다시피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 정의와 법관의 독립을 송두리째 훼손한 사법농단 의혹의 최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공무상비밀누설,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및 특가법상 국고 손실 등 양 전 대법원장이 받고 있는 혐의만 해도 무려 40여 개에 달한다. 

어디 그뿐인가. 그사이 복직 희망이 사라진 KTX 승무원이, 쌍용자동차 노동자 5명이 세상을 등졌다. 일제 강제징용 관련 소송에서는 가해자인 일본 전범기업에 유리하도록 재판 관련 정보를 흘리는가 하면, 일본이 징용 판결에 대해 국제재판소에 제소할 경우 국제분쟁이 우려된다며 재판에 관여한 정황도 드러났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은 모든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지난 11일 검찰 출두를 앞두고 대법원 앞에서 "이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로 인한 것이고 따라서 그 모든 책임은 제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자세를 낮춘 것도 잠시, 그는 정작 검찰소환조사에서는 "기억나지 않는다", "실무진에서 한 일이라 자신은 알지 못한다"며 철저하게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는 사실상 도의적 책임만을 인정하겠다는 뜻으로 검찰의 혐의 입증이 녹록지 않을 것임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실제 법조계 안팎에서는 사법농단 의혹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법원의 조직보호 논리와 무오류주의, 법관 처벌에 대한 법원 내부의 강한 반발과 거부감 등을 고려하면 영장 발부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결론이 어떻게 나든 사법부가 치욕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당장 양 전 대법관부터가 사법부의 '흑역사'가 돼 가고 있지 않은가. 사법역사상 최초로 대법원장 출신 피의자로 전락한 그는 25기수나 어린 후배로부터 영장 심사를 받아야 하는 군색한 처지로 전락했다. 

전국은 지금 아시안컵 열기가 한창이다. 59년 만에 우승에 도전하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22일 밤 바레인과 아시안컵 16강전을 치른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경기가 열리는 아랍에미리트(UAE)로 향하게 될 터다. 그러나 아시안컵 16강전보다 더 중요한 '일전'은 23일로 예정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 심사일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 대표팀이 16강전에서 탈락한다 해도 아시안컵 우승은 4년 뒤에 다시 도전해도 되지만, 사법부의 신뢰 회복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간으로부터 '방탄사법부'라는 참담한 오명까지 뒤집어쓴 법원이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될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바람 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양승태 구속영장 청구, #양승태 사법농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는 1인 미디어입니다. 전업 블로거를 꿈꾸며 직장 생활 틈틈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