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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 13년째를 맞은 통기타 제조업체 콜텍 노동자 끝장투쟁 돌입 기자회견이 8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열렸다. 기타 모형을 멘 해고노동자들과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정리해고 13년째, 거리의 기타노동자들 정리해고 13년째를 맞은 통기타 제조업체 콜텍 노동자 끝장투쟁 돌입 기자회견이 8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열렸다. 기타 모형을 멘 해고노동자들과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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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째 새해 소망이 똑같은 사람들

새해가 밝아오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그린다. 일상의 계획부터 한 해의 계획, 올해를 바탕으로 먼 미래까지 이어지는 각자의 소망들이 새해 첫 달을 기운차게 만든다. 계획은 실행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구체적으로 되거나 풍성해질 수 있도록 갱신된다. 그런데 12번의 새해 동안 똑같은 소망을 품은 사람들이 있다.

해마다 '정리해고 투쟁 승리하고 복직하기'를 소망하는 콜트기타를 만들던 해고노동자들. 기계가 빠져나간 텅 빈 공장에서, 거리의 소음에 종일 시달리는 천막 안에서 곱씹었을 소망, 푸른 노동조합 조끼가 바래지고 흰 머리카락이 늘어나는 동안 세우고 허물기를 반복했을 투쟁계획. 이들은 정리해고 투쟁이 끝나야만 남들처럼 일상의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그릴 수 있다. 평범한 '일상의 삶'을 13년째 미뤄두고 있다.

'최장기 정리해고 투쟁'이 이들의 타이틀이 되었다. 이 무거운 타이틀이 붙기까지 버텨온 시간 속에 켜켜이 쌓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사람들은 묻는다. "왜 이렇게 오래 싸우고 있나요?" 이렇게 힘든데 이제 그만 싸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어떨지, 이런 회사로 돌아가겠다고 싸우느니 그냥 새 일터를 구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은 아닌지 걱정스레 말을 건넨다.

이들의 대답은 간단하다. "부당한 일이니까요." 이 간명한 답변이 이들의 지난 12년 세월을 버티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잘못된 일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잘못한 사람에게 사과받지 못한다면 부당한 해고를 받아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해고되기 전 그저 열심히 일하면서 삶을 꾸려왔던 시간까지 부정당하는 심정일 것이다.

'당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정리해고 

1997년부터 2005년까지 누적 흑자만 191억 원이었고, 박영호 사장이 2006년에 1,191억 원의 재산으로 한국 부자 순위 120위에 올랐는데 왜 공장문을 닫고 해고를 하는 것인가? 2006년 콜텍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12년 만에 가장 높은 임금인상이 되었지만, 몸이 부서져라 일해서 얻은 급여는 최저임금이었다.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창문을 꽉꽉 막아놓고, 기계톱에 손가락이 잘리고, 빼빠질과 연마질로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고, 꽉 막힌 도장장에서 유기용제를 마시며 일하다 기관지염과 천식에 시달리며 만든 기타는 깁슨(Gibson), 아이바네즈(Ibanez), 펜더(Fender) 등 전 세계로 판매되었다.

그런데 여느 때처럼 출근한 그 공장 문에 붙은 공고 한 장으로 정리해고가 되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도 없으니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부당하고 억울한 마음뿐이다. 그래서 정리해고를 '당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부당한 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해고를 당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싸우는 일밖에 없었다. 싸우는 것은 응답을 받기 위함이다. 잘못된 해고라는 인정과 당신들의 노동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응답을 기다렸다. 느닷없이 닥친 해고로 시작된 고통의 시간을 보듬어준 사람들은 음악을 사랑하고 노동을 존중하는 음악인들과 시민들이었다.

정작, 이 부당함에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아무 말이 없다. 있지도 않은 경영상의 위기를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한 박영호 사장부터 노동조합만을 탓하는 거짓 언론과 정치인, 재판을 거래하면서 해고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까지. 이들이 기타노동자들의 일상과 미래를 탈취했다.

 
정리해고 13년째를 맞은 통기타 제조업체 콜텍 노동자 끝장투쟁 돌입 기자회견이 8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열렸다. 기타 모형을 멘 해고노동자들이 낙원악기상가를 지나 행진하고 있다.
▲ "정리해고 13년" 콜텍 기타노동자 끝장투쟁 돌입 정리해고 13년째를 맞은 통기타 제조업체 콜텍 노동자 끝장투쟁 돌입 기자회견이 8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열렸다. 기타 모형을 멘 해고노동자들이 낙원악기상가를 지나 행진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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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오래 싸우고 있나요?"라는 질문은 이제 "왜 이렇게 오래 사과하지 않나요?"로 바꿔야겠다. 질문은 잘못한 행위를 하고도 책임지지 않는 자들에게 해야 한다. 박영호 사장은 왜 13년째 책임을 지지 않는가, 당신이 부자가 되었는데 노동자들에게도 그만큼의 대가를 돌려주지는 못할망정 해고가 가당키나 한가? 양승태 당신은 왜 해고노동자들을 더 고통으로 몰아넣었는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의 삶은 파괴되어도 되는가?

너무 늦었지만, 이들에게 대답을 들어야 한다. 13년째 투쟁을 하는 기타노동자들이 이 고통의 시간을 보상받기를, 우리가 목격한 고통의 시간이 우리 사회에 교훈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면 기타노동자들과 함께 '부당한 일'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기타노동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콜텍 기타노동자들이 끝장투쟁을 선포하고 콜텍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거리에서 응답을 요구한 시간이 공장에서 기타를 만들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정년을 앞두고 있다. 정년이 되기 전에 기타노동자들을 복직시키겠다는 대답을 들어야겠다. 부당한 행위에 대한 사과를 받아야겠다.

설날이 오기 전에 그 대답을 듣는다면 이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13년 전, 2007년 4월 9일 공장 폐쇄 공고를 마주하기까지 꿈꾸었던 미래가 무엇이었는지. 올해 설날에는 미뤄뒀던 그 꿈을 다시 시작하는 삶의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 기타노동자들에게 오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랑희'는 인권운동공간 활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콜텍,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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